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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력사 사건] 미프의 고종황제 조부 '남연군무덤 도굴사건'

이형주 기자 | 기사입력 2020/07/25 [07:24]

[조선력사 사건] 미프의 고종황제 조부 '남연군무덤 도굴사건'

이형주 기자 | 입력 : 2020/07/25 [07:24]

 

▲ 병인양요 때 탈출한 프랑스 제독 로즈, 프랑스 신부 페롱, 조선인 천주교도들과 함께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이자 고종황제의 조부인 남연군의 묘를 발굴해 시체와 부장품을 이용하여 통상문제를 흥정하고자 하는 엽기적인 계획을 세우게 된다.1868년 5월 오페르트 일행은 미국인 젠킨스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남연군의 묘 도굴에 착수한다.     © 이형주 기자

 

남연군무덤도굴사건

 

1868년 미국침략자들이 남연군의 무덤을 도굴하려다 실패한 사건. 미국강도배들은 조선봉건정부에 예속적인 불평등조약을 강요함으로써 침략의 길을 열려고 이미전부터 흉계를 꾸며왔다. 그러던중 이자들은 1868년에 당시 조선봉건정부의 집권자였던 대원군 리하응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유해를 훔쳐내여 그것을 미끼로 침략적불평등조약을 강요하는 한편 무덤속에 있는 금은보화를 략탈해가려는 파렴치하고 날강도적인 무덤도굴음모를 꾸미였다.

이 음모는 미국정부의 지시밑에 상해주재 미국총령사 죠지 시워드의 지휘밑에 추진되였다. 도굴단의 우두머리로 이전 상해주재 미국령사관 통역관이였던 젠킨스가 임명되였으며 성원들로는 해적경험이 많고 조선연해에도 기여든적이 있는 도이췰란드국적의 유태인상인 오페르트와 1866년 카톨릭교도탄압(병인사옥)때 중국으로 달아난 프랑스선교사 페롱을 비롯한 8명의 유럽-미국침략자들과 중국에 도망쳐가있던 매국배족적인 조선인카톨릭교도 몇명 그리고 고용한 인부 320명으로 무어졌다.

교활한 미국침략자들은 조선인민의 이목을 딴데로 돌릴 목적밑에 1868년 3~4월기간에 군함 《쉐난도아》호를 서북조선연해에 침입시켜 대동강어구일대에서 도발책동을 감행하게 하였다. 한편 젠킨스일당은 680t급의 해적선 《챠이나》호에 8t급의 작은 발동선 《크레타》호를 달고 1868년 4월 8일 상해를 출발한 후 일본 나가사끼에 들려 석탄과 음료수를 보충한 다음 그곳을 떠나 4월 16일 충청도 아산만에 침입하였다. 4월 18일에는 충청도 흥주군 행담도에 기여들어 조선어민들의 배 2척을 강탈하였으며 100여명의 미국강도단이 《크레타》호와 두척의 고기배에 나누어타고 삼교천을 거슬러올라와 덕산군 구만포에 상륙하였다. 여기에서 그들은 짜리로씨야군대로 가장하고 곧바로 관청으로 들이닥쳐 무기를 빼앗은 다음 관청건물을 파괴하였다. 그들은 그 길로 목적지인 덕산군 현내면 가야동에 기여들어 무덤도굴에 달라붙었다.

그러나 날밝기 전에 도굴작업을 끝내고 달아나려던 그들의 목적은 쉽게 이루어질수 없었다. 19일 새벽 침략자들의 만행을 알게 된 이 지방 인민들은 그들의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시키기 위하여 호미와 괭이를 들고 항거해나섰다. 당황한 강도단은 야망을 이루지 못한채 황급히 도망쳤다. 그들은 도망치는 도중 연도부락인민들의 습격을 받았으며 그때마다 겨우 위기를 면하고 구만포까지 다달았다. 그들은 삼교천을 내려가다가 덕산군 하평리 후포부락에서 무고한 인민들의 집을 습격하여 재물을 략탈하고 도망쳤다.

무덤도굴에서 실패한 미국침략자들은 4월 21일 경기도 영종도앞바다에 나타나 조선봉건정부에 불평등조약의 체결을 강요하는 협박장을 전해왔으며 25일에는 일부 무력을 영종도에 상륙시켜 이곳 인민들을 위협하는 한편 섬을 점령하려고 책동하였다. 섬을 지키고 있던 조선수비병들은 첨사 신효철의 지휘밑에 용감히 싸워 적들을 물리쳤다. 미국강도단은 하는수 없이 26일 상해로 도망치고말았다.

《챠이나》호가 상해에 돌아가자 국제여론은 젠킨스도당의 천인공노할 만행에 대하여 강력히 비난하였다. 높아가는 세계여론의 압력에 못 이겨 미국통치배들은 1868년 5월 18일 상해주재 미국령사재판소에서 젠킨스도당에 대한 《재판》놀음을 벌리였다. 국제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연극으로 꾸며진 이 《재판》에서는 《증거불충분》이라는 구실밑에 이 강도단에 대하여 《무죄》판결을 내리였다. 이것은 미국강도배들의 교활성과 간악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남연군무덤도굴사건》이 개별적인 해적집단에 의하여 감행된 범죄행위가 아니라 미국정부의 아시아침략정책에 따라 감행된 침략행위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었다.

《남연군무덤도굴사건》은 미국침략자들의 강도성과 야수성을 다시한번 드러내놓았으며 이 사건을 통하여 조선인민은 자본주의침략자들에 대한 증오와 각성을 더욱 높이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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