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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7만년-196] 단군조선 군후국(君侯國)의 역사 19

소위 서언왕의 나라 서국(徐國)의 흥망 1-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8/03/12 [12:51]

[홍익인간 7만년-196] 단군조선 군후국(君侯國)의 역사 19

소위 서언왕의 나라 서국(徐國)의 흥망 1-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8/03/12 [12:51]

 

[홍익 통일 역사=플러스코리아 천산태백] 주(周)나라(서기전1122년~서기전249년) 시대에 중국내륙의 동쪽에 "서(徐)"라는 나라의 왕이었던 서언왕(徐偃王)이 동이족(東夷族)이었다는 사실은 상식일 것이다. 아마도 막연히 동이족의 나라였다고 알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기록을 자세히 보면 서(徐)라는 나라 즉 서국(徐國)은 단군조선이 중국내륙의 동쪽인 산동지역에 서기전1236년에 봉하였던 제후국이며, 주(周)나라와 전쟁을 하고 한때 중국내륙의 동이(東夷) 세력의 중심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서국은 중국기록에 의하여 서이(徐夷)라고도 불리는데, 서기전1236년부터 오(吳)나라 합려왕에게 망한 때인 서기전512년까지 725년간 존속한 나라가 된다.

 

서언왕(徐偃王)의 나라가 단군조선의 제후국이었다는 것은 단군세기(檀君世紀)에 보면 그대로 나타난다. 그리고 중국역사책인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東夷列傳)에도 동이족의 나라였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물론, 서언왕의 상국(上國)이나 본국(本國)이 어디였는지는 적고 있지는 않다. 그것은 주(周)나라도 마찬가지로 그 상국(上國)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단군조선이 그들의 상국(上國)으로서 천국(天國), 천왕국(天王國)이었던 것이다.

 

서언왕의 "서(徐)"라는 나라는 중국내륙의 주나라를 견제하고 동이세력을 규합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이에 주나라는 서기전1236년경부터 존속한 소위 서언왕의 나라인 서국(庶國, 徐夷)과 서기전1122년부터 서기전512년까지 약 610년간 병존하였고, 그외 동이족의 나라인 회국(淮國)과는 서기전221년경까지 약 900년간 병존하였으며, 그외에도 여러 지역에 자리잡았던 수 많은 동이족(東夷族)의 나라와 병존하였던 것이 된다.

 

주(周)나라가 사실상 제후국들의 패권주의 정책과 정복전쟁으로 말미암아 천자국(天子國)의 자리를 무시당하는 전국시대(戰國時代, 서기전404~서기전249년)에도 중국내륙의 동쪽인 회대(淮岱)지역에는 동이(東夷)의 세력들이 여전히 활동하고 있었다.

 

진시황(秦始皇)이 중국을 통일하면서 중국내륙의 동이들이 진(秦)나라에 흡수되면서 비로소 단군조선 자치제후국들이 자취를 감추게 되고, 진(秦)나라와 한(漢)나라와 대립하던 단군조선 후예들의 세력은 주로 만리장성(萬里長城) 밖에서 펼치게 되었다. 진한시대 만리장성 바로 밖에는 흉노(匈奴), 선비(鮮卑), 동호(東胡) 등 여러 명칭으로 불리는 단군조선의 후예(後裔) 세력들이 있었던 것이다.

 

흉노(匈奴)는 서기전2177년 열양(列陽)의 욕살(褥薩)이던 색정(索靖)이 죄를 지어 약수(弱水)에 유배당한 후, 뒤에 사면되어 그곳에 봉해져 흉노족(匈奴族)의 시조가 되었다고 기록되고 있다.

 

열양(列陽)은 열수(列水)의 남쪽이라는 말이 될 것인데, 열수는 큰 지류가 여럿인 지금의 고하(沽河)가 되고, 이에 열양은 고하의 남쪽 지역으로서 포괄적으로는 대요수(大遼水)이던 지금의 영정하 동쪽에 위치하여 요동(遼東)지역에 속하게 된다. 욕살은 성주(城主)나 원(原)의 책임자로서 지방장관이 되며, 제후(諸侯)가 되는 한(汗)의 아래 직위가 된다. 때에 따라 욕살(褥薩)이 승진하여 한(汗)으로 봉해지기도 하였다.

 

또, 선비(鮮卑)는 서기전5000년경 한국(桓國) 시대에 12한국(桓國) 중의 하나로서 배달나라(檀國)와 단군조선(檀君朝鮮) 시대를 거치면서 명맥을 유지하여 왔으며, 서기전1622년에 그 선비국의 남쪽의 일부지역에 단군조선에서 단군의 아우를 남선비(南鮮卑)의 대인(大人)으로 봉한 사실이 있다.

 

동호(東胡)는 단군조선(檀君朝鮮)의 번한(番韓, 번조선)을 가리키는 다른 명칭이 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 동호에는 선비(鮮卑)와 흉노(匈奴)와 구려(句麗)가 포함된다고 할 것이다. 이 동호(東胡)라는 말이 중국어로 뚱후에 유사한 소리로서 퉁구스족(通古斯族)을 가리키는 것이며 곧 선비(鮮卑)를 가리키는 것도 된다. 즉, 흉노, 선비, 구려, 동호는 모두 구족(九族) 중의 황족(黃族)으로서 곧 황이(黃夷)이며, 북이(北夷)이고, 북융(北戎)이며, 북적(北狄), 산융(山戎)으로 불리기도 하는 것이다.

 

고대중국에서는 주로 만리장성 밖의 동쪽에 있는 번한(番韓), 번조선(番朝鮮) 사람들을 동호(東胡)라고 불렀던 것이 된다. 번한은 고죽국(孤竹國), 남국(藍國), 청구(靑邱國) 등의 제후국을 관할하였는데, 단군조선 전기에는 번한이라는 나라의 관경은 요수(遼水)가 되는 지금의 북경 부근을 흐르는 영정하(永定河)를 포함하여 동쪽의 발해만유역과 서쪽의 요서(遼西)지역과 남쪽의 산동(山東) 지역과 회수(淮水) 지역까지였다.

 

그러다가, 단군조선 후기인 서기전909년 이후에는 차츰 산동지역의 청구(靑邱), 남국(藍國), 엄국(淹國), 서국(徐國), 회국(淮國) 등이 주나라의 제후국이던 제(齊), 노(魯) 등의 침공으로 축소되거나 래이(萊夷), 개이(介夷), 양이(陽夷), 우이(隅夷), 엄이(淹夷), 남이(藍夷), 서이(徐夷), 회이(淮夷) 등 소위 내륙8이(夷)로 불리면서 병존해 왔던 것이 되고, 서기전650년경에 고죽국(孤竹國)을 잃음으로써, 번한(번조선)은 지금의 영정하(永定河)인 대요수(大遼水)의 동쪽 즉 요동(遼東) 지역과 진번(眞番)의 남쪽이 되는 지금의 요하(遼河) 즉 요동반도 서쪽으로 발해만 유역에 해당하는 지역을 관할하게 되었던 것이고, 회대지역의 소국(小國)의 제후국들은 거의 독립자치제로 내려온 것이 된다.

 

단군조선에는 삼한(三韓)을 두어 진한(眞韓), 마한(馬韓), 번한(番韓)이라 하였는데, 진한은 북보(北堡)로서 북쪽 지역을 관할하고, 마한은 남보(南堡)로서 남쪽 지역을 관할하며, 번한은 서보(西堡)로서 서쪽 지역을 관할하였다.

 

이중 번한의 관할에 지금의 북경 남쪽에 있었던 고죽국(孤竹國), 발해만 남쪽인 산동지역에 있었던 청구국(靑邱國), 청구국의 남쪽에 있었던 남국(藍國:藍夷), 그후 청구(靑邱)의 서쪽이자 남국(藍國)의 북쪽 지역에 봉해졌던 엄국(淹國:淹夷), 남국(藍國)의 남쪽 지역에 봉해졌던 서국(徐國:徐夷), 회수(淮水) 지역에 봉해졌던 회국(淮國:淮夷), 그 외 내륙8이(夷)에 속하는 래이(萊夷), 개이(介夷), 양이(陽夷), 우이(隅夷) 등의 단군조선 제후국들이 속하였던 것이다.

 

여기서는 단군조선 번한관경 내 중국내륙의 동이세력 중 서국(徐國)을 중심으로 흥망(興亡)을 살펴보고, 회국(淮國) 등 동이세력의 존망을 간략히 알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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