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김형근 "내가 지은 죄는 아이-통일 사랑한 죄"

누가 고발하였는가? 평화와 생명과 윤리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리복재 기자 | 기사입력 2008/09/09 [17:55]

김형근 "내가 지은 죄는 아이-통일 사랑한 죄"

누가 고발하였는가? 평화와 생명과 윤리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리복재 기자 | 입력 : 2008/09/09 [17:55]
▲ 관촌중 재직 시절 학생들의 발을 씻어주는 김형근 교사.이 사진은 어느 학생이 휴대폰으로 찍어 놨다가 사건화가 되자 '발 씻어주는 선생님 보셨나요?'라는 글과 함께 공개한 사진이다.    

남과북이 분단된지도 어언 60년이 넘었다. 이념과 사상적인 문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고통과 죽음을 맞았는지 현재를 살아가는 이로써 생각해 볼 일이다. 남과북의 통일에 대한 기대와 염원으로 2000년 6.15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자 이를 실천하기 위해 전북 임실군 관촌중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김형근 교사는 남북 통일에 대해서 '외세에 힘을 빌리지 않고 우리 민족의 힘으로 통일하자'라는 생각으로 당시 관촌중 제자들에게 '북녘 학생들에게 통일 편지 쓰기 운동'을 벌여 국내외 방송 등 주요 매스컴에서도 집중취재와 '통일꿈나무들'이라며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2005년 5월 전북 시민사회단체가 전북 회문산에서 주관했던 '남녘통일열사 추모제(당시 공안경찰도 참석해 첩보로 보고했으나 내사 등 아무 이상이 없었고 던군다나 조선일보가 내사중이라고 했는데 본지가 확인 바 내사한 적이 없다고 경찰측은 밝힘)'에 학생, 학부모들과 참석해 남북통일을 위한 노래와 구호를 외친 것을 두고 1년이나 지난 2006년 12월 자칭 보수신문이라는 조선일보를 필두로 중앙, 동아, 문화일보등이 가세해 '빨갱이' 등등으로 포장해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자칭 보수주의자라는 한나라당 일부 당직자들이 대대적으로 언론플레이와 수사기관을 압박하는 어투를 쏟아내며 김 교사를 빨치산 교육 등 사상적 이념을 주입시키기 위해 학생과 학부모들을 인솔했다는 것이다.

즉,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친미 보수세력의 결집을 유도하기 위해, 김형근 교사가 학생과 학부모에게 좌익사상교육을 시킬 목적과 북한을 이롭게 하기 위했다는 것인데, 이는 김 교사를 빨갱이 교사로 만들어 정치적 목적과 대권을 거머쥐겠다는 것이 보편적인 시각이다.

결국 2007년 4월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벌였고 조사가 끝난 후 법의 판단을 하지 않는 듯 무죄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으나 공안 당국은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2008년 1월 하순 경 김 교사를 구속하고 말았다.

김 교사는 "내가 지은 죄는 아이들을 사랑한 죄, 6.15공동선언 따라서 통일교육을 한 죄입니다."라며 심경을 토로하고, 보석으로 풀려 났으나 지난 달 25일 전주 지방법원에서 11차 공판을 받고 있는 상태이다.
 

▲ 2005년 5월 28일 교사와 학생이 전북통일운동 제 단체 주최의 '남녘 통일 애국 열사 추모 문화제'인 전야제만 참석한 김 교사와 학생들. 이를 조선일보가 1년 반이 지난 2006년 12월 6일 왜곡하여 '빨치산 추모제 참석 및 참배' 운운하며 친북성향으로 몰아갔다.  




김 교사는, 조국사랑 참마음은 인간에 대한 믿음과 함께 끝끝내 잃지 않도록 하나하나 붙잡고 씨름하면서 스스로 선 아이들 미래는 사람 세상, 통일된 세상일 거라는 두근두근 꿈을 꾸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국가를 부정하고 적을 이롭게 한다’는 대역 죄인이 되었다, 라고 현재의 울분을 여과 없이 토해내고 있다.

과거 독재 정권에 의해 허울좋은 이현령비현령이라고 비난받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적용 빨갱이로 몰아 갔던 인혁당 사건 등 수 없이 많은 무고한 인사들이 사라져 간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누가 과연 조국과 민족을 비하하고 매도하며 대역짓거리를 했는지 역사는 평가하겠지만, 현재를 살아가며 느끼는 것은 같은 민족이요 같은 언어와 문화와 풍습을 가지고 있는 남과북의 주민에 대해 정권의 오만과 독선 그리고 독재자들이 법의 잣대를 지들 마음대로 들이 댈 수 있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정치의 근본은 백성을 위하는 것이다. 백성을 곤란에 빠트리고 위협하고 죄없는 것을 두고 죄있는 사실로 만들어 버려서는 안 된다. 이는 정치가들이 자신의 안위와 영달을 위해 백성을 이용하는 저질 정치꾼이기 때문이다. 저질 정치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나라를 팔아 먹은 이완용 등 매국노들을 두고 친일반민족행위자와 후손들 그리고 동조자들은 반성은 커녕 당시로선 나라를 구하기 위한 '위대한 구국(애국)의 길'이라고 퍼트리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저의 죄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묻는 분들이 많습니다."
① 학생들이 반전버튼 운동으로(이), 주한미군 철수 등 반미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
② 북녘 친구들에게 편지쓰기 등을(이), 통해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
③ 통일산악회 등의 활동을 통해 ‘우리민족끼리 통일하자’는 리본을 달고 다닌 점 등 가시적 활동들이, 북에서 주장하는 대남적화통일의 반미노선과 국보법 폐지노선 등과 동일하며,
또 ‘우리민족끼리’ 이념은,
북의 연방제 통일전략의 구호인데 이를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여과 없이 수용하며 지지 동조하고 있다는 것.

김 교사의 이런 심정은 작금의 현실을 대변해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그는 "누가 나를 고발하였는가"라며 당시의 고발자들에 대해 "나를 고발한 사람들의 실체와 통일교육 탄압 사건의 음모를 정확히 알게 했습니다. 나를 고발한 자들은 조선일보, 그 배후에 뉴라이트, 외곽조직 한나라당이었습니다."라며 일일이 기록해 알리고 있다.

참고로 아래 글은 김 교사가 직접 작성한 글로서 약간의 편집을 거쳐 싣는다.
 

▲ 2006년 12월 9일자 조선일보 만평 : 전교조(관촌중) 통일운동을 ‘일심회’사건과 연결시키려는 의도를 드러냄.   



내가 지은 죄는,
- 아이들을 사랑한 죄, 6.15공동선언 따라서 통일교육을 한 죄입니다.


   어느덧 입추와 말복이 지나고 처서가 다가옵니다.
한여름 숨 막히던 땡볕 더위는 소슬한 가을바람 앞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립니다.
사이코패스처럼 도를 넘어선 독재와 탄압도 지금은 그 끝이 없는 양 설쳐대지만, 자연의 섭리처럼 하나둘씩 민중의 바다에 잠겨서 사그라들고 말 것입니다. 더 이상 과거 방식으로 통치하는 것을 우리 민중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죄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묻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가 교사로서 통일교육을 했기 때문에(때로 검찰은 제가 시켰다고도 주장합니다),
① 학생들이 반전버튼 운동으로 주한미군 철수 등 반미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
② 북녘 친구들에게 편지쓰기 등을 통해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
③ 통일산악회 등의 활동을 통해 ‘우리민족끼리 통일하자’는 리본을 달고 다닌 점 등 가시적 활동들이 북에서 주장하는 대남적화통일의 반미노선과 국보법 폐지노선 등과 동일하며, 또 ‘우리민족끼리’ 이념은 북의 연방제 통일전략의 구호인데 이를 ? 剋?학부모 교사들이 여과 없이 수용하며 지지 동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중심적 내용을 뒷받침하기 위해 검찰은 저의 시험지 내용이나 수행평가에서부터 반전버튼 운동, 북녘 친구들에게 편지쓰기 운동, 다음 카페 활동, 일일이성운동, 통일 화랑대 등 학생관련 활동은 물론이고, 학부모들과 함께한 통일 산악회, 통일교사모임 등 활동을 증거자료로 하고 있으며, 저의 사상검증 자료로서 강연 내용이나 이메일, 집에서 나온 북한관련 자료들, 심지어 하드에서 복구했다는 삭제파일까지 관련 증거로 들이밀고 있습니다.

 200여쪽이 넘는 검찰 공소장 내용은 모두 부분과 27개 공소항목으로 되어 있는데, 전체가 여기에 준하는 내용입니다. 예를 들어 공소항목 27항은 회문산 남녘 통일열사 추모 전야제 문화행사 참여인데, 학생들이 행사장에서 발표한 내용 속에 ‘우리 편지 못 가게 하는 국가보안법 폐지하라, 6.15공동선언 따라 우리 민족끼리 통일하자’ 등이 있었기 때문에 공소 항목으로 설정된 것입니다. 이외 26개 항목의 공소내용도 모두 제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반국가단체인 북을 이롭게 할 목적이 있었다는 정(情)의 근거를 잡기 위하여 만든 것에 불과합니다.

  비약과 단정으로 이루어진 죄의 내용을 조금만 보면, 6.15공동선언을 적화문서라 하며 통일을 뒤로 물리려는 세력의 비열한 음모가 게재되어 있음을 쉽게 간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민족사에 이미 솟아 넘치는 화해와 평화, 통일로 가는 민족 상생의 물결이 대하처럼 흐르며, 지어 어린 학생들의 심장에서조차 ‘우리민족끼리 통일하자’는 대의가 펄떡이고 있는데, 저들의 박해가 가혹하다 해서 저들에게 한 치도 뒤로 물릴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11차 재판에 임하는 저의 신념이고 자세입니다.


2008년 8월 22일 김형근 씀
 

▲ 조사 중에 있는 일일 이성(一日二省)운동, 김 교사는 친북이념을 내면화 하는 과정이라는 조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 플러스코리아




누가 나를 고발하였는가? 

 평화와 생명과 윤리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학생들이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세상을 주동적으로 헤쳐 나가도록 가르쳐 왔고,
이웃의 아픔 또한 나의 아픔으로 여길 수 있도록 대화하고 사랑하며
조국사랑 참마음은 인간에 대한 믿음과 함께 끝끝내 잃지 않도록 하나하나 붙잡고 씨름하면서 스스로 선 아이들 미래는 사람 세상, 통일된 세상일 거라는 두근두근 꿈을 꾸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국가를 부정하고 적을 이롭게 한다’는 대역 죄인이 되었습니다.

  같이 함께 했던 학부모님들이며 교사들이며 만날 때마다
“교사인 저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같이 했던 분들의 맘고생이야 오죽 하셨겠습니까?”라고 말씀드리며 가슴 속 시린 눈물들을 참아내곤 한답니다.
대한민국에서 빨갱이라고 낙인이 찍히는 것은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과 또 다른 인간관계마저 끊어져야 하는 무시무시한 형벌이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보고 싶은 학생들도 차마 만나지 못합니다. 아니 만나지 못하게 합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을까? 나는 무엇을 잘못 했는가?
하루에 열두번씩 곱씹어 보아도 잘 풀어지지 않던 매듭이었습니다.
하지만 0.7평 감옥에 짐승처럼 갇혀 있을 때,
‘국보법과 내 삶을 맞바꿀 수만 있다면...’ 상념 그 끝에 펼쳐진 이성은
나를 고발한 사람들의 실체와 통일교육 탄압 사건의 음모를 정확히 알게 했습니다.
나를 고발한 자들은 조선일보, 그 배후에 뉴라이트, 외곽조직 한나라당이었습니다.

  2006년 12월 초 조선일보에서 나를 상대로 대대적인 마녀사냥을 하였고,
중앙, 동아, 문화 등의 언론매체들이 합세를 하고, 뉴라이트 기관지에서 거품을 뿜어대고, 당시 한나라당 당직자들이 앞장서서 나를 허수아비로 만들어 놓고 공격하면서 이것이 노무현 정부의 실태라고 국가기강 해이라고 퍼부었습니다.


이후 2월 초까지 그들은 백범기념관 강의 등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빨갱이 교사를 그냥 놓아두고 있다’며 호들갑 떨며 대선을 앞둔 친미 보수세력 결집을 호소했습니다.
그들은 ‘경찰, 검찰은 잡아들이지 않고 무엇 하느냐’고 직접적으로 발언한 적도 많습니다.

  이후 검찰 조사 시 검사는 미리 수사하던 인지사건이라고 발뺌을 하였습니다만,
검찰측 증거목록을 자세히 보니까, 2006년 12월 이전에는 통상적인 첩보수준이었습니다.

 2005년 5월 회문산 문화행사의 경우, 당일 사복 경찰관이 직접 현장에 참여하여 조사했던 경찰보고서에는 통일교사모임에서 정리한 시간, 내용보다도 더 정확하게, 다음날 새벽 산행과 아침 8시 관촌중 학생들 귀가까지 시간별로 보고되어 있었으며, 문화행사에서 아무런 과격구호가 나오지 않았음이 사실대로 쓰여 있었습니다.  아무런 죄가 없는 사건이었던 게지요.


그래서 비공개로 진행된 제6차 재판에서 검찰측 증인인 대공분실 요원에게 이 문제를 제가 직접 따져 물었지만, 증인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얼버무리더군요.

그들이 나서서 고발했으니 역사는 이런 죄악를 아홉 개의 눈으로 지켜볼 것입니다.

2008년 8월 24일 김형근 씀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포토뉴스
메인사진
울주군, 제5회 작천정 벚꽃축제 개최
1/23
연재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