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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왜역적들을 용서치 못하는 이유-국치일 110주년에 부쳐⑴

김정권 국사찾기협의회장 | 기사입력 2020/08/29 [08:14]

부왜역적들을 용서치 못하는 이유-국치일 110주년에 부쳐⑴

김정권 국사찾기협의회장 | 입력 : 2020/08/29 [08:14]

오늘은 경술국치(庚戌國恥. 식민반도사관자들은 한일합방(韓日合邦)으로 조작날조) 110년이 되는 날이다. '경술국치경술년에 일어난 치욕스러운 일이라는 뜻으로 일제에게 우리나라가 주권을 완전히 빼앗긴 사건을 말한다.

 

▲ 김정권 국사찾기협희회 회장. 사진=마로니아방송

 

한때 경술국치는 친일파(반민족행위자)들에 의해 한일합방, 한일합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합방은 둘 이상의 나라가 하나로 합쳐진다는 뜻이며, 한일합방이란 뜻 그대로 해석하면 한국이 일본을 합방시켰다이다. 일본은 양국이 합의에 의해 합쳐졌다는 의미에서 '일한병합', '일한합병'이라는 용어를 썼다. 일제가 한일병합을 강제로 체결하고 무력으로 국권을 강탈했다는 점에서 '경술국치'라고 불러야 한다.

 

일제는 무력을 앞세워 1905년 을사늑약을 통해 외교권을 빼앗고, 1907년 한일 신협약을 통해 군대를 해산하는 등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차근차근 준비해 갔다. 1910년 일본 육군 대신 데라우치가 3대 통감에 취임하면서 이와 같은 조치는 더욱 빠르게 추진되었다. 일본의 헌병이 경찰 업무를 대신하면서 조선인들을 위협했으며, 일본의 정책에 반대하지 못하게끔 신문·잡지를 엄중하게 검열하였습니다. 대한제국은 사실상 일본의 통제 아래에 놓이게 된 날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애매하고 모호한 말, 그것은 "친일"이라는 단어이다.

 

당시의 "친일파"란 뜻은 작게는 대한을 등지고 왜놈에게 빌붙어서 하수인으로 빨대, 간자, 첩자노릇 등을 하는 행위자, 크게는 한 술 더 떠서 만좌 중에 일본의 왕을 향하여 공개적으로 혈서를 써 보이면서 충성맹세를 하고 선동적으로 젊음과 야망을 횃불처럼 휘둘러 자기를 따르라는 듯이 일본을 위해 일본인보다 더 똑똑한 신일본인으로 등장하는 기수같이 하면서 대한이 망하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던 자들이다.

 

그럼으로 당시의 용어로는 리얼하게 "부왜역적질하는 대한광복의 적" 이라는 표적의 명사였다.

 

유신유람단이니 개화파의 명치유학이니 하는 일제의 "정한프로잭트"의 자금에 매수되어 용병노릇을 하고있었던 자들은 집단이기주의적 협회들을 다수 만들었었으나 이 땅에서 뿌리내리지 못하다가 때가 닦쳐 정한론자들의 자금줄에서

압력이 거세지자 급기야는 부왜역적그룹의 사대부들이 아들들을 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서재필 김옥균 등 당시 일본유학생 72문도들 중 1차로 선발된 선두주류가 모두 친자식들이 아니라는 것을 일일이 확인하다보니 이해가 되는면도 있었다.

일단 친자식은 역모의 전선에서 빼내고 남의 자식들을 입양하여 선발대로 활용한다는 술수가 ~~

 

아무튼 돈과 권력으로 남의 자식들을 구하여 양자로 입적시키고 과거에 급제까지 시켜서 일본으로 보내어 정한프로잭트에 용병이 되도록 부왜를 하였던것이다.

 

풍지박산 되었던 신일본당이라는 비밀정치조직이 종교세력과 연계하면서 바이러스가 만들어 지기시작하더니 계몽과 개화라는 명분으로 사회운동을 시작하고 급기야는 신군부를 만들어 임오군란의 도화선이 되게 성공하였고 갑신반란의 기획을 주동하기에 이른다. (계속)

 

김정권 국사찾기협의회(6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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