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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력사 인물] 애국적인 승병장 서산대사

이형주 기자 | 기사입력 2020/06/03 [20:51]

[조선력사 인물] 애국적인 승병장 서산대사

이형주 기자 | 입력 : 2020/06/03 [20:51]

 

▲ 서산대사(1520-1604년). 사진=조선의오늘     © 이형주 기자

 

서산대사(1520-1604년)는 임진조국전쟁시기 애국적인 승려출신의 의병장이다.

서산대사의 본래이름은 최현응인데 불교의 승려였으므로 법명(불교에서 부르는 이름)은 휴정, 법호(불교에서 부르는 별호)는 청허 또는 서산이라고 하였다.

그가 서산대사로 널리 알려지게 된것은 그의 법호인 서산에서 온것인데 묘향산 즉 서산에서 오래동안 산 대사(봉건국가에서 불교의 선종계통의 높은 급의 승려에게 주는 칭호)였기때문이였다.

서산대사는 1520년 안주고을의 빈한한 량반가정에서 출생하였다. 불행하게도 9살때에 부모를 잃고 의지할 곳없는 고아로 된 그는 떠돌아다니는 과정에 당시 사회의 불평등을 목격하게 되였으며 그로부터 어지러운 정계에 나서기를 단념하게 되였다.

18살에 승려가 된 그는 우리 나라의 명승지들을 돌아다니면서 시를 지어 그 아름다움을 노래하였고 벌써 30대에 선종계렬의 이름높은 학자승려로 되여 많은 제자를 거느리게 되였다.

서산대사는 당대의 고승, 시승으로서 유명하였을뿐아니라 임진조국전쟁시기 승려의병장으로서 더욱 이름을 떨치였다.

1592년 임진조국전쟁이 일어나자 묘향산에 있던 그는 나이가 70살이 넘은 고령이였지만 분연히 일어나 전국 승려들에게 의병투쟁에 나설것을 호소하였으며 장검을 비껴차고 조국수호의 길에 나섰다.

왕명으로 《8도선교 16종도총섭》(총대장)이 된 그는 전국의 승려들을 의병투쟁에로 호소하였으며 직접 승병을 거느리고 평양으로 진군하여 평양탈환전투에도 참가하였다.

임진조국전쟁승리에 크게 기여한 서산대사는 각계층 사람들의 사랑과 두터운 존경을 받았으며 1604년 1월 묘향산의 원적암에서 85살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서산대사가 죽은 후 묘향산 보현사와 금강산 유점사 백화암에 부도(뼈를 넣어두는 돌탑)를 세웠으며 금강산과 전라남도 해남 두륜산에 그를 추모하여 비석을 세웠다.

그의 저서로는 《선가구감》, 《청허당집》 등이 전해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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