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 "야만의 세기에서 문명의 세기로 흘러 온 역정(歷程)"하나, 환경오염의 이야기 -공기-
나는 이렇게 들었다.
오래전 우리들의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사시던 옛 시절에 벌어졌던 이상한 세상의 이야기들, 그것은 욕심없이 서로 도와가면서 아름다운 풍속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지금 세상의 사람들로서는 전혀 상상하기조차 힘든 기괴한 일들로 꽉 차 있었다는 것을.
이 맑은 공기, 저 깨끗한 시냇물, 이처럼 순박하고 아름다운 인정넘치는 세상살이‥우리가 마치 당연한 듯이 여기고 있는 이러한 모든 것들이 불과 두 세대 전만해도 마치 머나먼 전설 속에서나 있었음직한 꿈같은 일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똑똑히 들었다.
사람들, 아니 모든 생물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 맑고 깨끗한 공기와 물조차 쉽사리 구할 수 없었던 그런 세상에서 행복을 찾는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도 그 시대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런대로 스스로가 인류역사상 가장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자부하며 살아가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의 행복이란 ‘일찌기 없었던 풍요한 물질문명’을 이루고 살고 있다는 자만심으로부터만 가능할 수 있었는데, 행복은 그러한 비뚜러진 자만심과는 거리가 먼 것임을 모르고 있기도 했다고 한다.
대기(大氣)는 자동차와 공장들에서 뿜어대는 독기(毒氣)로 가득 차 있었고, 깊은 산 속의 몇몇 옹달샘들을 제외한 모든 물이란 물(강물․지하수․바닷물 등)은 완전히 정화시키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던 도시와 공장들에서 쏟아져 나왔던 각종 생활폐수들과 오염물질들(그 중에는 지금으로서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치명적인 중금속류나 독성물질들도 다량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에 의하여 밑바닥부터 썩어가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마을 앞에 흐르는 시냇가에 가서 그물로 한 번만 건져내면 몇일이고 반찬으로 먹을 수 있는 저 싱싱한 물고기들‥그러나 그 한심했던 시절에는 지금은 온갖 생명들이 싱싱하게 넘쳐나는 저 큰 한강에서 싱싱한 물고기는 커녕 비늘이 썩어 들어가기 시작하던 병든 물고기나마 몇마리 건져 올릴 수 있는 낚시꾼은 행운아(?)에 속했다고 한다. 공기는 당연히 스모그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고, 수돗물은 당연히 오염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며, 지구의 오존층은 당연히 파괴되어 갈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그처럼 잘났다고 믿고 있던 과학은 발달할 수밖에 없어서, 인류는 썩어 가는 쓰레기통속 같은 지구위에서 쓰레기같은 ‘물질적 풍요’를 구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인류생존의 모든 기본조건마저 과감하게 희생해서라도 추구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마치 사이비 신흥종교의 엉터리신앙처럼 믿어지고 있던 소위 ‘과학의 발달’에 대한 광범위한 확신은, 정말이지 맹신 내지는 광신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들었다. 그러한 광신들 중에서도 걸작은 이제는 지구상의 구석 여기저기마다 흉물스러운 쓰레기더미로 남아 있는 데 불과한 소위 ‘핵발전소’라던가 우주개발같은 것도 포함되는데, 핵발전소라는 것은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몇백만분의 일밖에 안되므로 매우 안전한 에너지원이라고 주장하던 핵시설 장삿꾼들과 돈벌이에 미쳐 돌아가던 과학자들로 이루어진 사기꾼집단의 장광설과는 달리, 불과 몇 백개밖에 안되던 전 세계의 핵발전소들 중에서 고장이나 사고를 일으키지 않았던 것은 거의 없었을 정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사고뭉치들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 소위 ‘본격적인 우주왕복시대’를 열겠노라고 나팔들을 불어대면서 쏘아 올렸던 컬럼비아호(이것은 그 이름만으로도 그 흉악한 대학살자의 악령을 떠올리게 하는 불길한 것이었지만)는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일억분의 일이라는 장담과는 달리, 첫 번째 발사 직후 불과 몇 초만에 폭발하여 애꿎은 탑승자들을 참혹하게 공중분해시켜 버림으로써, 컬럼비아호 발사에 참여했던 우주과학자라는 자들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사기꾼집단인가를 백일하에 드러내기도 했던 것이다. 우리의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께서 사셨던 세상(서기 20세기부터 21세기 전반)은 바로 그러한 어처구니없는 엉터리같은 일들이, 큰 권위를 지녔던 ‘첨단과학’이라는 명분과 찬란한 인류문명의 이름으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던 만화같은 세상이었다고 한다.
나는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들려주셨던 옛 이야기들과 부모님들이 듣고 보셨던 이야기들을 이제부터 생각나는 대로 기록해 남김으로써, 앞으로 태어날 우리의 자손들이 정상적인 판단능력을 가지고 어렵사리 이룩해 놓은 이처럼 아름다운 세상을 지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이야기는 그 어렵던 세상에서도 가장 비참한 동족분단의 비극을 겪고 있던 한민족이 어떻게 해서 분단을 스스로 극복하고 인류사회를 올바르게 이끌어 올 수 있었던가 - 하는 과정을 한 번 훑어 볼 수 있는 ‘승리의 기록’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 환경오염의 이야기
1.공기 우리가 학생시절 생물시간에 배웠지만 몇몇 혐기성박테리아 종류를 제외한 모든 생물은 어떤 형태로든 호흡을 통해 산소를 공급받음으로써 살아갈 수 있다. 따라서 산소가 풍부한 맑은 공기를 호흡한다는 것은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물의 기본적 욕구이자 기본적 권리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마시고 있는 이 맑은 공기가 얼마나 고마운 것인가를 우리들은 전혀 느끼지도 못하고 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그런데 우리의 할아버지들은 이처럼 맑은 공기를 단지 상상만 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고 한다.
모든 공기는 극도로 더럽혀져 있어서 지구의 대기권 안쪽은 소위 ‘온실현상’을 일으키고 있었고, 모든 비와 눈은 강한 산성을 띄고 있어서 농작물들의 성장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큰 해를 끼칠 지경이었다고 한다. 거기에다가 공기가 덥혀짐으로써 남극과 북극과 만년설로 덮였던 산봉우리들의 얼음들이 녹아 흘러서 잦은 홍수와 해일의 원인이 되기도 했고, 계속되는 해면수위의 상승으로 해안의 모든 도시는 거대한 방파제들을 쌓고 관리하는데 골머리를 앓지 않으면 안되었다고도 한다. 물론 그것은 도시들만의 문제가 아니었고, 거의 모든 바닷가의 농토들은 사오미터씩이나 상승해 버린 해면높이 때문에 물에 잠겨버렸다고 한다. 그건 마치 바다와 육지사이에 큰 전쟁이라도 벌어진 셈이었다.
지구상의 비옥한 농토들 중 대부분이 강이나 바다를 낀 저지대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해면상승이 뜻하는 바는 아주 명확한 것이었다. 즉, 일부 고원지대의 평야를 제외하고는 곡식재배가 불가능해졌으므로 사람들의 주식은 각종 폐수로 오염된 물고기들로 대체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갈 기본터전인 육지의 절대면적이 급속히 줄어드는 상태에서 인간이 과연 얼마나 행복을 느낄 수 있었을까?
지금도 비록 많지는 않지만 자동차들이 장거리 대중교통수단이나 화물운반수단으로 이용되고는 있다. 그러나 그 차들은 태양에너지를 최대한도로 이용하여 운행되고 있고, 차량의 모든 제작과정에 어떠한 공해도 발생하지 않는 엄격한 기준하에서만 만들어지고 있으며, 또한 모든 차량은 수명이 다 되어도 거의 완전히 재활용이 가능할 정도로 무공해적인 것이 아닌가? 한가지 흠이 있다면 그 제작과 관리 모두가 지구수호위원회의 엄중한 감독 하에 놓여있고, 또한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므로 개인적인 구입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불편은 감수해야 한다. 아니 - 자동차가 없어도 큰 불편을 느끼지 않는 지금의 생활환경이, 뭐가 그렇게들 바쁜지 길이 메어지도록 독가스를 뿜어대는 자동차들을 끌고 다니며 맑은 공기를 따로 사서 마시는데 큰 경제적 부담을 느껴야만 했던 그 때보다 무엇이 더 나쁘다는 말인가?
지금은 모든 길을 자전거와 보행인들이 이용할 수 있고, 여러가지 용도로 개발된 여러 종류의 자전거들이 건각을 자랑하는 현대인들 모두의 필수 교통수단이 되었다. 옛날에 그렇게도 흔했다는 교통사고는 이제는 억세게 재수없는 사람을 비웃을 때에나 써먹는 야유거리의 하나가 되고 말았다. 즉, ‘오죽 재수가 없으면 교통사고를 당했겠느냐? - 라는 식으로.
지구수호위원회 그 이름이 주는 다소의 위압감과는 달리 이 위원회는 완전한 평등원칙 하에서 운영되는 모든 사회조직들에 있어서 하나의 모범적인 전형이 되고 있다. 따라서 이 조직의 모든 결정사항들은 전 인류에게 아무런 저항감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극히 심성이 고결한 인격자들로만 구성된 이 위원회야말로 그 조직되던 첫 날부터 지구와 인류를 살리기 위한 적절한 활동을 시작하여 현재의 이 쾌적한 지구로 만들어 놓은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 온 인류사회의 핵심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이 위원회를 이야기할 때마다 ‘인류는 이렇게 고결한 지도자들을 가질 수도 있다’고 신에게라도 자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자부심을 가슴 가득히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 이름은 바로 지금의 살기 좋은 지구환경을 이룩한 놀라울 정도로 헌신적인 숭고한 위인들의 업적을 기리는 이름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할아버지시대의 모든 사람들도 이처럼 맑은 공기를 좋아했을 것임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그 옛날에는 왜 그토록 온통 공기를 더럽혀 놓고서들 살고 있었을까? 할아버지가 들려주신 이야기는 이렇다.
“‥그 땐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 정신들이 아니었던 것 같다. 흡사 무엇에 홀린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차, 차, 새 차, 빠른 차, 멋있는 차‥’하면서 그 독가스를 뿜어대는 괴물들을 구입하려고 안달들을 하고 있었으니까 말이야. 자가용차 한 대라도 없으면 마치 크게 시대에 뒤떨어지는 듯이 생각들을 하고 차를 사려고 애들을 썼는데, 그리고 나서는 그 차들을 몰고 돌아다니느라고 거의 대부분의 길은 늘상 막혀있다시피 했던 거지. 나는 물론 그런 멍청한 짓을 따라 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기 때문에 끝까지 자가용차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었어. 너의 아버지와 고모들은 다른 집 아이들이 다 자기네집 자가용차를 자랑하는 걸 보고 속으로 불만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만 -
사람들은 에너지를 절약하자고 대단히 성대한 캠페인들을 벌이기도 했는데, 가장 절약해야만 할 에너지가 다름 아닌 땅속에 묻힌 화석연료로부터 얻었던 석유같은 물질로부터 얻는 에너지였는데도, 마치 석유자원 낭비와 자가용차하고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듯이 그 괴물딱지 같은 차들만은 태연하게들 타고 다니더란 말이야. 그나마 석유가 다소라도 생산되는 나라라면 그래도 좀 이해할 수가 있겠는데, 일년 국가예산의 약 1/3가량을 그 놈의 석유나 천연가스를 사들이는데 써야만 했던 우리나라 같은 데서 ‘외화와 에너지절약을 위해서 자가용을 타지 맙시다’라는 캠페인은 별로 벌어진 적도 없었어. 그러니 너나 할 것 없이 길을 가득 메우면서 자가용들을 몰고 다니는 판이 되었고, 자기 차가 독가스를 내뿜고 다니는 판에 남들 보고 뭐라고 할 수도 없으니까 서로 모른 척하고 계속 독가스를 뿜어대었던 거였지.
누구든지 ‘나는 깨끗한 공기를 원한다’고 생각했고 주장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문명인답게(?) 살려면 어느 정도의 공기오염(뿐 아니라 대부분의 다른 오염도 포함하지만)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체념들을 하고 있었던 거야. 따라서 대기 중에 독가스성분이 조금도 없어야만 한다는 진리는 완전히 무시된 채, 독가스가 어느 정도인가를 따지는 오염측정 따위나 하면서 할 일 다한 듯이 태연들 했고, 당장 죽을 지경만 아니라고 측정되면 여하한 독가스오염에도 마냥 버티고 지내는 게 당연한 듯이 여겨지고 있던 그런 때였으니까 - .
지금 이 작은 마을의 어디서든지 들이쉴 수 있는 이처럼 맑은 공기는 그 당시에는 아마 차도 다니지 않는 깊은 산 속에서나 재수 좋으면 한번쯤 들이쉬어 볼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땐 아무리 깊은 산 속이라 해도 어차피 지구 전체의 공기가 이미 심하게 오염되어 있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이런 공기는 아니었어. 뭔가 퀴퀴하고 개운치 은 - 그런 기분 나쁜 공기였지. 공기중의 산성도가 높아서 모든 나무들이 다 삭아버릴 정도였으니 그게 사람이 살 세상이겠니?
나는 ‘사람들이 모두 돌아버린 건 아닐까?’ - 라고 가끔 혼자서 중얼거리곤 했지. 그러면 옆에 있던 사람들은 오히려 내가 약간 돈 것 같다는 표정으로 힐끔힐끔 쳐다보고는 피해갔었다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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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고-연대 의대 졸 단기 4315년(서1982)부터 세계 역사,문화 관심 단기 4324년(서1991) 십년 자료수집 바탕으로 영광과 통한의 세계사 저술 이후 우리찾기모임, 배달문화연구원 등에서 동료들과 정기 강좌 및 추가연구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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