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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7만년-187] 단군조선 군후국(君侯國)의 역사 10

단군조선(檀君朝鮮)의 군후국(君侯國) 8-[삼한관경 내 제후국 (天君國, 天侯國)]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8/02/25 [14:44]

[홍익인간 7만년-187] 단군조선 군후국(君侯國)의 역사 10

단군조선(檀君朝鮮)의 군후국(君侯國) 8-[삼한관경 내 제후국 (天君國, 天侯國)]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8/02/25 [14:44]

 

[홍익 통일 역사=플러스코리아타임즈 천산태백] 비류국(沸流國)의 시조는 도라(道羅)인데, 제2대 단군부루 천왕(天王)이 서기전2240년경 부여 땅인 상춘(常春, 長春)과 졸본(卒本) 사이에 봉한 나라로서 천후국(天侯國)이 된다.

 

(10) 비류(沸流)

 

1) 시조 및 연혁

 

비류(沸流)라는 말은 물과 관련되는데, 물이 흐르는 소리가 펄펄 끓는 물소리와 같다고 하여 생긴 것이 되며, 아마도 경사가 많이 져 물살이 센 지역이 된다.

 

2) 강역

 

비류는 북부여와 북옥저 및 동옥저 사이에 위치한 나라가 되는데, 북쪽으로는 북부여 땅인 상춘(常春)과 동부여 땅인 길림(吉林)이 위치하고, 남쪽으로는 옥저(沃沮)에 접하고, 서쪽으로는 북옥저(北沃沮)에 접하고, 동쪽으로는 동옥저(東沃沮)에 접하는 것이 된다.

 

3) 후대의 역사

 

서기전28년에 비류왕 송양(松壤)이 고주몽 성제(聖帝)에게 굴복하였는데, 이때 고주몽 성제는 비류 땅을 다물도(多勿都)라 하고 송양을 다물후(多勿侯)라 봉하여 본격적인 다물정책을 펼치기 시작하였던 것이 된다. 곧이어 고주몽 성제는 서기전27년 10월에 비류의 서쪽에 위치한 북옥저(北沃沮)를 멸망시키고, 서기전26년에 수도를 졸본(卒本)에서 북서쪽의 상춘(常春: 늘봄, 訥見)으로 옮겼다.

 

비류국은 서기전2240년경부터 서기전28년까지 약2,210년간 존속한 것이 된다.

 

(11) 졸본(卒本)

 

1) 시조 및 연혁

 

졸본국(卒本國)의 시조는 동무(東武)인데, 제2대 단군부루 천왕(天王)이 서기전2240년경 옥저(沃沮)와 예국(濊國) 사이에 봉하였던 나라로서 천후국(天侯國)이 된다.

 

졸본(卒本)이라는 말은 홀본(忽本)과 같으며, 홀본의 변음(變音)이 된다. 홀본은 “고을 불“ 즉 ”고을 벌“이라는 말을 이두식으로 표기한 것이며, 고을이 있는 벌판이라는 뜻을 가진다. 고을은 골짜기를 가리키는데, 이리하여 졸본, 홀본은 골짜기가 있는 벌판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다.

 

2) 강역

 

졸본은 북부여 땅인 상춘(常春)과 동부여 땅인 길림(吉林)의 남동쪽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예국(濊國)에 접하고, 북쪽으로는 부여(夫餘)와 비류(沸流)와 숙신(肅愼)에 접하며, 남쪽과 서쪽으로는 옥저(沃沮)에 접하는 것이 된다.

 

3) 북부여 시대의 졸본 역사

 

서기전108년에 의병을 일으켜 북부여를 부흥(復興)시킨 고두막한(高豆莫汗)은 단군조선 47대 단군 고열가(古列加) 천왕(天王)의 현손(玄孫)으로서 원래 졸본의 한(汗)이며, 서기전108년에 위씨조선(衛氏朝鮮)이 한(漢)나라에 망하자 땅을 지키고 수복하기 위하여 자칭 동명(東明)이라 칭하고 의병을 일으켰고, 위만조선의 각 지방 백성들이 함께 들고 일어나 한(漢)나라 군사를 물리쳐 소위 한사군 설치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던 것이 된다.

 

동명(東明)이라 칭하였다라는 것은 동명국왕 또는 동명왕이라 칭한 것이며, 군사를 움직여 전쟁을 수행한 것이 된다. 동명(東明)이라는 말은 새발, 새벌이라는 뜻을 가지는데 새부여라는 말과 같아, 고두막한이 북부여를 새로이 부흥시킨다는 의미로서 국호를 새부여라 한 것이 된다. 물론 동쪽의 부여인 동부여도 새부여가 되지만, 방향으로 본 지명이나 국명이 되므로 새로운 부여라는 새부여와는 의미상 차이가 있는 것이 된다.

 

이후 고두막한은 서기전86년에 북부여 해부루(解夫婁) 천왕을 동부여후(東夫餘侯)로 삼고 천왕이 되었다. 해부루를 동부여왕(東夫餘王)이라고도 하는데, 고두막 단군은 천왕(天王)이 된다. 고두막한은 해부루 단군에게 "내가 천제자이니 나라를 비키시오"라고 하였는데, 천제자(天帝子)는 천제(天帝)의 아들로서 곧 천왕(天王)이라는 말과 같은 것이 된다. 즉 천제자(天帝子)는 임금이 되면 천왕(天王)이 되는 바, 따로이 작위가 없으면 천제자인 것인데, 천왕의 자격을 가진 신분(身分)이 된다.

 

북부여를 이은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을 동명성제(東明聖帝)라 하는 바, 여기 동명(東明)이라는 칭호는, 북부여 후기인 서기전108년 위씨조선(衛氏朝鮮)이 망하자 동명(東明) 즉 새부여라 칭하며, 한(漢)나라가 병탄하려 하던 단군조선 땅이었던 번조선(番朝鮮) 땅과 낙랑(樂浪), 구려(句麗), 진번(眞番), 임둔(臨屯) 등의 고토를 회복하고자 북부여의 부흥을 꾀하고, 단군조선의 고토를 회복하려 다물업(多勿業)을 펼쳤던 졸본 출신의 고두막한(高豆莫汗)의 칭호인 동명(東明)에서 나온 것이 된다.

 

즉, 고구려 시조 고주몽은 북부여 고두막 단군 계통을 이어 졸본(卒本)에서 북부여 대통(大統)을 이었으며, 북부여 동명왕(東明王) 고두막한의 업(業)을 계승하여, 단군조선의 고토를 수복함으로써 고구려(高句麗)라는 나라로 하나로 통일하기 위하여 서기전28년부터 본격적으로 다물정책(多勿政策)을 펼쳤던 것이다.

 

(12) 흉노(匈奴)

 

1) 시조 및 연혁

 

흉노국(匈奴國)의 시조는 열양(列陽) 욕살(褥薩)이던 색정(索靖)인데, 죄를 지어 서기전2177년 약수(弱水)에 종신금치(終身禁置)를 당하였던 색정(索靖)을 서기전2160년경에 사면(辭免)하여 그 약수지역에 봉한 나라로서 천후국(天侯國)이 된다.

 

흉노(匈奴)라는 말은 훈나 또는 하늬라는 말을 이두식으로 표기한 글자가 되는데, 이는 서쪽에 있는 땅이라는 말이며, 단군조선의 영역으로 보면 단군조선의 군국(君國)으로서 중간지역에 해당하던 구려(句麗)의 서쪽에 위치한 나라가 된다

 

2) 강역

 

흉노는 단군조선의 부족의 하나로서 약수(弱水)지역이 되는 지금의 오르도스 지역을 근거지로 하였는데, 북쪽으로는 선비(鮮卑)에 접하고, 남쪽으로는 고대중국에 접하며, 동쪽으로는 구려(句麗)와 태항산 서쪽에 소재한 기후국(箕侯國)에 접하고, 서쪽으로는 견이(畎夷)와 백이(白夷)에 접한 것이 된다.

 

3) 후대의 흉노 역사

 

흉노족의 역사는 서기전8세기경부터 팽창활동기가 되는데, 흉노의 활동은 기록상 서기전90년경까지 이어진다. 그리하여 단군조선 영역에서의 흉노의 역사는 서기전2160년경부터 서기전90년경까지 약2,070년이 될 것이다.

 

흉노의 활동지역은 주로 만리장성의 북쪽 지역으로서 동과 서를 오가는데, 서쪽의 견이(畎夷)나 서이(徐夷)와 교류가 많았던 것이 되고, 특히 철기문화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스키타이족으로도 알려져 있다.

 

서기전7세기경부터 본격 활동하던 흉노족의 일부는 서방으로 이동하여 지금의 헝가리와 핀란드라는 나라를 세워 흉노의 역사는 이어진 것이 되며, 서기전110년경 전후에 한무제(漢武帝)에 사로잡힌 흉노의 휴도왕(休屠王) 김일제(金日磾)는 산동지역의 투후(秺侯)로 봉해졌으며, 그 후손들과 무리들은 서기23년에 인척이 되는 왕망(王莽)의 신(新)나라가 망하자 대거 한반도의 남쪽으로 이동하여 6가야를 이루었다.

 

후대에 흉노족의 왕이 된 김씨는 소호금천씨의 후손으로서 경주(慶州)와 가야(伽倻) 김씨의 선조가 되며, 한국 김씨의 시조가 흉노족이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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