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원 열사는 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의 대변인으로서 내외신 기자들에게 항쟁의 대의를 설명했고, 마지막 날인 1980년 5월27일 계엄군의 총에 맞아 운명했다. 옛 전남도청에서 최후의 항쟁까지 그를 인터뷰하였던 것으로 알려진 미국 기자 브래들리 마틴은 “지금까지 윤상원 열사보다 더 용감한 사람은 만나보지 못했다. 임박한 죽음을 분명히 인식하면서도 부드러움과 상냥함을 잃지 않는 그 눈길이 인상적이었다. 윤상원 열사가 이 도시의 상징이라는 것은 여러분의 행운이다”라고 회고한 바 있다.
3학년 성우복 학생은 “윤상원 열사의 생가는 학교에서 가까운 곳에 있어 그 분에 대해 가끔 들었다. 학교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도 함께 불렀는데, 우리가 오래 기억해야 할 것 같다”며 소감을 말했다.
기민철 교감은 “윤상원 열사는 우리 재학생들의 초등학교 선배이자 고향 선배이기도 하다. 그와 같은 민주열사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현재의 민주주의와 촛불항쟁과 같은 역사의 진보가 있을 수 있었다”며 “임곡중 학생들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되새기고 자긍심을 갖기 바란다”고 기대했다.
윤상원 열사 생가 방문 후 찾은 광주인권사무소에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인권교육에 참가했다. 이송현 인솔교사는 “5월 정신은 인권침해에 저항한 인권정신이라고 한다”며 “학생들이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기억하고 계승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교육을 실시하겠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저작권자 ⓒ pluskorea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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