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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력사 인물] 신라의 무기기술자 구진천

이형주 기자 | 기사입력 2020/05/23 [05:47]

[조선력사 인물] 신라의 무기기술자 구진천

이형주 기자 | 입력 : 2020/05/23 [05:47]

 

▲ 활제제조기술자 신라 구진천. 사진=국방일보     © 이형주 기자

 

 

 조선의 력사는 대한민국의 역사와는 많이 다르다. 우리는 일제가 조작해 만든 조선사35권의 식민사관과 이병도일당이 조작해 만든 대국사관의 반도사관을 중심으로 한국사와 국사교과서로 가르치고 배우고 있는 반면, 북은 식민사관과 반도사관을 탈피한 흔적이 역력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와 같이 남과 북은 역사의 특징을 보는 관점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본지에서 "조선을 바로 알아야 통일이 가까워 집니다"라는 신념으로 북조선이 알리는 '조선력사'를 인터넷매체 조선의 오늘이 공개한 게시물을 여과없이 게재한다.[편집자 주]   

 

무기기술자 구진천

 

구진천은 7세기중엽 신라의 이름있는 활제조기술자였다. 그가 만든 천보노는 일종의 기계활인데 화살이 천보나 나갔다고 한다. 나라에서는 그의 공로를 평가하여 관직까지 주었다. 당나라통치배들이 이 소문을 듣고 669년에 구진천을 자기 나라로 데려간 후 천보노제조기술을 빼내려고 하였다.

당나라에 끌려간 구진천은 강제에 못 이겨 노를 만들었는데 겨우 30보밖에 가지 않았다. 당나라왕은 너의 나라에서는 화살이 천보를 가는데 어찌하여 지금은 30보밖에 가지 않는가고 하면서 구진천을 위협하였다. 구진천은 노를 만드는 목재가 신라의것과 다르기때문이라고 말하였다. 당나라왕은 신라의 목재를 가져다가 다시 만들게 하였다.

그러나 역시 화살은 멀리 가지 못하였다. 또다시 멀리 못가는 리유를 묻는 왕에게 구진천은 그것은 신라의 목재가 바다를 건너오면서 습기를 받고 잘 마르지 않은데 원인이 있다고 변명하였다. 이처럼 구진천은 당나라통치배들의 온갖 위협공갈에도 굴하지 않고 끝끝내 노를 만드는 기술을 당나라에 대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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