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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7만년-203] 단군조선 군후국(君侯國)의 역사 26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8/03/19 [13:02]

[홍익인간 7만년-203] 단군조선 군후국(君侯國)의 역사 26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8/03/19 [13:02]

-구족(九族), 구한(九桓), 구려(九黎), 구이(九夷) 4-

 

4. 고대중국을 형성한 족속과 한단조선(桓檀朝鮮:한배달조선)의 구이(九夷)

 

1) 고대중국의 기본 줄기인 사이(四夷)

 

[홍익통일 역사-플러스코리아 천산태백] 고대중국을 중심적으로 형성해 온 족속을 사이(四夷)라고도 하는데, 이는 고대중국의 둘레에 존재하면서 그들의 조상이 되는 이족(夷族)으로서, 동이(東夷), 남이(南夷), 서이(西夷) 북이(北夷)를 가리키는 것이 된다. 여기서 동이는 특히 중국내륙의 동이(東夷)가 되며, 남이는 양자강 남쪽의 적이(赤夷)가 되는 남만(南蠻)을, 서이는 황하중상류 지역의 백이(白夷)가 되는 서융(西戎)을, 북이는 황하 이북의 황이(黃夷)가 되는 북적(北狄, 北戎)을 각각 가리키는 것이 된다. 물론 중국내륙의 동이는 단군조선 삼한(三韓)을 가리키는 동이 중 번한관경에 속하는 동이의 일부가 된다.

 

즉, 고대중국의 뿌리가 되는 사이(四夷)는 구이(九夷)에 속하는 일부 족속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고대중국의 뿌리는 배달조선이며, 특히 실질적인 중국의 시조가 되는 황제헌원(黃帝軒轅)은 배달나라 시대에 웅족(熊族)의 후손으로서 역대 고대중국이라는 나라의 왕족, 지배층의 조상이 되는 것이다.

 

2) 동이(東夷, 황이(黃夷)와 남이(藍夷))

 

동이(東夷)는 명칭상으로 보면 역사적으로 주(周)나라 전국(戰國) 시대에 단군조선 본국과 중국내륙의 산동과 회수지역에 걸쳐 소재한 단군조선 제후국을 가리키는 말이 되는데, 이는 곧 단군조선 삼한관경(三韓管境)을 가리키는 말이 된다. 또한, 단군조선은 배달나라를 정통계승한 나라이므로 단군조선 이전의 나라인 배달나라(檀國)의 전체를 부르는 명칭인 구려(九黎)를 동이(東夷)라고도 부르게 되는 것이다.

 

동이(東夷)라는 말은 주(周)나라가 서기전403년 이후 전국 시대에 스스로 중화(中華), 중국(中國)이라고 높이면서 동서남북의 사방에 있던 단군조선의 제후국 땅을 동이(東夷), 남만(南蠻), 서융(西戎), 북적(北狄)으로 비하(卑下)하였던 데서 나오는 것이다.

 

원래 동이(東夷)는 구이(九夷)에서 나오는 용어가 된다. 즉 단군조선은 원래 구이(九夷)의 나라이며, 주나라 시대에 중국내륙의 동쪽에 있던 동이는 구이 중의 극히 일부분에 해당하는 것이다.

 

춘추(春秋) 시대인 서기전551년생인 공자(孔子)도 단군조선을 구이(九夷)라고 불렀다. 즉, 공자는 단군조선이 당시 주나라를 둘러싼 땅을 모두 포괄하는 나라인 단군조선을 구이의 나라라고 불렀던 것이다. 서기전403년 이후 전국시대에 이르러 구이의 나라인 단군조선을 나누어 단군조선 본국인 삼한(三韓)을 가리켜 동이(東夷)라고 부른 것이 된다. 중국내륙의 동이는 곧 단군조선 번한(番韓)의 관할에 속한다. 동이는 곧 그들의 조상이자 스승이자 임금의 나라였다.

 

고대중국의 역대 왕인 황제헌원(黃帝軒轅) 이하 거의 모든 왕들이 배달나라 웅족의 후손이 되고, 황제헌원은 배달나라 자부선인(紫府仙人)의 제자(弟子)이고, 요(堯)임금은 배달나라의 서보(西堡)이던 백제국(白帝國)에서 도(道)를 배웠고, 순(舜)임금은 포의자(蒲衣子)의 제자이면서, 단군조선 중앙조정의 중신이던 유호씨(有戶氏)의 아들이자 환부(鰥夫)의 직을 수행한 직속 신하(臣下)이며, 이들의 나라는 곧 배달나라와 단군조선의 제후국인 천자국(天子國)이었던 것이므로, 배달조선은 고대중국의 조상(父祖)의 나라, 스승(師傅)의 나라, 윗 임금 즉 상제(上帝)의 나라였던 것이다.

 

동이(東夷)라는 용어는 주나라 전국시대에 처음 나타나는 것이 되며, 죽서기년(竹書紀年)의 기록에는 서기전1199년에 해당하는 은(殷)나라 제후국이던 주(周)나라에 관한 기록에서 주나라가 서서히 역사에 등장하는 시기에 처음 나타나는데, 이는 서기전403년 이후 전국시대에 주나라를 중화(中華)라고 간주한 상태에서 역사를 기록할 때, 서기전1199년경에 제후국이던 주(周)나라의 동쪽에 위치한 당시 중원의 땅을 차지하고 있던 천자국(天子國) 은(殷)나라의 동쪽이자 중국내륙의 동쪽에 위치한, 단군조선을 가리켜 동이(東夷)라고 적은 것이 된다.

 

동이(東夷)에는 넓게는 단군조선의 중심이 되는 황이(黃夷), 남이(藍夷), 양이(陽夷), 우이(于夷), 방이(方夷), 현이(玄夷)가 포함되며, 여기서 고대중국의 직접적인 조상이 되는 중국내륙의 동이에는 일부의 황이(黃夷)와 남이(藍夷), 일부의 양이(陽夷)가 포함된다. 회대지역의 대표적인 황이(黃夷)에는 단군조선의 군국(君國)인 청구(靑邱)를 들 수 있고, 배달나라 시대에는 진제국(震帝國) 태호복희(太皞伏羲)의 후손, 염제국(炎帝國) 염제신농(炎帝神農)의 후손, 웅국(熊國) 황제헌원(黃帝軒轅)의 후손들이 모두 포함된다.

 

태호복희는 배달나라 한웅 천왕(天王)의 아들로서 천군(天君)이고 우사(雨師)를 지낸 인물로서 황이(黃夷) 출신이며, 염제신농(炎帝神農)은 황이의 일파인 웅족(熊族) 출신으로서 배달나라 우가(牛加)를 지낸 인물로 염제(炎帝)로서 천자(天子)이고, 황제헌원은 또한 웅족 출신으로서 유웅국(有熊國)을 계승하여 황토고원(黃土高原)의 웅국(熊國)을 다스린 인물로서 천자(天子)인 것이다.

 

남이(藍夷)는 서기전5000년 이전부터 내려온 구족(九族, 九夷)의 하나로서 후대에 태호복희의 나라인 진제국(震帝國)의 백성이 되었고, 염제신농의 나라인 염제국(炎帝國)의 백성이 되었으며, 배달나라 후기인 치우천왕(蚩尤天王) 시대에 그 중심백성이 되었던 것이다. 이후 단군조선 시대에는 단군조선의 군국(君國)인 남국(藍國)이 있었고, 남이(藍夷)와 함께 남이(藍夷) 계통으로 내륙8이에 해당하는 엄이(淹夷), 서이(徐夷), 회이(淮夷)가 대표적이며 그 외 지역에 따른 명칭으로 사이(沙夷), 사이(泗夷) 등이 있었다.

 

양이(陽夷)는 한반도에 정착하였던 황이(黃夷)의 일파인 양이(陽夷)가 산동지역으로 진출한 것으로 되는데, 단군조선 시대에는 단군조선의 군국(君國)인 청구국(靑邱國)의 백성이 되었던 것으로 된다. 서기전909년 이후 어느시기에 청구국이 제(齊)나라에 흡수된 이후에는 청구국의 분국이 되는 개이(介夷), 우이(隅夷), 래이(萊夷)와 더불어 양이(陽夷)라는 국명으로 존재한 것이 된다.

 

중국내륙의 동이(東夷)는 서기전221년에 진시황에게 회이(淮夷)가 마지막으로 망함으로써 진(秦)나라에 흡수된 것이 되어, 중국 내륙에서 독자적인 동이라는 나라는 사라지고 이후 고대중국의 백성으로 섞인 것이 된다.

 

3) 서이(西夷, 백이(白夷), 서융(西戎))

 

고대중국을 형성한 서이(西夷)는 원래 단군조선의 구족의 하나인 백이(白夷)의 후손이면서 그 일파가 된다. 즉, 서쪽에 위치한 이유로 서이(西夷)라고 불리는 것이 되는데, 주(周)나라가 서기전403년 이후 전국(戰國)시대에 스스로 중화(中華)라고 높이면서 서이(西夷)를 서융(西戎)이라 비하하였던 것이 된다.

 

백이(白夷)의 조상은 서기전7197년경 파미르고원에서 사방으로 분거하기 이전인 서기전8000년경에 먼저 동쪽으로 마고성(麻姑城)을 나가 사막지대에 정착한 지소씨(支巢氏)가 되는데, 이 지소씨는 서방으로 분거한 백소씨(白巢氏)의 일파로서 아시이 백인종 계통의 시조가 되는 셈이다.

 

백이(白夷)는 서기전5000년경부터 한인씨(桓因氏) 한국(桓國)시대의 9족에 속하는 나라가 되며, 서기전7000년경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나오는 배리강 문화의 주인공으로 추정되는데, 서기전7197년부터 시작된 황궁씨(黃穹氏) 한국(桓國) 시대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서기전7197년경 사방분거 이후 서기전6100년경까지 약 1,000년에 걸쳐 정착하면서, 천산(天山) 동북으로 이주한 황궁씨(黃穹氏)의 일파가 남쪽으로 내려와 황하(黃河) 중상류 지역에 정착하고 있던 지소씨족(支巢氏族)의 땅으로 들어가 정착하는 과정에서 서로 충돌이 있었는데, 이때 황궁씨가 무리를 다스리는 법질서를 확립하면서 악(惡)을 진압하는 사법적(司法的) 천권(天權) 즉 왕권(王權)을 상징하는 칼(劍)의 부인(符印)을 더하여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정립하고서 통치지배권(統治支配權)을 세운 것이다.

 

서기전7197년경에서 서기전6100년경 사이에 벌어졌던 황하 중상류 지역에서의 황궁씨족(黃穹氏族)의 일파인 이주민(移住民)과 선착민(先着民)인 지소씨족과의 전쟁은 후대인 서기전3897년경 한국(桓國) 말기에 세상이 다시 어지러워 지면서 재발되어 소위 웅족(熊族)과 호족(虎族)의 전쟁으로 나타난 것이 된다. 

 

서기전3897년에 배달나라 시조 한웅천왕에 의하여 사방으로 추방된 백족의 일파인 호족(虎族)은 후대인 서기전2698년경의 황제헌원의 웅국(熊國)의 백성이 되었던 것이고, 서기전1122년경에는 백이(白夷)의 일파인 서이(西夷)가 주(周)나라 혁명의 주축세력이었다가, 주나라가 건국된 이후에는 주나라에 복속하지 않았던 서이(西夷)를 서기전403년 이후 전국시대에 이르러 서융(西戎)이라 비하하였던 것이 되는 것이다.

 

서이(西夷)는 좁게는 백이(白夷)의 일파가 되나, 넓게는 당시 서쪽에 살던 황이(黃夷)의 일파인 견이(畎夷)와 또한 황이의 일파인 흉노(匈奴)를 혼칭한 것이 되기도 한다. 견이를 견융(畎戎, 犬戎)이라고도 부르며, 북이(北夷)인 흉노를 북적(北狄), 북융(北戎)이라고도 부르는 것이 된다.

 

서이(西夷) 지역에는 배달나라 시대에는 강수(姜水) 지역에 서기전3252년에 시작된 소전씨(少典氏)의 유웅국(有熊國, 웅씨국의 하나)이 있었으며, 거의 같은 시기에 봉해진 소호씨(少皓氏)의 소호국(少皓國: 후대 白帝國) 등이 있었고, 서기전1266년 단군조선 시대에는 빈기(邠岐)의 땅에 여파달(여파달)이 봉해진 여국(黎國)이 있었다.

 

4) 남이(南夷, 적이(赤夷), 남만(南蠻))

 

고대중국을 형성한 남이(南夷)는 양자강 유역과 그 남쪽에 살던 적이(赤夷)를 가리키는 것이 되는데, 주(周)나라 전국(戰國) 시대인 서기전403년 이후에는 주나라 스스로 중화(中華)라 높이면서 적이를 낮추어 남만(南蠻)이라 부른 것이 된다.

 

특히 주(周)나라 시대에는 초(楚)나라와 오(吳)나라 월(越)나라가 남만(南蠻)의 나라가 되는데, 오(吳)나라는 서기전463년에 월(越)나라에 망하였고, 월나라는 서기전334년에 초(楚)나라에 망하였으며, 초(楚)나라는 서기전223년에 진(秦)나라에 망함으로써 남만(南蠻) 지역 전체가 진(秦)나라 흡수되었던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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