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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7만년-185] 단군조선 군후국(君侯國)의 역사 8

단군조선(檀君朝鮮)의 군후국(君侯國) 6-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8/02/22 [00:43]

[홍익인간 7만년-185] 단군조선 군후국(君侯國)의 역사 8

단군조선(檀君朝鮮)의 군후국(君侯國) 6-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8/02/22 [00:43]

 

[홍익 통일 역사=플러스코리아 천사태백] 청구국(靑邱國)의 시조는 고시씨(高矢氏)의 후손이다. 즉, 단군왕검 천제(天帝)가 고시씨의 후손을 산동(山東)지역에 봉한 나라로서 천군국(天君國)이 된다. 고시씨는 웅족(熊族) 출신이 된다.

 

(4) 청구(靑邱)

 

1) 시조 및 연혁

 

청구(靑邱)라는 말은 푸른 땅, 푸른 언덕이라는 뜻이 되는데, 배달나라 전기의 수도가 소재하였던 태백산(太白山)은 소위 중원(中原)의 서편에 있었던 반면에, 배달나라 후기에는 치우천왕이 천하(天下)를 평정(平定)하기 위하여 수도를 동쪽으로 옮긴 것이 되며, 이리하여 옮긴 수도가 중원의 동쪽에 위치한 지금의 산동지역에 있었던 것이고, 수도를 두었던 산동지역을 청구(靑邱)라 부른 것이 된다. 산동지역은 태산(泰山)지역을 빼면 거의 산이 없고 평원이나 언덕으로 된 지역이다.

 

그리하여 본래 청구(靑邱)라는 땅은 서기전2706년경 이후 배달나라 치우천왕(蚩尤天王, 자오지 한웅)이 수도를 삼은 곳으로서 지금의 산동지역이며, 배달나라의 지역을 오방위로 나눈다면, 동방(東方), 동부(東部)에 속하는 것이 되고, 조족문(鳥足文)과 과두문(蝌蚪文)을 창안하였다는 창힐(蒼詰)의 관할 지역에 속하는 것이 되는데, 배달나라 동부에는 염제신농국의 후계국인 단웅국(檀熊國)이 소재하였고, 후대에 단군왕검이 단웅국과 배달나라의 정통성을 이어 조선(朝鮮)을 개국하였던 것인 바, 단군조선이 상형문자와 표음문자가 함께 발전된 문자대국인 이유가 청제(靑帝) 창힐(蒼詰)과 관련이 있는 것이 된다.

 

배달나라의 수도였던 태백산(太白山)을 중앙으로 보면, 그 서쪽에 있었던 소호국(少昊國)이 백제국(白帝國)이 되고, 동부(東部)에 있었던 창힐국(蒼詰國)이 청제국(靑帝國)이 되며, 북부(北部)에 있었던 대요국(大撓國)이 흑제국(黑帝國)이 되고, 남부(南部)에 있었던 축용국(祝融國)이 적제국(赤帝國)이 되며, 중부(中部)에 있었던 (유)웅국((有)熊國)이 황제국(黃帝國)이 되는 바, 제14대 치우천왕이 수도를 삼은 청구(靑邱)는 동부(東部) 지역으로서 동경(東京)에 해당하는 것이 된다.

 

고시씨(高矢氏)는 배달나라와 단군조선 시대에 농사를 담당하였다. 즉 농사담당관인 우가(牛加)의 직을 수행한 것이 된다. 우가는 지금의 농산부장관에 해당한다.

 

청구는 단군조선 초기인 서기전2333년경 봉해진 것이 되는데, 서기전1122년경 주나라의 재상이던 동이(東夷) 출신의 강태공(姜太公)이 제(齊)나라에 봉해지면서 청구국이 축소되었던 것이 되고, 제30대 내휴(柰休) 천왕이 산동지역에 있던 청구국(靑邱國)을 순수(巡狩)한 서기전909년 이후 언젠가 제(齊)나라에 흡수된 것이 되는데 최소한 1,430년이상 존속한 것이 된다. 

 

2) 강역

 

청구(靑邱)는 발해만 남쪽 해안가를 포함한 산동 지역으로서, 북쪽으로는 고죽국(孤竹國)에 접하고, 서쪽으로는 은(殷)나라에 접하며, 동쪽으로는 바다에 접하고, 남서쪽으로는 남국(藍국)과 접하는 것이 된다.

 

청구국(靑邱國)이 주(周)나라의 제후국이던 제(齊)나라와의 관계 속에서 소위 래이(萊夷), 개이(介夷), 양이(陽夷), 우이(隅夷) 등으로 나뉘어진 것이라 보인다. 특히 래이는 고죽국과도 관련된 나라가 되는데, 청구의 땅에 고죽국 사람들이 정착하여 후대에 래이(萊夷)가 된 것으로 보이는 바, 시기적으로 서기전650년경 이전부터 산동지역에 래이가 존재하였다라면 고죽국이 자발적으로 세운 나라가 되며, 서기전650년 이후에 래이라는 나라가 생겼다면 서기전651년 연나라와 제나라의 합공으로 고죽국, 영지국, 산융을 침공한 때 고죽국이 망하면서 제나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3) 활동

 

서기전1236년에 남국(藍國), 구려(句麗), 몽고리(蒙古里)의 군사와 함께 은(殷)나라를 정벌하여 단군조선의 제후국인 엄(淹), 서(徐), 회(淮)를 세우는 데 일조를 하였다.

 

남국(藍國)은 소위 남이(藍夷)라고 부르며, 엄, 서, 회는 모두 남이(藍夷)의 분파가 된다. 구려와 몽고리는 황족(黃族)으로서 황이(黃夷)가 되고, 여기 청구(靑邱)는 고시씨의 후손들이 되는 바 웅족(熊族)의 후손이 되며, 웅족은 황족(黃族)의 분파이므로 청구는 황이(黃夷)가 되는 것이다.

 

4) 내륙8이(夷)와의 관계

 

중국내륙의 동쪽에 8이(夷)가 있는데, 이는 단군조선 구이(九夷)와는 다르며, 내륙8이에 청구(靑邱)라는 명칭은 특별히 포함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되는데, 산동반도 지역에 소재하였던 개이(介夷), 래이(萊夷), 양이(陽夷), 우이(隅夷) 등이 청구(靑邱)의 후예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특히 래이(萊夷)는 즉묵(卽墨) 즉 절묵(節墨)의 선대가 되는 고죽국(孤竹國)의 후예로 전해진다. 절묵의 절(節)이라는 글자가 죽즉(竹卽)이며, 묵(墨)은 고죽국의 임금이던 묵태씨(墨胎氏)를 가리키는 것이 되어, 즉묵과 절묵은 곧 고죽국의 후예임을 나타내는 글자가 되는 것이다.

 

산동지역에 있었던 래이(萊夷) 또는 절묵(節墨)이라는 나라는 고죽국이 성할 때 봉해진 나라인지, 아니면 고죽국이 연제(燕齊)에게 망한 때 생긴 나라인지는 불명이다. 고죽국의 고죽(孤竹)은 “곧대” 즉 “곧은 대”를 이두식으로 표기한 말로서 곧은 대와 같은 절개(節槪)를 나타내는 것이 된다.

 

그외 남이(藍夷)는 남국(藍國)을 가리키며, 남이의 서쪽 부근에 엄이(淹夷), 남이의 남쪽에 서이(徐夷)와 회이(淮夷)가 있었다. 엄이, 서이, 회이는 남이의 분파가 된다.

 

(5) 남국(藍國)

 

1) 시조 및 연혁

 

남국(藍國)의 시조는 치우천왕(蚩尤天王)의 후손이다. 즉, 단군왕검 천제(天帝)가 서기전2333년경 치우천왕의 후손을 봉한 나라로서 천군국(天君國)이 된다.

 

남국(藍國)이라는 말은 글자대로 보면 남색(藍色)과 관련된 땅의 나라가 되는데, 남(藍)은 색(色)의 위치로는 청색(靑色)과 보라색(紫色)의 중간에 해당되고 오행(五行) 상의 방향은 남동동(南東東)에 해당되어 청색이 되는 동쪽의 바로 남쪽에 위치하는 것이 된다.

 

즉 남(藍)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동쪽에 위치한 청구(靑邱)의 바로 남쪽이라는 의미를 가진 것이 되어, 산동지역 중 산동반도의 서쪽으로 태산을 포함하는 남(南)과 남서(南西)지역이 된다. 남국은 남이(藍夷)라고도 불리는데, 태산에서 양자강 하류지역에 이르는 지역이 바로 남이들의 거주지, 활동지역이 된다.

 

남이의 남쪽이 되는 양자강 유역과 그 남쪽 지역은 붉은 색을 뜻하는 적족(赤族, 적이)의 땅이다. 9족중에서 기본 5족이 되는 황족(黃族), 백족(白族), 현족(玄族), 남족(藍族), 적족(赤族)의 명칭은 색에 따른 방향과도 관련되어 있다. 즉 황족은 동서북중(東西北中), 백족은 서쪽, 현족은 북쪽, 남족은 남동동쪽, 적족은 남쪽의 방향과 각각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치우(蚩尤)는 치우(治尤)를 다르게 표기한 글자이며, 배달나라와 단군조선 시대에 병력(兵力) 즉 군사(軍事)를 담당한 관청이다. 치우는 형벌담당인 구가(狗加) 및 명령담당인 마가(馬加)와 밀접하게 관련된 직책으로서 웅가(熊加)라고도 하는데, 지금의 국방부에  해당한다. 

 

남국은 단군조선 초기인 서기전2333년경 봉해진 것이 되는데, 서기전1122년경 주나라의 재상이던 동이(東夷) 출신의 강태공(姜太公)이 제(齊)나라에 봉해지면서 청구국(靑邱國)처럼 축소되었던 것이 되고, 제30대 내휴(柰休) 천왕이 산동지역에 있던 청구국(靑邱國)을 순수(巡狩)한 서기전909년 이후 언젠가 제(齊)나라에 흡수된 것이 되는데 최소한 1,430년이상 존속한 것이 된다. 

 

2) 강역

 

남국(藍國)은 산동 지역으로서, 북동쪽으로는 청구(靑邱)에 접하고, 서쪽으로는 은(殷)나라에 접하며, 남쪽으로는 서국(徐國=徐夷)과 접한다. 청구와 남국 사이의 태산(泰山) 부근에 엄이(淹夷=엄독홀)가 있었던 것이 된다.

 

3) 내륙8이(夷)와의 관계

 

남이(藍夷)는 남국(藍國)을 가리키며, 남이의 북서쪽 부근에 엄이(淹夷), 남이의 남쪽에 서이(徐夷)와 회이(淮夷)가 있었고 그외 산동반도에 개이(介夷), 래이(萊夷), 우이(隅梨), 양이(陽夷) 등이 있어 8이라고 한다.

 

남이(藍夷), 서이(徐夷), 회이(淮夷)는 남이(藍夷) 계통이 되며, 산동반도에 있었던 나머지 개이, 래이, 우이, 양이는 청구(靑邱)의 후예로서 황이(黃夷)가 된다. 

 

(6) 숙신(肅愼)

 

1) 시조 및 연혁

 

숙신국(肅愼國)의 시조는 신지씨(神誌氏)이다. 즉, 단군왕검 천왕(天王)이 서기전2333년경 송화강 아사달을 포함하는 방족(方族) 즉 방이(方夷)의 땅이 되는 송화강 아사달의 동쪽에 신지씨(神誌氏)를 봉한 나라로서 천후국(天侯國)이 된다.

 

숙신(肅愼)이라는 글자는 동쪽이라는 말과 관련되어 있는데, 이는 단군조선의 수도로 보아 동쪽에 위치한 나라가 되며, 글자대로 보면 엄숙하고 삼간다는 의미로서 설(元旦, 새, 新) 명절을 지내는 자세와 통하는 말이 된다.

 

숙신(肅愼)을 식신(息愼), 직신(稷愼)이라고도 적는데, 식신(息愼)은 숙신(肅愼)을 비슷한 소리로 적은 글자가 되고 직신(稷愼)은 식신(息愼)을 비슷한 소리로 적은 글자가 된다. 한편, 숙신을 쥬신이라고 읽어 조선(朝鮮)을 읽는 소리와 같다라고 보아 쥬신을 주신(授)라는 뜻으로서 단군조선의 국명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숙신과 조선은 엄연히 다르며, 숙신(肅愼)은 상국(上國)이자 중앙조정(中央朝廷)의 나라 즉 경계가 없는 천제(天帝), 천왕(天王)의 나라인 조선(朝鮮) 천국(天國) 내 일반 제후국의 하나에 해당하는 천후국(天侯國)의 국명이 된다.

 

신지(神誌)는 배달나라와 단군조선 시대에 문자(文字)와 명령(命令)을 담당한 관청으로서 명령담당이던 마가(馬加)의 직을 수행한 것이 되고, 문자를 정리하고 역사서(歷史書)와 지도(地圖)와 책력(冊曆)을 편찬하며, 제천문(祭天文)을 지은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신지는 후대에 문서를 담당하였던 한림원(翰林阮)과 왕의 명령을 관장하는 승지원(承旨阮)에 해당된다. 배달나라 시대에는 마가(馬加)가 사람의 목숨과 직결되는 국방과 명령을 담당한 것이 된다.

 

숙신은 이후 읍루(挹婁), 말갈(靺鞨), 여진(女眞), 만주(滿洲)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데, 모두 숙신의 후예가 된다.

 

숙신은 부여 동쪽의 송화강 넘어에 위치하며 단군조선의 수도이던 송화강 아사달을 포함하는 나라이므로 단군조선의 대칭(代稱)이 될 수도 있는데, 실제로도 고대중국의 기록에서 단군조선을 숙신(肅愼)이라 대신 기록한 것으로 된다. 즉 서기전1122년경 주나라가 건국된 후 숙신이 궁시(弓矢) 등을 바쳤다는 기록에서, 숙신은 단군조선의 제후국이며 단군조선 조정에서 숙신에 명하여 주나라 조정으로 축하사절로 보낸 것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한편, 서기전1286년에는 단군조선의 수도가 북부여의 상춘으로 옮겨져 후기 단군조선이라 불리며, 서기전425년에는 중부여(中夫餘)의 장당경(藏唐京, 심양)으로 옮겨 국호를 대부여(大夫餘)라 칭하기도 하였는데, 부여라는 말이 단군조선의 대칭이 되는 국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왕문(王文)은 서기전925년경 사람으로서 부여 사람이라고 기록되고 있다.

 

2) 강역

 

동쪽으로는 우수리강(牛首里江)을 넘어 동해(東海)에 이르며, 남쪽으로는 지금의 두만강을 중심으로 우수리강을 포함하는 지역이 되는 예국(濊國)과 접하며, 서쪽으로는 부여(夫餘)에 접하고 남서쪽으로는 옥저(沃沮)에 접하고, 북쪽으로는 현이(玄夷)와 접한다.

 

3) 말갈, 여진, 만주

 

말갈(靺鞨)은 숙신(肅愼)의 후예이며, 흑수말갈은 흑룡강의 현이(玄夷)를 가리키는 것이 된다. 여진(女眞)은 말갈의 후예로서 신라왕족 출신의 김아버지(阿骨打=아뼈치=아버지)에 의하여 금(金)나라가 세워졌고, 만주(滿洲)는 여진의 후손으로서 금나라 왕족의 후손인 누루하치(金아지=金의 후손)가 청나라를 세웠다.

 

경주김씨 시조 김알지(金閼知)는 김수로왕(金首露王)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혈족(12촌?)이라고도 하는데, 알지는 누루하치의 하치와 같은 말로서 김알지와 누루하치는 다 같이 김(金, 금)의 후손이라는 뜻을 가지는 말로서 이두식 표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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