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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멸망 후고구려 세워져, 대진국(발해)의 시국처인 동모산은 어디?

길림성 돈화는 일제가 조작한 발해의 도읍지

성훈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09/03/04 [16:25]

고구려멸망 후고구려 세워져, 대진국(발해)의 시국처인 동모산은 어디?

길림성 돈화는 일제가 조작한 발해의 도읍지

성훈 칼럼니스트 | 입력 : 2009/03/04 [16:25]

본 글은 아래와 같이 (2)부로 나뉘어 연재됩니다.
(1부) 대진국(발해)의 시국처인 동모산은 어디?
(2부) 대조영이 이해고를 격파한 천문령은 어디?

 

▲ 식민사학계에 의해 교과서에 왜곡되어 있는 발해 5경위 위치 .  그러나 실제 대진국의 강역은 하남성까지였다.     © 플러스코리아
 
1. <한단고기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의 기록



위 <한단고기>의 기록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상식과 상당히 다르다. 발해는 고구려 멸망 후 약 30년 후에 대조영에 의해 동모산에서 건국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1. 최초 국호는 발해가 아니라 후고구려로 불렀고, (후에 대조영이 대진국으로 바꿈)

2. 나라는 대조영이 아니라 아버지인 대중상에 의해 먼저 세워졌으며,

3. 건국년도는 668년으로 고구려가 멸망한 해이다.

4. <한단고기>는 대중상을 대진국의 초대황제로 적고 있다.


그리고 KBS 대하드라마 <대조영>에서 보면, 동쪽으로 도망가는 대조영/대중상을 당장(唐將) 이해고가 쫓다가 천문령 전투에서 대중상이 전사하고 이해고는 대조영에게 격파당해 죽고, 대조영이 동모산에서 발해라는 국호로 건국한다고 묘사했다. 이건 이 나라 식민사학계의 이론을 충실히 따른 것으로, 기도 안 차는 역사왜곡인 것이다. 
▲  KBS 대하드라마 <대조영>에서는 대중상이 이해고의 칼에 죽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참으로 엄청난 역사왜곡이라 아니할 수 없다. 드라마 상 이 때의 대중상의 신분은 발해가 건국되기 전 대조영의 아버지일 뿐이다. 그러나 실제로 대중상은 대진국의 전신인 후고구려의 황제이다.   
 
<한단고기 대진국본기>에 따르면, 동모산은 대중상이 후고구려를 세운 도읍지이고, 대조영은 홀한성(忽汗城)을 쌓아 도읍을 옮겼다. 그리고 천문령 전투에서 이긴 대조영은 국호를 대진국으로 정하고 년호를 천통(天統)으로 하고 고구려의 옛 땅을 차지하니 6,000리가 개척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나오는 동모산(東麰山)과 천문령(天門嶺)이 어디인지 정말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대진국의 역사를 기록한 사서는 우리나라에서는 <한단고기>가 유일하며, 중국에서는 <신당서> 등 몇몇 사서에 기록되어 있는데 모두 東牟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동모산의 위치를 추적하기 위해서는 <한단고기>의 기록인 동모산의 모(麰)자는 모(牟)로 볼 수 밖에 없음을 알려드리는 바이다.

▲   현재 식민사학계의 이론인 천문령과 동모산. 이것이 과연 옳을까! 이 이론은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배하고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만든 역사왜곡 즉 거짓말 이론일 뿐이다.
 
2. 대진국(발해)은 어디 있었는가?

일제의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강단사학계는 대진국(발해)의 시국처가 되는 동모산을 길림성 돈화시의 성산자산성으로 비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대진국의 실체를 축소.왜곡 하려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제의 식민사학의 이론일 뿐으로, 진짜 동모산은 산서성이나 하남성에서 찾아야 마땅할 것이다.

대진국의 전신인 고구려는 산서성 남부를 핵심 강역으로 했고, 하남성까지 그 강역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위 <한단고기>의 기록에 나와 있듯이 “오로지 고구려의 구토를 회복하는 것을 임무로 여긴” 대중상과 대조영이 고구려의 핵심 강역이었던 산서성과 하남성을 포기하고 머나먼 길림성 돈화로 갔을 리가 없다.  

▲  식민사학계가 발해의 초도로 비정한 길림성 돈화시의 성산자산성. 이 이론은 일제가 조선인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조작한 이론이건만 이 나라 식민사학계는 이 이론을 마치 바이블처럼 여기고 있다.
 
참고로 대진국과 신라와 경계를 했다는 니하(泥河)는 하남성 정주(鄭州)에서 발원하여 가노하(賈魯河)로 들어가는 강이고 가노하는 안휘성으로 흘러가는 강이다. (金水河 : 俗称泥河,在郑州西一里处。源于郑州西南梅山之黄龙池,北行东流辗转至郑州城西,再入西、北城壕而东流,最后流至贾鲁河。此河水位无常,雨季泛涨,波涛汹涌,平时如同小溪,水势弱小), 중국 땅에 니하(泥河)가 워낙 많아 이 강이 100% 맞다고 확증할 수는 없으나 가능성이 아주 높은 강으로 보인다.

<한단고기>의 기록에 따르면, 거란(요)과의 서쪽 경계는 황수(潢水)라고 되어 있다.
황수를 중국고대지명대사전에서 찾아보면 “하남성 마성에서 발원하여 동류하며 회수(淮水)로 들어가는 강”으로 하남성 최남동단 황촌(潢村) 부근이다. 그리고 거란(요)는 원래 요택 (遼澤: 제원시 남쪽 황하습지)에 살던 민족이고, 영토가 북대황수(北帶潢水 북으로 황수와 접한다)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대진국의 5경 중 하나인 서경임황부에 대한 <한단고기>에는  “서경인 압록부는 본래 고리국이요, 지금의 임황(臨潢)이다. 지금의 서요하는 곧 옛날의 서압록하였다. 고로 옛 책에서의 안민(安民)현은 동쪽에 있으며, 그 서는 임황현이다. 임황은 뒤에 요나라의 상경임황부가 된다. 곧 옛날의 서안평이다.” 로 기록되어 있고, 한서지리지에서 설명하는 서안평은 압록수(현 분하)와 바다(황하)가 만나는 산서성 하진시이다.

▲   <신당서>와 <한서지리지 >로 추적한 압록수는 현 산서성의 주 강인 분하이다. 그 기준이 되는 것이 요서군 고죽성이며 영제시에 있는 백이.숙제의 묘이다.  이 이론에 반론을 제기할 자는 나와보라!
 
또한 대진국은 철리의 옛 땅(鐵利故地)에 철리부(鐵利府)를 두어 광주(廣州),분주(汾州),포주(蒲州),해주(海州),의주(義州),귀주(歸州) 등 육주를 다스렸다고 했는데, 여기서의 분주는 현 산서성 임분 주위, 포주는 백이.숙제의 묘가 있는 산서성 영제시 일대, 해주는 운성염지가 있는 산서성 운성시 일대이다.
http://www.pluskorea.net/sub_read.html?uid=12124&section=section78 (대진국의 강역  참조) 

▲ 위 사진은 황하 굴곡 지점의 산서성 남부와 하남성 서부 지도이다. 고구려 멸망시 동모산(우측 학벽이나 개봉)에서 일어난 대중상의 후고구려(대진국)는 나중에 고구려의 옛 강역을 모조리 회복한다. 서안평을 5경의 하나인 서경으로 삼고, 철리의 옛 땅에 분주, 포주, 해주를 두었다. 대조영 때 6,000리, 전성기 때 원폭 9,000리였다.
 
3. 대진국의 시국처인 구국(동모산)은 어디?

따라서 이러한 대진국의 시국처인 동모산은 당연히 과거 고구려의 핵심강역인 산서성 남부나 하남성에서 찾아야 옳지 않겠는가?

우선 동모산(東牟山)을 검색해 보면 이상한 기록이 나오는데 역사왜곡의 흔적이 역력하다. “在辽宁省沈阳县东二十里,勃海大氐尝据此,见新旧唐书及辽金史,今名天柱山,清太祖福陵在焉。(요녕성 심양현 동 20리로 발해의 근본이 여기다. 신구당서와 요금사에 보면 현 이름은 천주산이고 청태조 복릉이 있는 곳이다.)

중국이 조작한 대진국의 시국처인 동모산은 요녕성 심양의 복릉 일대이다. 이는 현 대한민국 식민사학계의 이론인 길림성 돈화보다도 훨씬 서쪽에 있다. 식민사학계의 역사왜곡은 중국의 역사왜곡보다 도가 더 지나친 것 같다.

이것 이외에 다른 위치가 없는 것으로 보아 동모산(東牟山)이란 산은 애당초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동모산은 그 자체가 산 이름이 아니라 모산(牟山)의 동(東)쪽으로 해석해야 옳을 것이다.

우선 <중국고대지명대사전>으로 모산(牟山)을 검색하면 아래와 같이 여러 곳이 나타난다.

1) 在牟平县东北三里,京名东牟山,《隋书地理志》“牟平有牟山,”山之阳地势平广,故有牟平之名。(모평현 동북 3리, 수도명은 동모산, 중국고대지명대사전에 모평현은 산동성 연태로 비정되어 있는데 분명 뭔가 조작이 된 것으로 보인다.)

2) 在山东安丘县西南十五里,隋牟山县取名于此,《齐乘》安丘南二十里有牟娄山,本牟夷国,密之诸城有娄乡,左因置牟山县,今讹作朦胧山。(산동성 안구현 서남 15리)

3) 在河南汤阴县西四十里,汤河出此,即水经注所谓石尚山也。(하남성 탕음현 서쪽 40리로 탕하가 나오는 곳. 즉 수경주의 석상산이다.)

이 중에서 대진국과 관련 있는 모산을 필자는 3)번으로 본다. 하남성 탕음현은 하남성에서 황하 북쪽에 있는 현 학벽(鶴壁)시에 속한 현으로 개봉시의 정북쪽에 있고, 은허 유적지와 아주 가까운 곳이다. 거기에는 현 지명 학산(鶴山)이라는 산이 있으며 산성(山城)이라는 지명이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 산성이 대진국의 시국처인 동모산성으로 보인다. 

▲   대진국의 시국처인 동모산으로 추정되는 학벽시 산성구.
▲  중국 인터넷에서 찾은 모산
<사기정의>를 보면 “탕음현 서쪽 58리에 모산이 있다. 무릇 중모읍은 이 산 옆에 있다. 조사를 해보니 학벽 서쪽에는 오산(까마귀 산)이 있으며, 해발고도 763m로 학벽 주위의 가장 높은 산맥으로 소태산(小泰山)으로 불리기도 했다. 당 개원(고종)묘지는 여기가 당나라 때 모산이라고 칭하였다고 설명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史记正义》: “汤阴县西五十八里有牟山,盖中牟邑在此山侧也” 经调查,在鹤壁西有“乌山”, 海拔高度763米,为鹤壁周围最高的山脉, 调查的唐开元墓志说明这里至少在唐代已有“牟山”之称.)

위 내용 중에 나오는 중모읍(中牟邑)의 역사연혁을 보면,
“汉置中牟县。中牟城北五里有牟山,高仅丈余,绵延数十里。据《大清一统志》:“邑之得名于此。”一说中牟为春秋初期郑大夫祭仲封地,“中”、“仲”音近,境内又有牟山,故名。另一说因县境有牟山,山东有外牟,故称中牟“

<중국고대지명대사전>에서 중모현(中牟县)을 검색하면,
“春秋郑原圃地,汉置在牟县,隋改曰内牟,又改曰圃田,唐复曰中牟,故城在今河南中牟县东,明徙今治,属河南开封府,清因之,今属河南开封道,汴洛铁路经之。”

위 두 문장을 요약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한나라 때 중모현이다. 중모성 북쪽 5리에 모산이 있다. ..... 경내에 모산이 있으며 산 동쪽에 외모가 있으며 고대에 중모로 칭하였다. 고성은 중모현 동쪽에 있다. 하남 개봉부에 속한다.” 

즉 동모산은 아래와 같이 3가지로 분석할 수 있는데,

1) 하남성 황하 북쪽의 학벽시 서쪽에 있는 모산의 동쪽이기도 하며,

2) 황하 남쪽 개봉시 중모현의 북쪽에 있는 모산의 동쪽이기도 하다.

3) 학벽과 중모현이 멀지 않아 같은 지역으로 볼 수도 있다. 당시 황하의 물줄기가 어디로 흘렀느냐가 관건이다. 황하가 중모현 밑으로 흘렀다면 같은 지역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필자가 1)의 학벽시 서쪽을 대진국의 시국처인 구국(舊國: 동모산)으로 확정적으로 비정하는 이유는 대진국의 대조영과 당나라 장수 이해고가 일전을 벌이는 천문령(天門嶺)이 동모산의 서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2)의 경우라면, 황하 남쪽 개봉시에 있던 대조영이 당나라 이해고와 전투를 하러 황하북쪽 천문령까지 가서 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좀 이해하기 힘든 면이 있다. 즉 낙양 서쪽에서 공격해 온 당나라와 전쟁을 치루는 천문령이 황하 북쪽에 있기 때문에 대진국의 동모산도 당연히 황하 북쪽에 있어야 지리적으로 그리고 이치적으로 맞기 때문이다.

▲  당나라 장수 이해고가 장안에서 대조영을 공격하러 가려면 낙양으로 나와야 한다. 낙양에서 2군데 공격로가 예상되는데 그 진격로 상에  천문령이 있어야 한다. (학벽로, 개봉로는 필자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임의로 지은 이름이다) 천문령으로 본 동모산은 학벽시 부근이 틀림없다.
 
이렇듯 버젓이 하남성에 있는 동모산과 천문령을 길림성 돈화에 쳐박아 두고 있는 식민강단사학계는 조상님들로부터 천벌을 받을 것이다. 우리 역사의 진실을 밝힐 생각은 전혀 않고 있으며, 오로지 일제가 편찬한 <조선사 35권>의 이론만 앵무새처럼 지껄이고 있다.

자기 민족의 정신과 얼을 말살하고 있는 식민사학계는 이 나라가 아직도 일제 치하(?)라 그런지 정말로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며, 민족의 역사의 진실을 찾으려는 재야사학계는 일제시대 광복군처럼 세끼 밥 먹기도 힘든 세상이 되어 있다. 이것이 제대로 된 나라란 말인가!!! 해방 64년이 다가오고 있건만 아직도 일제 식민지배의 폐해가 이토록 심할 줄이야!!!


다음 주에 “대조영이 이해고를 격파한 천문령은 어디?”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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