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5·18, 전두환 계엄군에 집단성폭행 당한 여고생은 120명?····"

임진미 기자 | 기사입력 2018/05/15 [19:58]

"광주5·18, 전두환 계엄군에 집단성폭행 당한 여고생은 120명?····"

임진미 기자 | 입력 : 2018/05/15 [19:58]

 [플러스코리아-임진미 기자] 38년 전 광주 5.18 때 세 명의 여고생은 계엄군의 집단 성폭행으로 정신분열증 환자로 살고 있고, 분신 자결까지 했다.

 

▲ 사진 속 3명의 여고생은 계엄군에 집단성폭행을 당한 후 정신분열증세로 고통받고 분신자결까지 하고 말았다. 사진=SBS갈무리     ©임진미 기자

 

특히 정수만 전 5·18 유족회장은  "5·18로 인해 정신분열로 정말 어렵게 정신병원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이 약 120명 정도이고, 여고 1학년도 있고 3학년도 있고 이렇게 되더라."고 증언했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는 충성이라는 미명 아래 계엄군이 저지른 만행과 치밀한 은폐 공작의 진실이 8천장에 달하는 군내부 문건과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의 문건들을 통해 밝혀지고 있다.

 

지난 12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잔혹한 충성 1부-비둘기와 물빼기'에서는  5·18 기간에 계엄군한테 성폭행을 당한 사람들 중 3명의 여고생의 피해 실상을 다뤘다. 

 

계엄군이 전두환 신군부에 충성이라는 미명 아래 저지른 만행과 치밀한 은폐 공작을, 군 내부 문건 8000장과 미국 국립문서보관소(NARA) 문건들을 통하여 밝혀냈다. 12일 방영한 1부에서는 보안사령부와 광주 505 보안부대가 주도해온 5.18 은폐·왜곡 시도와 전방위적 사찰, 그리고 성폭행 피해 여성들의 숨겨진 목소리를 최초 공개했다.  

 

 

80년 5월 19일,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오정순(가명)씨가 집 앞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계엄군에 의해 구타와 성폭행을 당했던 것이다. 육체적으로만 피해를 입은 게 아니었다. 정신적으로도 그랬다. 그 뒤 정신분열 증세 때문에 치료를 받다가 6년 뒤 스스로 온 몸에 기름을 끼얹고 생을 마감했다.

 

오정순씨와 같은 학교를 다니던 2학년 권선주씨도 동일한 피해를 당했다. 그는 5월 20일 광주 자취집 앞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온 몸이 구타당하고 성폭행 당한 상태였다. 그 역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38년이 지난 지금도 받고 있다.

 

광주 시내의 또 다른 고등학교에 다니는 최혜선씨(가명)도 성폭행을 당했다. 5월 19일 거리에 나갔다가 성폭행을 당한 것이다. 1996년 검찰 조사에 따르면, 그는 낯선 여성들과 함께 군인들한테 끌려가 만행을 당했다. 조서에 기록된 최혜선씨와 검사의 대화에 이런 대목이 있다.

 

검사: 어떻게 끌려갔는가요?
최혜선: 군용 화물차가 한 대 와서 군인들이 두 명이 내리더니, 총을 대면서 차에 타라고 했습니다. 아줌마들이나 저나 울면서 내려달라고 사정을 하였지만, 군인들은 총을 들이대면서 산속으로 데려갔습니다.
검사: 강간을 당한 경위는 어떤가요?
최혜선: 우리가 반항을 하자 발로 머리를 차고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고 하여서, 울면서 당한 것입니다.

 

사건이 발생한 산의 위치와 관련하여 최혜선씨는 "백운동 어디라니까. 야산"이라고 진술했다. 뒤이어 검사는 "진술인을 강간한 계엄군의 복장은 어떠한가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이렇게 답했다.

"계엄군의 복장은 얼룩무늬였습니다."

 

이 군부대의 실체에 대해 안종철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은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다는 전제를 제시한 뒤, 피해 발생 지역과 부대 배치 상황 등을 근거로 7공수여단 33대대나 35대대, 아니면 11공수여단 병사들이 저질렀을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그날부터 최혜선씨는 이상 행동을 보였다. 삶의 목표가 없고 항상 우울했다. 관찰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달리는 차에 뛰어들기도 하고, 남의 부부가 자는 방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의 정신적 상처는 아직까지 치유되지 않고 있다.

 

11공수여단 부대원으로 광주에 주둔했던 이경남씨는 방송 인터뷰에서 "수천 명의 군인들이 광주 시내에서 흩어져 진압작전 하는데, 어떤 놈이 무슨 짓을 하는지 어떻게 통제가 됩니까?"라고 항변했다. 성폭행 만행이 진압군 지휘부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사건이 발생한 5월 19일과 20일은 광주항쟁 초기였다. 유혈충돌이 발생한 지 하루나 이틀 밖에 안 지났다. 지휘관이 부하들을 통제하기 힘든 때가 아니었다.

 

5월 21일 오후 6시경 시민군이 도청을 접수하고 계엄군이 퇴각할 때까지, 계엄군은 고도의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군인들이 트럭을 이용해 성폭행을 자행했다면, 지휘부가 어떤 이유에서건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계엄군 병사들이 은밀히 민가에 뛰어들어 성폭행을 범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군용차까지 성폭행에 이용했다. 지휘관 눈앞에서 병사 한둘이 사라지는 것과 큰 화물차가 사라지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알았든 몰랐든 지휘관은 책임을 피할 길이 없다. 계엄군 지휘부의 문제이고, 궁극적으로 전두환의 책임이다. 

 

비슷한 시점에 유사한 만행이 많이 벌어졌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상황이 있다. 정수만 전 5·18 유족회장은 인터뷰에서 "5·18로 인해 정신분열로 정말 어렵게 정신병원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이 약 120명 정도 되더라구요"라고 한 뒤 이렇게 말했다.

 

"고등학생들, 1학년도 있고 3학년도 있고 이렇게 되더라구요."

 

물론 전두환이 그런 만행을 직접 지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광주를 점령지가 아닌 자기 나라 땅으로 생각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군 기강을 다잡았을 것이다. 지휘부에서 그런 주의를 주지 않았기에, 일부 병사들이 5·18 이튿날부터 만행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이다. 신군부의 명령을 받은 계엄군들의 만행에 대해 전두환신군부는 결코 그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오는 19일에도 '잔혹한 충성 -2부'를 방영하며 5.18 특집을 방송한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잔혹한 충성-1부 비둘기와 물빼기' 영상 보기

[ http://allvod.sbs.co.kr/allvod/vodEndPage.do?mdaId=220002745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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