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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력사 인물] 싸움터로 떠나는 남편을 고무한 리각의 안해

이형주 기자 | 기사입력 2020/06/30 [10:32]

[조선력사 인물] 싸움터로 떠나는 남편을 고무한 리각의 안해

이형주 기자 | 입력 : 2020/06/30 [10:32]

 

력사에 이름을 남긴 조선녀성들 (10)

 

싸움터로 떠나는 남편을 고무한 리각의 안해

(15세기초, 중엽)

 

남편을 사랑하고 가정을 알뜰히 꾸려나가는 조선녀성들의 순결하고 소박한 마음은 열렬한 애국정신과 이어져있다.

그러한 아름답고 고상한 정신세계는 15세기에 외적들을 쳐물리치는데서 용맹을 떨친 리각의 안해에게서도 찾아볼수 있다.

15세기초, 중엽 세종시기에 조선봉건국가는 과학과 문화를 발전시키고 대외적으로도 자기의 위력을 시위하고있었다.

그러나 북쪽변방에서는 녀진족들이 빈번히 침입하여 자주 말썽을 일으키군 하였다.

조정에서는 압록강, 두만강연안에 4군 6진을 설치하여 방비를 강화하는 한편 원정군을 출동시켜 적들의 소굴을 들이치기도 하였다.

1433년 명장 최윤덕이 거느린 1만 5천명의 원정군이 압록강을 건너 파저강의 적소굴을 소탕한적이 있었는데 리각은 그때 출전한 젊은 장수였다.

남편이 출전하게 되였다는 소식을 들은 리각의 안해는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다.

그들부부는 본시 서로 위해주고 아끼는 마음이 남달리 극진하였다.

매사에 사려깊은 안해는 남편을 내세우는데 빈틈이 없었고 그래서 리각은 안해를 무척 사랑하였다. 남아다우면서도 인정이 많고 름름한 리각이 안해에게는 생의 전부라고 할수 있었다.

남편은 이미 젊은 나이에 여러 전투에 참가하여 용맹한 장수로 두각을 나타내고있었다.

그러나 국경을 넘어 적들의 소굴로 직접 들어가기는 이번이 처음이였다.

더우기 남편은 십여년전 쯔시마원정때에 평안도 도절제사로 수많은 왜적들을 무찔러 명성높았던 백전로장 최윤덕과 함께 그의 부대장격으로 가게 되였던것이다.

리각의 안해는 온밤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오랑캐의 무리들이 욱실거리는 그곳은 어데일가 하고 가늠도 해보고 말을 타고 적진속을 헤가르며 원쑤들의 목을 베일 남편의 모습을 눈앞에 삼삼히 그려보기도 하였다.

리각의 안해에게 있어서 남편은 하늘같이 크고 소중한 존재였다.

그러나 그는 한집안의 가장이기 전에 나라를 지킬 의무를 지닌 무인이였다.

(조상대대로 물려오는 나라의 강토를 지켜 원쑤 외적과 맞서싸움은 남아들의 응당한 본분이며 싸워서는 꼭 이겨야 하거늘 만약 싸움에서 패한다면 어찌 그대를 용납할수 있으리오.

이내 청춘 지난대도 변치 않고 기다리겠으니 꼭 이기고 돌아오시기를 간절히 바라나이다.)

리각의 안해는 자기의 절절한 심정을 남편에게 시로 전하고싶었다.

이렇게 되여 쓴것이 시 《남편을 싸움터에 보내며》이다.

이튿날 아침 갑옷과 무장을 갖추고 싸움터로 떠나는 리각에게 안해는 자기가 지은 시 한편을 읊어주었다.

 

                                     그 어디 싸움터에

                                     군기를 휘날리오리까

                                     오랑캐 피리소리

                                     꿈결에도 가슴을 저며오이다

 

                                     세월이 흘러 버들가지 푸르러도

                                     원망치 않소이다

                                     다만 기다리나이다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올 그날만을

 

비록 사랑하는 남편과 멀리 헤여져도 마음은 언제나 님과 함께 싸움터에 있을 순결하고 뜨거운 애정세계, 한가정의 안락보다 귀중한 나라의 안녕을 지키고 꼭 승전하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애국의 절절한 념원이 어린 이 시는 리각은 물론 출전한 모든 군사들에게 크나큰 힘과 고무로 되였으며 그들을 원쑤격멸에로 불러일으키는 격조높은 노래로 메아리쳤다.

리각의 안해는 31살을 일기로 일찌기 세상을 떠났으나 그가 쓴 시 《남편을 싸움터로 보내며》는 《대동시선》이라는 책에 남아 옛 조선녀인들이 지녔던 높은 애국정신을 깊이 전해주고있다.

 

《천치》를 성공시킨 리씨

(15세기말~16세기초)

 

세상에는 남편의 성공을 뒤받침한 녀자들이 적지 않다.

보통사람들로서는 생각조차 할수 없는 지혜와 결심과 판단력을 가지고 남편에게 보이지 않는 요구성을 제기하고 용기를 주어 그의 생각을 바로잡아주고 주저하는 마음을 일으켜세움으로써 학문을 성취시키고 어려운 일을 성공시킨 스승과도 같고 친구와도 같은 그런 역할을 한 안해들이 있었다.

모재 김안국(1478-1543)의 안해 리씨는 이런 녀인들중의 한 사람이였다.

모재는 김안국의 호이다.

이는 늘 《서재를 생각하고 못잊어한다》는 뜻이니 가문에서 버림을 받고 쫓겨났던 《천치》에게 글을 깨우쳐주고 학문에 성공하도록 떠밀어준 리씨부인이 없었던들 김안국이 문장가로 이름을 날릴수 있었겠는가.

 

기이한 인연

 

경상도 안동에 리씨처녀가 아버지와 함께 살고있었다.

그의 아버지 리유신은 이 지방의 오랜 토배기로서 좌수(고을 향청의 우두머리)를 지낸데다가 재산이 넉넉하고 학식이 높았으며 그딸 또한 영민하고 글까지 알아 린근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어느날 리좌수네 집에 행운인지 불행인지 가늠할수 없는 기이한 일이 생겼다.

몇해전 이곳에 부임되여온 부사 김청이 급작스레 청혼을 해왔던것이다.

김청은 전날 서울에서 내려올 때 친척벌되는 젊은이 한명을 데리고 왔는데 그와 리좌수집사이에 사돈을 맺자고 청탁하여왔다.

그 젊은이가 바로 김안국이였다.

리좌수는 이리저리 생각을 굴려보았으나 납득이 되지 않았다.

듣자니 김안국은 서울에서도 명망높은 량반집자손이라고 하는데 어째서 한갖 시골내기인 자기와 같은 집과 혼인을 맺자고 하는지… (서자인가? 아니면 병신인가? 아무 곡절도 없이 내 딸과 혼인을 한다면 이것은 감히 생각지도 못할 일인데…)

리좌수는 지금까지 애지중지 키워온 딸을 영문없이 훌쩍 떼울것만 같아 허락치 않았다.

그러자 안동부사는 할수 없었던지 사실대로 실토하였다.

내용인즉 안국이 글읽기를 싫어하여 아버지한테서 쫓겨난 신세가 되였다는것이였다.

김청은 안동에 온 후 고을정사를 두루 보면서 이 고장으로 쫓겨 온 안국이 불쌍히 여겨져 짬을 내여 글을 가르쳐보았다.

하루이틀 지내보니 안국을 쫓아버린 그의 아버지의 처사에 리해가 갔고 공부시키기는 애당초 틀렸다는것을 그는 느꼈다. 김청은 얼마 안있어 임기가 끝나니 안국을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라 이 궁냥, 저 궁냥하던중 리좌수가 가산이 있고 그의 딸 리씨가 보통 똑똑하지 않음을 알게 되자 안국을 그에게 장가들게 하려고 생각하였던것이다.

내막을 알고난 리좌수는 안국이 글읽기를 싫어한다는것이 마음에 께름하여 대답을 피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딸을 불러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의향을 물으니 리씨는 새별같은 두눈을 깜빡이더니 그것은 그리 큰 허물이 아니니 아버지의 의사를 따르겠다고 하는것이였다.

리좌수는 혼인을 허락하고말았다.

이리하여 리유신의 딸 리씨는 글공부를 하기 싫어하여 시골로 쫓겨내려온 서울 량반집 도련님과 우연히 일생연분을 맺게 되였다.

 

남편이 진짜 천치인가

 

리씨가 김안국과 혼례를 치른 뒤 안동부사는 인차 내직으로 옮겨가게 되였다.

작별하는 날 안동부사는 리씨와 그의 아버지에게 안국에게 어떻게 하나 글을 가르치면 두 집에 큰 영광이 차례질것이니 꼭 그렇게 해보라고 당부하였다.

리씨부인은 침착하고 판단력이 있는 녀인이였다.

남편은 안동부사가 떠난 뒤로는 자기 방을 나서지 않고 처량한 기색으로 아침저녁을 보내니 그 혈기좋던 얼굴이 차차 수척하여 골병이 든 사람같았다.

시골에 몸을 두고 친척되는 어른을 부모와 같이 의지하고 지내다가 헤여졌으니 쓸쓸한 마음이 더한것 같았다.

어느날 깊은 밤이였다.

리씨는 남편을 향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멀리 나가지는 아닐지라도 사랑출입이라도 하시오면 신체가 그렇게 변하실리 없사온데 어찌하여 이 방에만 계시오이까. 수척해진 그 모습을 뵈오니 이 마음 진실로 쓰리고 아프오이다.》라고 하며 은연히 두눈에 눈물을 머금었다.

《내 부모님께 죄를 지은 몸으로 어찌 해와 달을 볼수 있겠소. 그대가 나를 위하여 이렇듯 걱정을 하니 나는 부모님께 지은 죄에 또한 당신에게 죄를 지으니 진실로 기구한 인생이요.》

안국의 말에 리씨는 마음을 가다듬고 어찌하여 그렇게 되였는가고 물었다.

안국은 잠시 말이 없더니 깊은 한숨을 몰아쉬며 자초지종을 터놓았다.

김안국은 맏아들이였다. 나서부터 골격이 준수하고 얼굴생김이 훤하여 부모들의 남다른 사랑을 받았다.

아버지 김련은 그가 장차 가문에는 조상을 빛내일 자손이 되고 나라에는 사직을 편안하게 할 신하가 되라는 뜻에서 이름을 안국이라고 지었다.

안국에 대한 아버지의 희망과 기대는 컸다.

그리하여 안국의 나이 8살에 이르렀을 때 선생을 청하여 천자문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하늘 천, 따 지, 감을 현, 누를 황 …》

그런데 이와 같이 몇번을 되풀이하여 읽어주었으나 안국은 입 한번 열지 않았다.

훈장이 글자를 되풀이하여 가르치기를 하루, 이틀…닷새를 해보았으나 허사였다.

그래도 꾹 참고 다시한번 소리를 더 높여 읽었으나 마찬가지였다.

《너 이놈, 이제 보니 허울좋은 병신이로구나!》

아버지는 더는 견디지 못하고 매를 들었다.

제 자식이니 차마 내버려둘수가 없어 이렇게 달래며 가르쳐보기도 하고 저렇게 꾸짖어가며 가르쳐도 보고 때리며 가르치기를 무릇 석달동안 하였으나 안국의 입은 어느때나 꾹 다물려있었다.

어언 몇해가 또 지났다.

안국은 날이 갈수록 풍채가 좋은 사내로 되여갔다. 그런 모습을 바라볼수록 아버지의 마음은 더욱 괴로왔다.

《안국아, 오늘부터는 글을 잘 배우자.》

아버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안국을 불러앉히고 다시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안국의 머리는 다시 아프고 눈앞이 캄캄해지였다. 몇해전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럭저럭 나이를 먹어 안국은 벌써 열다섯이 되였다.

(나이가 어렸을 때에는 어려서 그렇다치고 열다섯이 되여도 그 모양이니 세상에 이런 천치가 어데 있단 말인가. 내 가문에 이런 천치가 생길줄은 정말 몰랐구나!)

저런 병신같은 놈때문에 대대로 이름높은 가문의 명예가 땅바닥에 떨어진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날마다 미친 사람같이 펄펄 뛰면서 안국을 눈앞에 얼씬도 못하게 하였다.

아버지가 이처럼 속을 꿍꿍 앓던차에 아버지의 사촌동생되는 김청이 안동부사로 임명받아가게 되였다.

(옳지, 좋은 기회가 왔다.)

아버지는 안동부사에게 《그 병신을 앞에 두고서는 내가 이틀살것을 하루밖에 살수 없으니 나를 살리는셈치고 제발 데리고가게.》라고 말하였다.

안국에게는 《나는 너를 자식으로 여기지 않을터이니 너도 나를 아버지라고 하지 말아라. 너를 안동으로 보낼터이니 죽든지 살든지 네 팔자대로 하려니와 만일 다시 서울에 올라오는 날이면 죽여버릴터이니 그리 알어라.》하고 엄한 소리로 오금을 박았다.

안국은 울기도 하고 한숨도 지으며 길을 떠났다.

안국의 이야기를 듣고난 리씨는 남편의 정상이 가긍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도 글읽기가 싫소이까?》

《웬일인지 글소리만 들으면 비상(극약)을 먹여 죽인다는 말보다 더 무섭소. 글자란것을 한자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프고 눈이 캄캄하여 보이지 않는구려.》

리씨는 부드러운 말로 남편을 위로하고나서 잠자리에 누웠다.

(남편은 진짜 글 한자도 읽을수 없는 천치란 말인가.)

리씨의 생각은 고요한 밤과 함께 끝없이 깊어만 갔다.

 

뉘덕인가

 

원래 리씨는 영특하고 지혜가 있었다.

아버지는 딸의 재주가 아까와 글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는데 하나를 배워주면 열을 알아 빠른 속도로 발전하였다.

몇년이 지나서는 《사서오경》을 통달하지 않은것이 없었으며 부녀자의 일로 바쁜 속에서도 틈틈이 책을 보아 웬간한것은 모르는것이 없었다.

부녀자들도 이렇게 하는 글공부를 사나이가 할수 없다고 그만둔다면 일생을 그르치고말것이였다.

리씨는 며칠째 생각에 잠겨있었다.

(세상에 《대기만성》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큰 그릇은 뒤늦게 이루어지는 법이거늘 기상을 보건대 내 남편은 큰일을 칠 인물이니 어떻게든 묘안을 찾아보자.)

어느날 저녁이였다. 밥상을 물린 뒤 안국을 맞이한 리씨는 이렇게 물었다.

《저, 혹시 귀로 들으시는 이야기는 싫증이 안나시오이까?》

《그것은 얼마든지 일없소.》

안국의 입에서 곧 석연한 대답이 나왔다. 리씨는 속으로 그러면 재주가 없는 사람은 아니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우선 옛글을 이야기해주어 외우게 하고 그것으로써 차차 재미를 붙이게 하면 글을 읽을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이야기를 해드리면 반드시 그것을 외워서 다시 들려주시겠소이까.》

《그렇게 하기요.》

안국에게 글을 읽힐 방법이 생겼으니 리씨의 마음은 날을것만 같았다.

다음날부터 리씨부인은 옛 력사책의 내용을 이야기하면서 안국의 기색을 살폈다. 그는 재미있게 듣고있었다.

얼마동안을 이야기하다가 끝을 마치면서 들은것을 도로 외우게 하니 안국은 한구절도 빠짐이 없이 주르륵 다 외워 이야기하였다.

밤이 늦도록 열흘동안을 이야기하고 외우고 하는 사이에 책 한권을 다 외웠다. 리씨부인은 너무 기뻐 안국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글이 별것이 아니라 그동안 들으시고 외우신것이 모두 글이오이다. 글인즉 말이요 말인즉 글이니 어려울것이 무엇이겠나이까.》

리씨는 력사책 한권을 안국의 앞에 놓고 한글자, 한글자를 읽고 그 뜻을 하나하나 풀어 말하였다. 알고보니 이미 들은 이야기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안국은 아무 말없이 한동안 있다가 비로소 그 무엇을 크게 깨달은듯 눈에 광채를 띠였다.

《글이 이렇게 쉬운줄을 진작 알았더라면 벌써 글을 읽어서 아버지께 죄를 짓지 않았을것을 나는 글이라면 지독히 어려운줄로만 생각한 까닭에 겁을 먹었댔소. 지금부터라도 나는 글을 배우겠소.》

리씨는 악몽에서 벗어난듯 한 안국을 신기하게 보며 래일부터라도 자기 아버지에게서 글을 배울것을 청하였다.

다음날 딸에게서 앞뒤사연을 알게 된 리좌수는 딸의 지혜가 너무도 신통하여 크게 기뻐하며 안국에게 글을 가르쳤다. 이때부터 안국은 침식을 잊어가며 글공부에 힘썼다.

(내가 우리 아버님께 죄인이 된것이 오직 이 글 까닭이 아니냐.)

안국은 글을 읽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이를 악물고 달라붙었다.

어느덧 5년이 지나갔다. 리씨와 그의 아버지가 적극 떠밑어주고 안국이 애쓴 결과에 이제는 경상도 어느 유명한 선비에게도 문장이며 필법이 떨어지는것이 없게 되였다.

이때 나라에서는 큰 인재를 뽑는 과거시험을 쳤다.

그동안 안국이 배운것이 과거를 보는데는 넉넉하리라고 여긴 리씨부인은 남편에게 과거시험에 응시할것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안국의 귀전에는 다시 서울로 오면 죽이겠다고 한 아버지의 말이 맴돌았다.

죽는것이 무서워서보다도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면 불효가 되지 않을가 하는 위구심이 앞섰다.

리씨부인은 남편의 잘못된 생각을 사리를 따져가며 깨우쳐주었다.

《그것은 잘못 생각하신것이오이다. 아버님께서 그처럼 말씀하신것은 오직 글을 읽지 않으신탓이온데 이제는 글을 읽으셨을뿐아니라 과거를 보시고 장원이 되시면 이것은 공으로써 죄를 대신하는것이니 그때에는 아버님께서 어찌 딴 말씀을 하시겠소이까. 두말할것없이 과거를 보셔서 장원을 하시면 부자간이 상봉하실 날이 있는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영영 만나실 날이 없사오니 조용히 서울로 올라가 과거를 보되 장원이 되시면 아버님을 찾아가 뵈옵고 만일 장원이 못되시면 내려오시여 글공부를 더하여 다음에 장원을 하시고 뵈옵는것이 마땅한줄 아옵니다.》

안해의 사리정연한 말을 옳게 여기여 안국은 곧 과거를 보러 서올로 떠났다.

기다리던 과거의 날이 되였다. 안국이 과거시험제목을 보니 전에 익혀보던 글귀이므로 붓을 들어 일필휘지로 내용을 써서 제일선참으로 바치였다.

이날 과거에서 장원은 김안국이였다.

임금은 그의 아버지 김련을 불러 훌륭한 아들을 둔것을 크게 치하하였다.

김련은 너무도 놀라와 어리둥절하였다.

이름으로 보면 분명 안동에 있는 병신같은 맏아들이 틀림이 없었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알수 없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니 름름하게 자라난 안국이 반기며 엎드려 절을 하였다.

김련은 아무리 글을 가르쳐도 입 한번 벌리지 못하여 천치로 여기고 내쫓았던 아들이 장원급제하여 돌아왔으니 기쁨보다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앞서 바삐 그 까닭을 물었다.

안국은 눈물을 흘리면서 안해 리씨가 이야기로써 글이 어렵지 않다는것을 가르쳐주고 글의 뜻을 설명해주던것이며 리좌수에게서 밤낮으로 글을 배우고 마침내 리씨의 권고로 과거를 보러 오게 된 전후사연을 자세히 말하였다.

이야기를 들은 김련은 물론 온 집안사람들이 모두 과연 신기한 일이라고 하면서 리씨부인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였다.

이때부터 김안국은 벼슬이 점점 높아져 나라의 각종 문서들을 작성하는 대제학의 벼슬까지 지내였으며 내외에 문장가로 그 이름을 떨치였다.

안국은 외교문서를 쓸 때에는 홀로 조용한 서재에 들어가 문을 닫고 사색을 집중하여 여러날동안 고심한 끝에야 초안을 내놓군 하였는데 그 글이 무게있고 간단명료하여 중국에서도 그의 문장을 높이 평가하였다.

실로 김안국이 온 조정과 외국에서까지 재능있는 문사로 이름을 남기게 된것은 높은 식견과 영특한 지혜로 남편을 이끌어준 안해 리씨의 덕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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