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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력사 인물] 화가 강희안

이형주 기자 | 기사입력 2020/06/05 [06:00]

[조선력사 인물] 화가 강희안

이형주 기자 | 입력 : 2020/06/05 [06:00]

 

▲ 인재 강희안(仁齋 姜希顔) 추상화. 자료사진     © 이형주 기자

▲ 강희안의 작품 《생각에 잠겨》.사진=조선의오늘     © 이형주 기자



조선화발전에 이바지한 화가

 

강희안(1417―1464년)은 조선봉건왕조시기의 학자이며 화가이다.

이름난 농학자가정에서 태여난 그는 어려서부터 글씨와 그림에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있었다고 한다. 시, 글씨, 그림에 모두 뛰여나 《3절》이라고 불리웠다.

1441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직제학 등의 벼슬을 지냈다.

그는 어학자로서 정린지, 신숙주 등과 함께 훈민정음해석편찬에 참가하였으며 1455년에 주조한 활자인 《을해자 원본을 써서 서예가로 이름을 날리였다. 또한 할아버지, 아버지의 학풍을 이어 관상용화초와 나무들을 재배하는 기술과 취미에 대하여 쓴 글 《양화소록》(1권 1책)을 저술하여 원예발전에 이바지하였다.

그의 활동가운데서 큰 자리를 차지하는것은 화가로서의 창작활동이다. 그는 먹으로 작은 경치그림을 그리기 좋아하였으며 벌레, 새, 꽃과 나무, 인물을 잘 그렸다고 한다.

대표적작품으로는 《미인도》, 《매미》, 《대나무》, 《밭갈이》(경운도) 등이나 전해지는것은 거의 없다. 지금 남아있는 그의 작품가운데서 대표적인것으로는 선비들의 한가한 생활을 그린 《산수인물도》(생각에 잠겨)와 《고사도교도》(다리를 건느다) 등이 있다.

이 그림들에는 복잡하지 않은 화면구성과 힘있고 간략한 필치로 인물들의 성격과 심리적움직임 그리고 물체들의 특징이 잘 그려져있다.

용재총화 비롯한 기타 기록들에서는 그가 그린 《려인도》, 《청학동도》, 《청천강도》와 열두폭의 경치그림들을 다 높이 평가하고있으나 전해지는것은 없다.

그는 그림을 직업적으로 그리지 않은 대표적인 문인화가로서 당시 전문화가들을 멸시하는 량반사대부들의 사상관점에서 완전히 벗어날수 없었다. 또한 그림의 주제선택에서도 선비들의 안일한 생활과 그들의 목가적인 정서를 표현하는데 머물렀으며 일부 묘사에서는 필력과 뜻만을 추구하고 형태를 무시하는 요소도 발로시켰다.

그러나 그는 묘사대상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과 세련된 소묘력, 풍부한 표현력 등 높은 예술적기량을 가지고 조선화의 표현수법을 발전시키는데 이바지하였으며 안견, 리상화 등과 더불어 15~16세기의 대표적인 화가로 되였다. 그의 이름은 이웃나라에까지 알려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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