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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옛적에(14) 한민족의 부활이야기-자아회복의 염원

한민족의 부활이야기-자아회복의 염원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20/07/28 [17:48]

옛날옛적에(14) 한민족의 부활이야기-자아회복의 염원

한민족의 부활이야기-자아회복의 염원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20/07/28 [17:48]

 

▲ 태양 속에 사는 삼족오(三足烏)는 천상과 지상을 넘나들며 태양의 정령(精靈)을 지상에 전달해주는 상서로운 새.     © 편집부

 

   우리는 이제 인류역사상 가장 극적인 성공담을 이야기할 단계에 왔다.

 

  그 모든 위대한 성공들은 인류역사상 가장 극악한 야만상태로 빠져 들어가던 그 시점에 싹트고 꽃피우고 열매맺은 값진 것이었다.

 

   물질적 풍요라는 환상에 사로 잡혀서 정신적으로는 극심한 공황과 혼돈 속을 헤매며 갈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하던 인류는, 비유하자면 눈을 가린 채 낭떠러지 끝에서 방황하는 꼴이었던 것이다. 그대로 나아가다가는 인류에게 파멸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지구상의 모든 물질들은 한정이 있는 법인데 사람들의 욕심은 한정이 없이 부풀어 가는 판이었으니, 결국 누군가는 보다 더 많이 차지하려 하고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생존을 위한 정당한 몫마저 갖지 못한 채 절망감에 몸부림쳐야 했던 그런 극도의 야만시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개인뿐만 아니라 하나의 국가단위로서도 그러한 비정상적인 현상은 점점 증폭되어, 국가간의 불평등이라는 현상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서 심각하게 전개되었다.

 

   거기에서는 이미 아무런 정당한 공생적(共生的) 논리도 찾을 길이 없었고, 무력을 배경으로 한 힘의 논리만이 모든 부당한 착취-피착취 관계를 정당화하고 있었다. 그런 괴상한 국제관계가 가장 알기 쉽게 펼쳐졌던 곳이 다름 아닌 한민족사회였다고 한다.

 

   당시에 한민족사회(특히 남한사회)를 꽉 거머쥐고서 조종하고 있던 나라는 지금은 없어져 버린 옛 미국이었는데, 두 나라 사이에는 다음과 같이 터무니없는 관계가 성립되어 있었다고 한다.

 

   즉 한국(남한)은 자급자족능력이 약하므로 돈을 벌려면 다른 나라보다 싸고 질좋은 물건들을 만들어 팔아서 이문을 남기는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산단가를 낮추어야 하며, 생산단가를 낮추려면 노동자의 봉급수준이 낮을수록 좋은데, 그러자면 노동자들의 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부분인 식비가 낮아져야 한다. 그런데 식비를 낮추려면 식량생산 단가가 낮아야 하는데 한국의 영세한 농업방식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한국의 농산물 가격은 국제적 농산물 가격보다 몇 배나 비싸므로 차라리 미국 등의 싼 농산물을 수입해다가 노동자들을 먹이고, 노동자들에게는 간신히 먹고 살 수만 있을 정도의 싼 임금을 지불하고, 그래서 물건들을 경쟁국들보다 싸게 만들어 내어 국제시장에 내다 팔아서 남은 이익금으로 다시 농산물을 수입하면 된다는 식이었다고 한다.

 

   소위 비교우위론이라고 불리운 이런 괴상한 논리는 소위 경제전문가(지금은 이미 오래전에 폐기되어 버린 직종이 되었지만)’라는 사람들에 의하여 광범위하게 퍼져 나가서 한 시대를 풍미하는 유행어처럼 되어 버렸다고 한다. ‘식량은 자급하는 것보다 수입해 오는 게 더 낫다라는, 경제의 기본도 모르는 미련한 경제전문가및 관료집단의 망상의 결과는, 당연한 일이기는 하지만, 한국의 농업을 파탄지경으로 몰고 갔다. 그래서 아무런 희망도 없는 농촌에서는 살 수가 없게 된 수백만여명의 농촌 젊은이들이 먹고 살 일자리를 구해서 대거 도시로 몰려 갔고, 농촌은 버림받은 땅이 되어 갔다.

 

   그러나 싼 노동력이라는 점에서 한세대 정도 시기에 비교우위를 차지하던 한국상품들은, 한국보다도 훨씬 더 싼 노동력이 얼마든지 있던 개발도상국들에서 더욱 싼 상품들을 성공적으로 만들어서 팔아먹기 시작하자 안 팔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공업제품 수출을 위해서 외국의 싼 농산물을 수입해야한다고 하던 멍청한 논리도 대폭 수정되어야만 했을 것이고, 비교우위론을 떠들며 식량자급 기반마저 철저히 무너뜨린 파렴치꾼들은 책임을 지고 할복을 하던가 아니면 뭔가 사과문이라도 발표해야 했겠건만 그런 기대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식량가격안정을 위해서 (주로 옛 미국 등으로부터) 들여와야 했던 대부분의 농산물들은, 수출국들에서 선적하기 직전에 방부제와 살충제로 샤워를 시킨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소고기를 위시한 축산물들은 광우병 발생 위험을 우려해야만 하는 무시무시한 독극물들이나 다름없는 것들이었다.

 

   그나마 그런 외제식품들(농산물과 축산물 등) 가격이 점점 상승하자 이번에는 국제적으로 싸다고 소문이 난 옛 중공(지금은 사라지고 몇 개의 지방국가들로 분열되어 있지만) 등의 농산물까지 수입해 들여왔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질좋은 고사리가 많이 생산되기로 유명한 한국의 두메산골 장터(지리산남쪽의 화개장터 등)에까지도 고농도 살충제로 처리된 중공제 고사리 따위가 버젓이 나도는 판이었다는 것이다.

 

   인체에 치명적인 독약들로 떡칠이 되어 있었던 그런 위험 물질들을 비교우위론을 거들먹거리면서 수입해야 한다고 떠들어대던 얼빠진 자들은 도대체 무엇으로 한민족의 역사 앞에 사과할 수가 있었을까? 그러나 그 누구도 사과같은 것은 하지 않고 버텼던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은 농촌도 거덜나고 공장제품들도 팔리지 않는 비교열악한 생존위기상태에 몰리게 되었는데, 그러한 모든 결과는 한민족의 역사적 본분과 자존심을 다 잃어버리고 외세와 외래풍조에 정신없이 휩쓸려 다닌 결과였다고 볼 수 있다.

 

   그처럼 파국으로 치달아 간 열악한 국민경제에 의하여 실업자가 급증해 가고, 당장에 먹고 살 식량마저 얻지 못하는 곤궁한 사람들이 늘어만 가자 무엇인가 커다란 분노가 사회전반에 무겁게 깔려 흘렀고, 사람들은 새로이 살 길을 찾아 내려고 애쓰기 시작했다. ‘경제전문가들에게 맡겨서 되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 민중사이에서는 자신의 길은 자신이 개척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반성이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그것은 잘 못 엮어져 온 한민족현대사에 대한 분노였으며, 뭔가 크게 뜯어 고치지 않으면 안된다는 어떤 염원이 요원의 불길처럼 가슴에서 가슴으로 퍼져갔다.

 

   그것은 한민족 스스로의 생존조건을 확보해야만 한다는 자아회복의 염원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문제해결의 첫걸음이었다.

 

배달민족 역사와 문화 창달에 관심이 있는 평범한 시골의사 입니다.
서울중고-연대 의대 졸
단기 4315년(서1982)부터 세계 역사,문화 관심
단기 4324년(서1991) 십년 자료수집 바탕으로 영광과 통한의 세계사 저술
이후 우리찾기모임, 배달문화연구원 등에서 동료들과 정기 강좌 및 추가연구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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