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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력사 인물] 품팔이군남편을 성공시킨 고유의 안해 박씨

이형주 기자 | 기사입력 2020/06/30 [10:38]

[조선력사 인물] 품팔이군남편을 성공시킨 고유의 안해 박씨

이형주 기자 | 입력 : 2020/06/30 [10:38]

 

력사에 이름을 남긴 조선녀성들 (11)

 

품팔이군남편을 성공시킨 고유의 안해 박씨

(17세기말~18세기초)

 

박씨는 숙종시기에 품팔이로 살아가던 총각을 남편으로 삼고 준절히 고무격려하여 성공의 길로 떠밀어준 훌륭한 안해였다.

박씨는 경상도 고령의 어느 고을 향청에서 일을 보는 박좌수의 딸이였다.

박좌수는 일찌기 안해를 여의였으므로 보잘것없는 홀아비살림에 재산이라고는 없었다. 그에게는 령리한 딸이 있을뿐이였다.

박씨는 사리에 밝고 사람도 잘 알아보는 안목이 있었으나 집안이 가난한탓에 과년하도록 혼인도 이루지 못하고있었다.

이때 근처의 어느 촌가에 고유라는 품팔이군총각이 있었다. 그는 임진조국전쟁때의 의병장으로 싸운 고진명의 후손인데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향 광주를 떠나 떠돌아다니다가 이곳에 정착하고 살았다.

고유는 글 한자도 모르는 까막눈이였으나 부지런하고 마음이 착하였으므로 이웃사람들은 이름을 부르지 않고 애칭으로 고도령이라고 정답게 불렀다.

하루는 고도령이 찾아와 박좌수와 바둑을 둘것을 청하였다.

박좌수가 동의하여나서니 고도령은 내기를 하자고 하며 은근히 속심을 비쳐보이였다.

《좌수님, 우리 이렇게 합시다. 내가 만일 지면 삯전없이 좌수님네 일을 일년내내 해드리구요, 만일 좌수님이 지시면 나를 사위삼아 주시기로 합시다.》

그랬더니 좌수는 벌컥 화를 내며 바둑판을 와락 밀어치웠다.

《에끼 이놈, 무슨 당치 않은 소리야.》

그통에 고도령은 무색하여 가버리고말았다.

이 광경을 보고있던 박씨는 아버지가 방안으로 들어오자 공손히 말했다.

《아버지, 너무 노여워 마세요. 고도령이 지금은 천역을 하고있지만 사람이 매우 진실하여 모두들 칭찬하지 않습니까. 후일에는 잘될 사람입니다. 만일 그를 불러 사위를 삼으신다면 우리 집의 다행한 일이 되겠는데 무슨 당치 않을것이 있겠소이까?》

좌수는 또 골이 나서 아무 말도 안하고 나갔다.

동리에서 그 일을 알고 여럿이 술을 가지고 좌수를 찾아와서 고도령과 혼인하기를 극력 권고하였다.

박좌수는 사람들의 의견에 못이겨 마침내 허락하였다. 이리하여 박씨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던 품팔이군 고유와 혼례를 치르게 되였다.

혼인 첫날밤이였다.

박씨는 옷매무시를 바로하고 남편에게 정색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첩이 당신의 얼굴을 보니 오래 고생은 안하실줄 생각되오이다. 하물며 당신은 선비의 래력이 아니오이까. 지금 다 자라신분이 글자 한자 못보고 가문의 명예를 떨어뜨리고계시오니 청컨대 첩과 더불어 십년을 기한으로 약속을 하오이다.

첩은 지금부터 날마다 무명을 낳아 살림을 장만하겠으니 당신은 지금부터 집을 떠나 글공부를 부지런히 하여 과거에 급제하신 후 다시 만나기로 합시다. 피차 마음이 괴로웁겠으나 결심을 굳게 하고 십년전에는 서로 만나지 말기를 맹약하는것이 어떻소이까.》

준절히 깨우치는 안해의 말에 고도령은 감동되였으나 《그대의 말이 진실로 훌륭하오. 그러나 일의 성공여부를 어떻게 지금 결정할수 있겠소.》하며 자신이 없어하였다.

《아니오이다. 뜻을 세운자는 반드시 성공한다는 옛말이 있은즉 진실로 성심성의로 십년을 하루같이 노력한다면 무슨 이루지 못할것이 있으리까.》

박씨는 남편을 다시한번 고무하였다. 그리고는 궤문을 열고 베 두필을 꺼내서 공부할 밑천으로 삼도록 하였다.

박씨의 격려와 성의에 감동된 고유는 안해의 뜻을 따르기로 결심하였다.

이렇게 첫날밤을 지낸 그들은 이튿날 새벽닭이 울자 결연히 리별하였다.

박씨는 맨몸에 보짐 하나를 걸머지고 먼길을 떠나는 남편을 믿음과 기대가 담긴 절절한 눈빛으로 바래웠다.

《아무쪼록 몸성히 뜻을 이루고 돌아오시길 바라나이다.》

이제 금방 가정을 이룬 젊은 녀인이 제스스로 남편을 외지에 떠나보내고 10년세월을 홀로 자력으로 살아간다는것은 결코 헐한 일이 아니다.

박씨는 강한 결단력과 의지력으로 남편을 성공의 길로 떠밀었던것이다.

그뒤로는 남편과의 약속을 지켜 혼자힘으로 살림살이밑천을 늘여나갔다.

고유가 집을 떠난지 얼마 안되여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더욱 외로운 몸이 된 박씨였으나 밤낮을 이어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재산을 늘이는 요령도 배워 많은 재부를 축적하게 되였다. 하여 100여칸이나 되는 큰 기와집에 곡식더미를 산처럼 쌓아놓아 그 마을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였다.

박씨는 이 많은 재부로 100여호의 가난한 동네사람들을 구제하기도 하여 고도령댁이라면 근처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박씨는 고유가 남긴 아들도 잘 키웠다.

어느덧 남편과 기약하였던 10년이 다 되여오자 박씨는 수소문하여 고유의 소식을 알아보았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해진 도포와 헌 갓을 쓴 지나가던 한 걸인이 밥 한끼 신세를 지자고 하며 대문안으로 들어섰다.

이때 박씨부인이 문틈으로 내다보니 다름아닌 고도령이였다.

박씨부인은 급히 동자를 불러 안으로 맞아들이게 하였다.

고도령과 부인은 붙들고 기쁨에 겨워 흐느껴 울었다.

한참만에 고유가 입을 열었다.

《내가 그때 집을 떠나 정처없이 가다가 도적을 만나 보짐을 빼앗기고 빈손으로 두루 서당을 찾아다녔으나 사람마다 머리를 흔드니 별도리없이 떠돌아다니며 이 모양대로 문전걸식을 하였을뿐이구려. 창피는 하지만 그래도 약속한 십년이 이미 되였으니 이 꼴을 하고라도 돌아왔소. 그대는 약속한대로 성공을 하였는데 나는 거지로 굴러다니니 어찌 차마 얼굴을 들겠소.》

박씨는 빙그레 웃고나서 《무릇 사람의 일이란 마음대로 되는것은 아니오이다. 내 지금 쌓아놓은 곡식이 수천석 있으니 이만하면 평생 먹고 입을것이 만족하니 이밖에도 무엇을 더 구하오리까. 아무 념려말으시기 바라나이다.》라고 하면서 이어 밥상을 차려오도록 하였다. 이때 고유가 동행하던 사람들이 밖에서 기다리니 그들에게 내보내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박씨는 그렇게 하라고 하인들에게 일렀다.

잠시후 저대소리가 울리더니 관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일제히 모여들어 부인 박씨에게 인사를 드리였다.

온 마을 사람들이 까닭을 몰라 떠들며 법석댔다. 박씨는 얼굴에 웃음을 띠우며 《공이 성공하시고 돌아오신줄은 내 이미 알고있는데 무슨 까닭으로 거지행세를 하셔서 그렇게 속이고있소이까?》라고 하였다.

박씨의 지략에 탄복한 고유는 껄껄 웃고나서 관복을 갈아입고 외당에 나가앉아 관속들의 인사를 일일이 받았다.

그날밤 박씨와 고유는 혼인 첫날밤을 즐겁게 추억하며 10년동안의 쌓이고쌓인 그리운 정을 나누었다.

고유는 안해에게 그동안의 사연을 자초지종 이야기하였다.

박씨가 내여준 베 두필을 팔아 돈 수십냥을 장만해가지고 두루두루 다니다가 합천의 어느 무던한 서당로인을 만나 어린 아이들과 같이 천자문을 읽던 일이며 해인사에 들어가 십시일반(열숟가락이 모여 한그릇의 밥이 된다는 뜻.)으로 밥 한술씩 얻어먹으며 문장과 서예를 숙달하여 마침내 과거에 합격하고 임금의 은총을 입어 고령현감의 벼슬에 임명되여 금의환향(출세하여 고향에 돌아음.)하기까지의 가지가지 일들을…

그러면서 고유는 오늘의 성공을 가져오게 한 박씨의 은공을 일생토록 잊지 않을것이라고 거듭거듭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다음날 박씨는 소잡고 술빚어 린근의 남녀로소들을 모두 청하여 큰 잔치를 열었으며 뜰 한복판에 돈과 곡식을 산같이 내다 쌓아놓고 빈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고유는 부임한지 얼마 안되였으나 정사를 잘함으로써 조정에 알려졌고 그후 경상감사로 등용되였다가 벼슬이 참판(종2품)에 이르렀다.

전날 품팔이군으로 떠돌아다니며 남의 집 삯일을 하던 고유는 현숙하고 령리한 안해 박씨를 만나 이렇듯 성공할수 있었다.

박씨의 미담에 대한 이야기는 《금계필담》이라는 옛 문헌에 올라 지금도 전해오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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