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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그주변 권력자들 (전두환, 노태우 등)

다큐시사-내란수괴 전두환 5공화국 전편 방송 중

네티븐 칼럼 | 기사입력 2011/05/27 [16:12]

박정희와 그주변 권력자들 (전두환, 노태우 등)

다큐시사-내란수괴 전두환 5공화국 전편 방송 중

네티븐 칼럼 | 입력 : 2011/05/27 [16:12]

                   
                  

1961년 육군 소장의 계급으로 5.16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뒤 1972년 유신헌법 개헌으로 장기 집권의 토대를 구축한 박정희가 예순 두 살을 일기로 파란 만장한 삶을 마감한 것이다.

이날 오후 삽교천 방조제 준공행사에 참석한 뒤 서울로 돌아온 박정희 대통령은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와 차지철 경호실장 ,김계원 비서실장 등 측근들과 연회에 참석중이었다.

연회 도중 부마사태 등 최근의 시국 상황을 놓고 차지철과 심한 언쟁을 벌인 김재규는 밖으로 나와 미리 준비해 놓은 권총을 가지고 들어가 차지철을 사살했다.

이어 박정희를 향해 총탄을 발사했다.
박정희는 곧 바로 국군 수도 통합병원으로 후송됐으나 머리와 가슴 등에 치명상을 입고 절명했다.

김재규의 총격을 신호로 중앙정보부원들은 m16소총으로 옆방에 있던 대통령 경호실 요원들을 사살했다. 육군과학 수사연구소 감식팀이 촬영한 현장사진은 당시의 상황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김재규는 다음 날 새벽 군수사기관에 체포됐다.

궁정동에 울린 총성은 박정희 장기 집권 18년이 막을 내리게 만들면서 유신체제를 붕괴시켰지만
12.12 쿠데타에 따른 전두환 신군부세력의 등장과 다음해 이어진 5.18 광주 민주 항쟁 등 또 다른 격동의 한국 현대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1961. 5. 16 쿠테타 거사후 3일째 되는날,


  처음으로 서울시청 앞에서 모습을 드러낸 박정희소장 좌측은 박종규소령, 우측은 차지철대위

    이들은 훗날 경호실장직을 이어받는다.





1961년 5월 22일 쿠테타 본부 에서 거사 6일후,

쿠테타의 성공가능성이 보이던 때 심신의 피로누적으로 다소 초췌한 모습




5.16 후 박정희 육군대장 탄생 [1961. 11. 04]

대장계급장을 달아주는 사람은 윤보선대통령과 송요찬 내각 수반 

 




윤보선 하야 발표.(1962.03.22)


 

 

 




원본 기사 보기:서울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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