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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력사 전설] '행복의 문'-칠성문

이형주 기자 | 기사입력 2020/07/04 [09:24]

[조선력사 전설] '행복의 문'-칠성문

이형주 기자 | 입력 : 2020/07/04 [09:24]

 

《행복의 문》-칠성문

 

평양의 모란봉 서남쪽에 있는 칠성문은 예로부터 《행복의 문》으로 불리웠다.

칠성문이 《행복의 문》으로 불리우게 된것은 나라를 지켜싸운 한 젊은이에 대한 전설이 전해지면서 생기게 되였다고 한다.

먼 옛날 평양성안에는 돌범이라는 총각과 시내라는 처녀가 살고있었다.

그들은 서로 다른 마을에서 살고있었으나 돌범은 나무를 하고 시내는 나물을 뜯으러 모란봉에 올라 만나군 하여 어린 시절부터 가까이 지냈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그들이 시집장가갈 나이에 이르렀을 때 돌범은 마음씨 곱고 얌전한 시내에게 사랑을 고백하였다.

시내는 이미 정든 돌범이가 싫지 않았다.

름름한 체격에 의협심이 강한 돌범이만 한 총각이 이 세상에 더 없으리라고 생각하고있었던것이다.

돌범이가 대답을 애타게 재촉하자 시내는 얼굴을 붉히며 그것이 진정한 소원이라면 집에 중매군을 보내야지 나에게 다그치면 어찌겠느냐고 조용히 속삭였다.

그날밤 돌범이의 어머니는 아들의 실토정을 듣고 너무 기뻐 어쩔줄 몰라하며 다음날 중매군을 보냈다.

그런데 중매군은 시내의 집에 갔다와 천만락심해하며 처녀의 아버지가 뭐 칠성문도 나들지 못한 녀석에겐 딸을 늙히는 한이 있더라도 주지 못하겠다고 말하더라고 이야기하였다.

천만뜻밖의 말에 돌범은 물론 그의 어머니까지 눈앞이 캄캄하여 입을 열지 못하였다. 그때 칠성문을 나들지 못했다는것은 무술을 닦지 못하였거나 변방에 번을 서러 나가지 못하였던 사람들을 두고 이르는 말이였다.

사실 돌범이는 무술을 닦고 변방에 번을 서러 가려고 했으나 늙으신 홀어머니가 걱정되여 집을 떠나지 못했던것이다.

돌범이와 그의 어머니는 사람축에 끼우지 못한다는것이 가슴 아팠다. 돌범이는 여러날 생각을 하던끝에 무술을 배우러 떠날것을 어머니에게서 승낙을 받았다.

그리고 시내와도 무술을 닦을 3년동안 기다리기로 약속하였다. 무술터에 간 돌범은 자기의 사연을 스승에게 아뢰였다.

그러자 스승은 생각을 잘했다고 하며 《무술을 배우되 그것은 나라를 지키기 위한 참된 무술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였다.

돌범은 꾸준한 노력과 스승의 각별한 사랑과 관심속에서 3년동안 무술을 닦았다. 그가 집으로 돌아올 때가 거의 되였다.

그런데 그때 나라에서는 변방에 외적이 자주 침범하여 많은 군사를 징발하였으나 그들을 지휘할 무사가 없어 무술을 닦은 장수를 요구하였다.

그래 돌범은 시내와 한 3년간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그 길로 변방에 나가 외적과의 싸움에 나섰다.

외적을 물리치고 싸움이 끝나자 또 고향으로 가지 못할 사정이 생겼다. 그것은 나라변방에 철벽의 방어진을 축성해야 할 임무가 제기되였기때문이였다.

이렇게 되여 시내와 약속한 때보다 2년이란 세월이 또 지나갔다. 어느날 방어진을 치는 일에 여념이 없는데 고향에서 왔다는 한 총각이 찾아와 시내가 얼마전에 시집갔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전해주었다.

돌범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방어진축성이 끝나자 돌범이는 군공으로 하여 승급되여 평양으로 소환되였다.

돌범은 장수의 옷차림을 하고 군졸의 호위를 받으며 말을 타고 평양성에 들어와 새 초소를 넘겨받고는 홀어머니가 계시는 집으로 갔다.

어머니는 문밖 터밭에서 김을 매고있었다. 말에서 내린 돌범은 무릎을 꿇고 어머니를 찾았다. 어머니는 뜻밖에 나타난 름름한 아들을 보며 밭에서 허둥지둥 달려나오며 집안을 향해 소리쳤다.

《얘야, 왔다 왔어!》

돌범은 웬일인지 몰라 집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런데 집에서 웬 녀인이 나왔다. 그런데 그는 바로 그처럼 애타게 보고싶고 잊지 못하던 시내였던것이다.

그들은 뜨겁게 상봉하였다.

《시내, 이게 어찌된 일이요?...》

그러자 시내는 제가 자기 집에 와있는데 뭐가 이상해서 그러느냐고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는 그간 있었던 일들을 들려주면서 돌범이가 무술을 닦고 변방으로 갈 때 스승이 와서 소식을 알려주었고 시내아버지는 시내를 보내여 홀로 있는 자기와 함께 있도록 아예 시집을 보냈다고 이야기하였다.

돌범이와 시내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어머니를 모시고 의좋게 살았다. 평양사람들은 돌범장수가 칠성문을 드나들었기에 그들의 행복이 꽃폈다고 하면서 행복을 바라는 젊은이들은 돌범장수처럼 《행복의 문》인 칠성문을 드나들면서 무술을 닦으라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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