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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옛적에(5) - 핵 갈등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20/05/28 [12:15]

옛날옛적에(5) - 핵 갈등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20/05/28 [12:15]

▲ 최근 핵 갈등 국가     © 편집부

 

 

소위 20세기 최첨단문명을 자랑하던 우리의 선조들이 만들어 내었던 가장 졸작중의 하나가 바로 핵이었다.

 

핵과 관련하여 가장 결정적인 피해를 본 것은 일본섬이었다. 핵폭탄이 유일무이하게 투하되었던 일본열도, 그리고 이차 세계대전에서의 패배에 대한 복수를 언젠가는 하고 말겠다고 몰래 저장해 놓았던 핵(플루토늄)폭탄들이 일본열도를 휩쓸었던 저 가공할 대지진에 의하여 대폭발을 일으키면서, 섬들의 절반이상이 반영구적으로 거주가 불가능한 황무지로 변해버렸던 가엾은 일본열도! 일본열도에서 벌어진 참상을 보고 비로소 제 정신이 번쩍 든 인류가 그 후 모든 핵물질들을 (극히 일부의 의료용 및 산업용만 제외하고그것들도 빠른 속도로 다른 방법으로 바뀌어가고는 있지만) 포기했으므로, 일본열도는 핵에 관한 한 최초이자 최후의 피해지역으로 남게된 것이었다.

 

43세기(서기20세기~21세기 초) 무렵의 인류는 확실히 제 정신들이 아니었다. 수천만명이 살상당하는 두 번에 걸친 대전쟁이 벌어졌었고, 그리고도 모자라서 앙골라에서, 베트남에서, 팔레스타인에서, 발칸반도에서 등등 하루도 전쟁이 없는 날이 없었다는 것이다. 벌써 20여년째 전혀 어떠한 파괴적인 분쟁도 없는 지구에서 살아 온 우리들은 단지 옛날이야기나 우화 속에서나 일부 어리석었던 당시의 선조들의 싸움박질 이야기들을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전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욕심과 욕심의 투쟁이 아닌가? 모든 인간이 욕심이라는 것을 수치로 생각하며 상부상조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지금 세상에서는 애초에 전쟁같은 어리석은 광란이 이야기될 수조차 없지 않은가?

 

핵은, 특히 핵폭탄은, 유물주의와 축재욕망에 완전히 눈이 멀고 이성이 마비되었던 서기20세기의 인류가 만들어 낸 인류역사상 최대의 졸작품이었던 것이다. 일본열도의 전면적인 파괴가 인류에게 경각심을 크게 불러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우리는 그 당시에도 지구를 수십번 이상이나 콩가루로 만들어 버릴 수 있을 만 했던 그 악마의 장난감들을 그대로 불안정한 지각 위에 여전히 모셔놓은 채 떨고 있을 게 아니던가?

 

하긴 일본열도의 폭발이 일본인들만의 잘못에 의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 세계적으로 극히 통제상태에서 운영되고 있던 이른바 핵재처리공장들에서 핵폭탄의 원료인 플루토늄을 일본열도에 팔아먹지만 않았어도, 일본열도에는 처음부터 핵폭탄이 존재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4325(1992)에 황금에 눈이 먼 프랑스의 정신병자들은 세계제패 욕망에 눈이 먼 일본열도의 정신병자들에게 바로 그 플루토늄을 수백톤씩이나 팔아먹기 시작했었다고 한다. 프랑스인들은 일본인들보다는 그래도 약간 운이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심한 방사능 유출로 노르망디 반도일대가 거의 다 불모지로 화해버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지역은 프랑스의 단지 작은 일부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한민족은 특히 운이 좋았다. 80여년 전에 일본섬의 핵광신자들이 플루토늄 수입에 미쳐 있었을 때 한국(남한)의 지도층도 절반은 핵광신자에 속했었다고 한다. 무려 50여개에 가까운 핵발전소를 만들겠다고 아우성쳐 대던 그 정신나간 지도자들도, 과도한 군사비지출과 연속되는 수재(水災)로 인하여 심각한 식량부족과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던 북한에 대만(타이완)에서 약간의 경제적 원조를 제공해 주는 댓가로 대만의 핵쓰레기를 북한에 실어다가 버리려 했던 사건에 대한 범국민적 저항과, 일본열도의 본토(혼슈) 북반부가 회복불가능한 핵쓰레기장으로 변해가는 현장을 목격하고서는 더 이상 소리를 꺼내지도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한국 내에서도 안면도와 굴업도 등에 핵쓰레기장 설치를 추진하며 핵쓰레기를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다던 핵발전관계자들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핵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기술이란 사실상 어떤 나라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너무나 뚜렷하게 드러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한반도에 만들어졌던 저 흉칙한 괴물들은 재빨리 폐쇄의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물론 그따위 괴물들을 동원해야만 충족시킬 수 있던 전기를 비롯한 모든 인공적 에너지의 사용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와 그에 따른 에너지문명의 단계적 포기에 의해서 가능해진 것이기도 했다.

 

핵의 전면적 폐기는 그 외에도 여러가지 방향으로 좋은 영향을 끼쳤다.

 

첫 째, 그것은 힘에 의한 패권추구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를 모든 인류로 하여금 깨닫게 하였다. 따라서 무력이 아닌 타협의 방법이 고도로 추구되었고, 힘을 논하는 자는 야만인으로 멸시당하는 전세계적인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심지어는 쓸데없이 살덩어리만 불려가는 소위 보디빌딩같은 것도 어리석은 행위로 지탄받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건강한 심신을 만드는 일을 포기한 것은 아니고 적당한 운동은 하나의 기본권리이자 의무조항이 되다시피했던 것이다. 무엇이든지 적당한 것이 가장 찬양받았고, 따라서 아무런 운동도 않고 꼼지락거리고 있는 것도 수치스럽게 여겨졌다. , 인간의 사고(思考)구조 자체를 매우 바람직한 방향으로 전환시켰던 것이다. 참다운 문명에로의 복귀라고나 할까

 

둘 째, 인류는 힘에 대한 광신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서, 그러한 환상으로 인류를 이끌어 갔던 잘못된 역사인식을 바로 잡아 나아가기 시작했었다. 모든 유물론적 역사관의 허상이 널리 알려지면서 인류사회의 새로운 방향이 제시되었다. 평화로운 역사활동을 해 온 여러 민족들의 문화에 대하여 깊은 연구가 폭넓게 이루어지기도 했는데, 특히 우리 한민족의 역사는 대단히 흥미를 끌게 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유사 이래 오직 평화만을 지켜오면서도 그 민족적 명맥을 이어 온 집단은 오직 한민족만이 있을 따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보다 폭넓은 연구가 진행되어 갈수록 인류는 탄성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많은 우수한 학자들이 연구해 본 결과 무지막지한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침탈당하기 전까지의 한민족의 역사란

배달민족 역사와 문화 창달에 관심이 있는 평범한 시골의사 입니다.
서울중고-연대 의대 졸
단기 4315년(서1982)부터 세계 역사,문화 관심
단기 4324년(서1991) 십년 자료수집 바탕으로 영광과 통한의 세계사 저술
이후 우리찾기모임, 배달문화연구원 등에서 동료들과 정기 강좌 및 추가연구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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