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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속 명절] 민속명절

이형주 기자 | 기사입력 2020/07/14 [21:47]

[조선민속 명절] 민속명절

이형주 기자 | 입력 : 2020/07/14 [21:47]

 

▲ 설 명절. 자료사진     © 이형주 기자

 

민속명절

 

우리 나라에는 예로부터 해마다 즐겨 맞아오던 명절들이 적지 않다.

봉건시대의 기록들에서는 이러한 명절을 한해의 일이라고 하여 《세사》, 민간의 명절이라고 하여 《속절》, 민간의 행사를 달별로 적은 표라고 하여 《월령》이라고 하였다.

옛 기록들에 전해오는 수많은 명절들에는 인민들이 즐겨 맞던 명절, 지배계급들만이 위주로 즐기던 명절, 전민족적으로 맞던 명절 등이 있다.

또한 같은 명절을 맞이하는 경우에도 계급적처지에 따라서 서로 다른 립장과 태도를 가지고 맞이하였으며 명절에 진행하는 행사들도 같지 않았다.

민속명절행사는 근로하는 인민들의 로동생활과의 밀접한 련관속에서 발생발전한 풍습이므로 력사적연원이 오래다.

옛 기록에 의하면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랜 고대국가의 하나인 부여에서는 매년 12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이 행사를 여러날동안 하였다. 이때 음식을 차리고 가무를 하는데 이것을 《영고》라고 하였다.

또한 10월은 언제나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명절이였는데 밤낮으로 술을 마시며 가무를 하였다. 이것을 《무천》이라고 하였다.

마한에서는 5월에 농사일이 끝나면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밤낮으로 모여 술을 마시고 여러 사람이 어울려서 노래부르고 춤을 추었다.

10월에 농사가 끝났을 때도 역시 그와 같이 하였다고 한다.

보는바와 같이 고대국가의 주민들은 12월, 10월, 5월에 하늘을 숭배하는 의식을 진행하였다.

이것은 물론 비과학적이며 미신적인 관념에 의하여 진행되였으나 여기에는 당시 인민들의 소박한 생활감정과 풍습이 반영되여있었다. 즉 이 행사들은 씨뿌리기를 한 다음에 그해 농사가 잘될것을 바라며 씨뿌리기의 성과를 축하하고 또한 한해농사를 짓고 낟알을 다 걷어들인 기쁨을 반영한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의식들은 일정한 격식을 갖추어 해마다 반복하여 진행하였다.

물론 이보다 앞선 그 어떤 소박한 명절이 있었을것이나 전해지는 기록이 없다. 삼국시기에 와서는 정초, 3월 3일에 맞는 3월 3질, 6월 15일에 맞는 6월류두, 8월 15일에 맞는 8월추석 등의 명절을 맞은 기록이 적지 않다.

고려시기의 명절로서는 연등회, 팔관회, 류두 등 3대명절이 있었다는 말도 있으나 《고려사》에 설, 정월대보름(상원), 상사(3월 3일), 중구(9월 9일), 동지, 팔관(10월), 추석 등이 있었다고 전하는것으로 보아 이 속절들이 일반적인 명절이였던것 같다.

조선봉건왕조시기의 명절에 대하여서는 18-19세기에 진행된 년중행사를 적은 《동국세시기》, 《경도잡지》, 《렬양세시기》를 비롯한 여러가지 기록들에 비교적 자세히 전한다.

봉건시기의 명절은 당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던 농업생산이나 종교, 미신과 관련되면서 계절이 바뀌는 시기의 적당한 날을 골라 거기에 의의를 덧붙여 관습적으로 맞아온것이였다. 지난 시기의 대부분의 명절은 농업생산주기와 관련된것이므로 큰 변화가 없이 삼국시기 혹은 그 이전 시기부터 조선봉건왕조말기까지 전하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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