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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옛적에(12)-막 가는 민족사회와 세계 유일의 분단민족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20/07/13 [21:10]

옛날옛적에(12)-막 가는 민족사회와 세계 유일의 분단민족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20/07/13 [21:10]

▲ 대조선인의 위대하고 찬란한 역사를 숨기기 위해 그어진 38선. 자료사진     © 편집국

▲     © 플러스코리아



  우리는 우리의 증조할아버지 시절부터 시작된 한민족(조선인)의 치욕적인 분단시대에 벌어졌던 일들을 간략히 살펴 보자.

 

   한민족의 분단(남북 분단)은 매우 황당한 계기로 저질러진 세계사적 대실수였다. 어떻게 보면 대한국이 유사 이래로 한민족의 국가였다는 초보적인 역사적 상식조차 없던 까닭에, 한반도를 왜구들의 당연한 세력판도로 인정해 버리고 있던 몽매한 국제 패권세력들의 역사적 무지로 인하여, 한민족의 분단이라는 비극이 벌어지게 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한민족 분단의 궁극적인 문제점은 민족분단을 자신의 야욕충족을 위한 다시 없는 기회로 악용하려 했던 흉악한 반민족행위자(, 민족반역자)들의 음흉한 술책으로 인하여 대부분 야기되고 증폭되었다. 동족의 목숨을 파리목숨 정도로도 생각할 줄 모르는 듯한 극악한 반역자들일수록 오히려 자칭 애국자임을 목청높이 주장했고, 자신의 정체를 폭로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차없는 테러가 행사되었다.

 

   구호야 어쨌건 두 사회는 모두 오직 보다 나은 경제적 풍요(, 돈벌이)의 달성만을 목표로 했을 뿐, 민족정기의 확립이라던가 민족자존의 확보같은 것은 단지 공허한 헛기침처럼 가끔 양념삼아 들먹여질 뿐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북한에서는 계속 지도자를 위대한 영도자로 신격화해 갔고, 남한에서는 경제적 풍요(, 돈벌이 만능)을 숭배해 갔다. 그러면서도 서로 잘못을 고칠 생각은 않고, 상대방이 우상숭배를 하느니 도덕적으로 타락했느니 하면서 극한 대립의 큰 이유로 삼았던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민족혼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는 점에서 두 사회는 모두가 모래성을 쌓고 있었던 거나 다름없었다. 얼빠진 인간들이 돈이나 몇 푼 더 손아귀에 쥐었다고 해서 잘 난 인간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사회가 인류의 이상적 사회를 추구하는 바른 방향으로 역사적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건전한 사회기풍 확립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은 인류역사 자체가 증명해 왔다. 바른 목표와 바른 실천적 기풍이란 그것이 인류생활의 질적(문화적) 향상을 도모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그렇지 못하고 단지 육체적 안락함이나 물질적 풍요만을 추구하거나 비이성적인 우상숭배에 빠지거나 하는 사회는 이미 이상적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인류문명이 아닌 저열한 하급동물의 세계로 타락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기본적 사회기풍의 혼돈은 곧 숱한 폐단을 한민족사회에 야기시켰다. 민족문화의 소중한 가치같은 것은 대부분 봉건시대적 유물정도로나 취급되었고, 인간의 생명은 같은 주의자일 때만 존중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주의가 다른 한, 민족이건 동족이건 친척이건 가족이건 간에 타도해야만 할 악마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소위 냉전이라는 사상(이데올로기) 대립이 가장 현저하게 그 비극적 양상을 드러내 보인 곳도 바로 한민족사회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인류사회가 성립하는 데 있어서의 가장 기본적 조건들이 철저히 봉건시대의 유물로 무시되는 가운데, 돈벌이(, 먹고 살려는 본능) 이외에는 아무런 가치기준도 찾지 못하고 제 멋대로 방황하기 시작한 한민족사회는 독재부정부패전통적 윤리의 파탄 등 모든 악덕에 찌들어 문자 그대로 약육강식의 논리만이 판치는 동물농장이 되어 갔으며, 남한과 북한에 대한 미국과 쏘련의 노골적인 간섭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켜 갔다고 한다.

 

  4323(1990) 103일은 분명히 세계사적으로 하나의 큰 획을 긋는 날이었다. 그 날은 세계의 모든 강대국들과 주변의 모든 나라들이 원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으리라고 하던 동서독일의 통일이 하루아침에 달성된 날이었다. 그 역사적 쾌거가 보여 준 교훈은 명확했다. ,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이 반대를 하고 방해하더라도 분단된 민족 당사자들만이라도 제 정신을 차리고 있고 정말로 통일할 의지가 있다면, 민족통일이란 바로 땅짚고 헤엄치기처럼 쉬울 수도 있다는 사실의 확인이었다. 특히 민족지도자들이 사심없이 민족대의를 위하여 진정코 통일을 추구할 때 민족분단의 장벽은 일거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명확한 세계사적 증거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또한 베트남의 통일이 무력으로 쟁취되었던 점을 강조하면서 분단민족의 통일은 무력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고 떠벌리던 자들의 어리석은 혓바닥들이 일제히 힘을 잃게 된 사건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민족은 여전히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한 채 동족대립의 암흑 속을 헤매고 있었으니 그 까닭은 무엇인가?

 

   당시에 독일의 통일을 바라보는 한민족사회의 자칭 지도자들의 시각은 극도로 왜곡된 것이었다. 그런 지도자들의 대변인 노릇을 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던 그 당시의 언론기관들은, 체제가 다른 동서독의 통일에 따른 일시적인 부정적 현상들을 크게 다루면서 통일비용이 엄청나다느니, 외국인배척행위가 극심하다느니, 주변국가들이 불안해한다느니 하는 장광설들을 늘어 놓으며 분단상태를 오히려 합리화시키기에 열을 올렸다고 한다.

 

   그것은 마치 구데기가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그겠다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으나, ‘경제적 풍요에만 잔뜩 신경을 곤두세워 왔던 남한사람들은 그 막대하리라는 통일비용에 겁부터 집어 먹었고, 개인우상숭배에만 넋을 빼앗기고 있던 북한지도층 또한 자신들의 체제가 무너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 세계적인 민족통합적 조류에도 불구하고 민족중심적인 어떠한 대중적 움직임이 발생할까봐 오히려 극히 조바심을 내었던 게 그 당시의 자칭 지도자들이었던 것이다.

 

   민족통합적 조류란 인류의 역사 활동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단위로서의 각 민족들이 그동안 잃어 버렸던 민족적 권리를 되찾고, 잊어 버렸던 민족문화를 발전시키면서, 상호간 정당한 권리를 지켜주고 공정한 민족간의 국제적 관계를 정립하여, 인류사회의 안정을 이룩하자는 취지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했다.

 

   수백년간 지속되었던 제국주의자들의 최면에 걸려 있던 여러 피압박민족들이 그들에게 강요되어왔던 깊은 잠에서 깨어나면서 그러한 풍조가 광범위하게 퍼져 나가자 가장 당황한 것은 당시의 세계를 휘어잡고 있던 미국을 비롯한 여러 다민족 패권국가들의 지도자들이었다. 저들은 자기들의 세계 제패능력이 내부 분열로 인하여 약화되기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들의 강력한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다른 강력한 상대 세력이 나타날 수 없게 하기 위해서도, 저들은 민족을 철저히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영구한 세계패권을 노리던 저들로서는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들 사회에서는 일부 특수한 민족부류만이 더욱 용이하게 사회지도자로 출세할 수 있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처럼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보다 큰 문제는 저들에게 있다기보다도 차라리 제 정신을 못 차리고 그러한 다민족 강대국들의 주장에 미혹하여 덩달아서 민족통합조류를 부정하고 오직 세계는 하나따위의 허황된 구호만을 부르짖는 얼빠진 자칭지도자들에게 있었던 것이다.

 

   특히 당시의 한민족에게 있어서 그러한 현상은 현저하게 나타났다.

 

    이차대전 이후의 일반적 역사적 조류로 볼 때 여러 모로 민망스러운 개인우상숭배 놀음따위나 하고 있던 북한은 더 이야기할 것도 없었지만, 그나마 사상적인 자유가 다소라도 인정되고 있다던 남한에서도 그같은 민족알레르기라고나 할만한 증상들은 사회의 구석구석까지 만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근본적인 이유는 왜구들의 마수에서 간신히 벗어났던 저 8.15 이후에도 왜구침략기에 왜구들과 손을 맞잡고서 반민족행위를 자행했던 친일파들을 단죄하지 못했던 데서 비롯되었던 것이라고 한다.

 

   단죄하지 못한데서 그친 게 아니라, 단죄를 담당했던 특별위원들을 오히려 이적행위자로 몰아서 타도해 버린 적반하장격 작태가 벌어졌다고 하니 그런 사회에서 민족을 이야기한다는 게 도대체가 무리가 아닐 수 없었으리라. 적어도 반민족행위자들이 권력을 쥐고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동안에는 말이다.

   당시에 반민족행위자(소위 친일파)라고 음으로 양으로 알려져 있던 사람들 중에는 그야말로 사회의 각계각층에서 지도자급 위치에 있던 자들이 거의 망라되다시피하고 있었는데, 심지어는 나중에는 그 중에서 남한의 대통령까지 나와서 이십여년에 가까운 군사독재정권의 철권을 휘두르기도 했으니, 더 이상 무슨 민족을 찾을 수 있었을까?   

 

  그러나 그러한 짙은 암흑 속에서도 유능한 치료사인 시간은 그 위대한 자신의 치료능력을 변함없이 발휘해가고 있었다. 더 이상 반민족행위 직접 가담자들이 남아있지 않게 될 그 날을 기다리면서

 

배달민족 역사와 문화 창달에 관심이 있는 평범한 시골의사 입니다.
서울중고-연대 의대 졸
단기 4315년(서1982)부터 세계 역사,문화 관심
단기 4324년(서1991) 십년 자료수집 바탕으로 영광과 통한의 세계사 저술
이후 우리찾기모임, 배달문화연구원 등에서 동료들과 정기 강좌 및 추가연구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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