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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속 놀이] 활쏘기

이형주 기자 | 기사입력 2020/07/25 [09:57]

[조선민속 놀이] 활쏘기

이형주 기자 | 입력 : 2020/07/25 [09:57]

 

▲ 활쏘기. 사진=조선의 오늘     © 이형주 기자

 

활쏘기

 

우리 인민들이 가장 즐기는 놀이로 전하여지게 되였다. 고구려에서는 해마다 3월 3일을 맞으며 락랑언덕에 모여 사냥경기를 하였는데 이것은 일상적으로 련마한 활쏘기와 말타기, 칼쓰기, 창쓰기재주를 겨루는 하나의 큰 경기였다.

사냥을 하여 잡은 돼지와 사슴으로는 하늘과 산천에 제사를 지냈다. 고구려벽화무덤들인 약수리무덤, 춤무덤, 사냥무덤, 대안리1호무덤, 감신무덤, 덕흥리무덤 등의 벽화들에 사냥그림이 있는데 그가운데서 약수리무덤의 사냥그림은 말타고 진행하는 사냥경기인듯 하다.

우리 인민들이 즐겨하여온 활쏘기는 여러가지 규칙과 절차가 있었으나 어느것을 막론하고 기본은 화살을 목표물에 맞히는것이였다. 활쏘기에 대한 생동하면서도 오랜 자료는 덕흥리무덤벽화에 보이는 《마사희》그림이다. 이 그림에는 긴 말뚝 5개에 목표물을 세워놓고 4명의 경기자들이 말을 타고 활쏘기경기를 하는 장면이 그려져있다.

그리고 한옆에는 두명의 심판원과 한명의 기록원이 서서 엄격한 규정대로 경기정형을 주시하며 기록하는 장면이 있다. 활쏘기는 고구려뿐아니라 백제, 신라에서도 많이 하였다.

백제사람들은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활쏘기를 하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일찍부터 활쏘기를 많이 하는 과정에 활제작기술도 발전하여 이웃나라들에 널리 알려졌다. 그리하여 이웃나라에서는 좋은 활을 얻으려고 사신을 보내오기도 하고 직접 우리 나라 기술자를 초청하기도 하였다.

일본의 력사를 서술한 《일본서기》에는 두 사람의 사신을 백제에 보냈더니 백제 근초고왕이 환영하여 후히 대접하고 다섯가지 색비단 각각 1필과 각궁, 화살 등을 주어보냈다고 하였다. 또한 《삼국사기》에는 당나라에서 사신이 와서 천보노라는 활을 잘 만드는 기술자 구진천을 데려갔다고 하였다.

이밖에도 활쏘기기술을 정상적으로 련마하고 좋은 활을 잘 만들었기때문에 예로부터 우리 나라에서는 활쏘기를 잘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전해지고있다. 고구려의 왕인 고주몽은 나이가 겨우 7살때에 제손으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가지고 쏘았는데 백번 쏘면 백번 다 맞혔다고 한다.

당시 속담에 활 잘쏘는 사람을 《주몽》이라고 하였기때문에 그의 이름을 그렇게 부른것으로 전해지고있다. 고구려사람 헌성이 당나라에 가서 벼슬을 하였는데 어느날 문무관리들가운데서 활 잘 쏘는 사람 5명을 뽑아 경기를 시켜 상을 주기로 하였다. 이때 헌성이 제일가는 사람으로 추천되였으나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였다.

그러나 재차 추천되니 그가 말하기를 당나라관리들이 수치를 당할가 두려우니 그만두는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또한 임진조국전쟁시기 황진이란 사람은 활을 잘 쏘아 세 사람이 미처 화살을 대주지 못할 정도로 빨리 쏘면서도 화살 한대에 왜적 두명씩을 꿰뚫었고 화살에 한번 맞은자는 당장에 죽지 않는자가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실례들은 우리 선조들이 고대로부터 활쏘기를 많이 하여 그 기술을 꾸준히 련마함으로써 이웃나라들에까지 명성을 떨치였다는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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