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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력사 인물] 실존인물 홍길동

이형주 기자 | 기사입력 2020/06/05 [06:05]

[조선력사 인물] 실존인물 홍길동

이형주 기자 | 입력 : 2020/06/05 [06:05]

▲ 조선예술영화 《홍길동》의 한 장면. 사진=조선의오늘     © 이형주 기자


 

작품속의 인물이 아닌 홍길동

 

최초의 극문학소설인 허균의품 《홍길동전》에 나오는 주인공 홍길동은 전설속의 인물이 아니라 실지로 존재한 인물이다.

조선봉건왕조실록에는 홍길동을 《도적》또는 《강도》라고 하였고 현종때의 황윤석이 쓴 야담집에는홍길동이 첩의 자식이라 과거를 볼수 없어 집을 떠나 의적활동을 하다 해외로 탈출했다.》고 기록되여있다.

홍길동의 이복형인 본처의 아들 홍길형이 1420년경에 태여났다는 기록이 있는것을 볼 때 길동의 출생은 1420년이후일것으로 보고있다.

홍길동이 태여나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냈다는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아치실마을에는 그가 마시며 자랐다는 《길동샘》이  있으며 북쪽 10㎞지점에서는 홍길동의 할아버지의 묘가 발견되였다고 한다.

홍길동은 첩의 자식은 과거에 응시할수 없다는 나라의 령으로 서자들의 사회진출이 불가능하게 되자 반감을 품고 1467년에 집을 뛰쳐나가 경상도에서 학조대사라는 스승으로부터 불교와 도학을 배운 후 충청남도 공주지방을 중심으로 봉건관료배들을 반대하는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관군의 토벌이 심해지자 홍길동은 1489년경부터 활동무대를 전라남도 병풍섬, 고이섬을 비롯한 서남해안일대로 옮겼다.

1500년 연산군 6년때에는 지리산 임실근처에서 관군에게 잡혀 극형을 당할번 했으나 륜리도덕위반죄로 판결되여 풀려났다.

그후 그는 자기 부하들을 이끌고 해외로 나가 소설에 나오는것처럼 률도국으로 가게 되였는데 률도국은 지금의 오끼나와렬도의 최남단섬일대였다고 한다. 홍길동의 이러한 활동자료들은 지금 여러곳에서 나타났다.

석원도의 기원공원에는 홍길동의 이러한 활동상을 보여주는 《홍가와 라적봉비》가 있는데 여기에는 《봉건제도를 반대하고 자유인권을 보장하며 섬사람들을 위해 활동한 용맹한 영웅》이라는 비문이 있다고 한다.

또한 섬들에서는 그의 활동을 보여주는 많은 유적들이 나왔다고 한다.

홍길동의 가계와 관련한 자료들도 발굴되였는데 그의 할아버지 홍징은 경효왕 손아래동서로 왜구와 북방오랑캐들을 진압한 공로가 컸으나 후에 역모죄로 처단당하였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 홍상직은 5형제의 넷째로서 아버지와 세 형들이 처형당할 때 외켠의 도움으로 장성군으로 피신하였으며 여기서 첩을 얻어 홍길동을 낳았다고 한다.

공주 무성산에는홍길동산성》이 있으며 그가 탐관오리와 지주, 토호들을 징벌한 이야기들도 수많이 전해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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