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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옛적에(19) - 중화제국의 귀환 (중공의 변신)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20/09/16 [12:29]

옛날옛적에(19) - 중화제국의 귀환 (중공의 변신)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20/09/16 [12:29]

  냉전시대 해체 이후 벌어진 가장 극적인 변화에서 중공의 변신을 빼놓고 얘기할 수는 없겠지?

 

▲ 책 표지/모택동 인민의 배신자. 모택동은 왜 일본군의 進攻에 감사했나/ 엔도 호마레 저/박상후 역   © 편집부



   미국과 남한을 비롯한 자본주의적 국가들을 그토록 비난하며 극도록 경계해 온 중공이, 새로이 등장한 세계질서로서의 초국적자본주의(신자유주의)에 적응하며 경제적 우위를 차지하려는 과정에서 전개된 양상들은, 마치 차이나의 전통 연극 중에 등장하는 변검(變瞼 : 얼굴바꾸기)처럼 흥미롭다. 사실상의 지도층인 중국공산당이 내세웠던 공산주의라는 간판은 내걸 명분조차 없는 상태에서, 그토록 비판해왔던 박정희 식국가자본주의를 급속히 채택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 통제는 스탈린식으로 하면서 뒤늦은 경제성장을 목표로 국내외 자본을 최대한 이용하자는 식이었지.

 

   그런 변신에 곧이어서, 수억 명에 이르는 중공의 저렴한 노동력을 노리고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대자본과 사업가들이 중공으로 몰려들어, 중공은 불과 수년 만에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 와중에 중공이라는 명칭은 공산주의 뉘앙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전 세계적 풍조에 맞춰서 어느새 중국으로 슬며시 바뀌며 자리 잡았지

 

   국가자본을 통제하는 지도적 위치에 있던 공산당 고위층들 대다수가 갑자기 대자본가로 탈바꿈하여 그들 자신이 자본주의적 대부호로 변했다. 저들이 비난해 마지않던 자본주의 세계의 부익부빈익빈 현실이 사상 최단 시간 내에 중공에서 실현되어, 수천만 명의 공산당 출신 벼락부자(재벌)들이 탄생한 반면, 나머지 십억 만 명 이상의 인민들은 이백 년전 산업혁명 시절의 유럽 빈민들 수준으로 열악한 상태에 떨어지고 말았다.

 

   너도 나도 을 벌기 위해 대도시로 몰려들면서 농촌은 급속히 공동화황폐화되어, 일찍이 모택동이 겉으로라도 내세웠던 농민사회주의는 신기루처럼 꺼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던 수천 명 인민들을 바로 얼마 전에 학살했던 그 천안문 광장에는 여전히 커다란 모택동 초상화가 걸려 있고, 모택동어록 또한 여전히 신앙처럼 모셔지고 있다.

 

   국가사회주의(나치즘)도 아닌 공산당 주도형 일본제국주의식 국가자본주의(파씨스트)의 길로 급선회한 중공의 변화는, 모든 이념과 사회도덕성이 완전히 혼돈 속에 빠져든 채 오직 스스로 대재벌이 되어 버린 논리부재의 공산당이 이끄는 강권철권 통제하에서만 간신히 존립 가능하다고 지적되고 있다. 천안문 사태가 바로 그 신호탄이었던 셈이다. 부패하고 이념조차 모호한 통치자들에 대한 어떤 반항도 철저히 분쇄하겠다는 의지로 거대한 동물농장을 만들어 버린 역사적 퇴행의 명백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중공이 어떤 변검을 시도하건 간에, 인민공화국 명칭에 걸맞게 인민들의 생활여건이라도 향상되고 사회적 도덕성과 안정이 유지된다면, 크게 봐서 제대로 된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도덕성을 따지기에는 인류사회 전체가 문제투성이라서 서로 어색한 국면일 수밖에 없다.서세동점 이후 도덕성이라는 기준 자체가 대단히 모호해졌고 인륜도덕의 기본인 가정마저도 서구식 핵가족화 이후 파탄지경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도덕성과 별로 관계없어 보이면서도 중공지도층들이 자기들만 특출하게 도덕성이 뛰어난 것처럼 궤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서냉전 때는 자본주의 사회보다 비교적 사회적 안정을 달성하고 있다고 내세우는 것도 가능했지만, 일단 세계자본주의로의 편입이 시작되자마자 빈부격차는 물론 부정부패의 만연과 각종 자본주의적 강력범죄들까지 덩달아 성행하면서 선배 자본주의 나라들을 뛰어 넘기 시작했다. 식품에서부터 첨단 기술까지 가짜가 넘쳐나고, 심지어는 돈벌기 위한 수단으로 마약밀매납치장기적출 같은 말세적 범죄들까지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다.

 

   소수민족의 독립열망은 일방적인 무력행사로 탄압하고, 민족주의자들에 대한 구속과 고문 등 폭력행사가 일상화되어 있는 현실은, 저들이 비방해 마지않던 제국주의자들의 행태를 더욱 악랄한 형태로 확대재생산하는 듯하다.

 

그런 한편으로는 대중화주의를 강변하면서 강력한 내부단속은 물론 인접국들과의 영토영해 분쟁을 일으키면서 여론을 대중화민족주의 하나로 통일시키려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방법 중 하나로 인근 민족들의 역사를 저들의 소위 대중화역사관에 제멋대로 꿰어 맞추는 인류사상 전무후무한 역사적 폭거를 저지르기도 했다. 특히 한때는 한민족의 고대사 대부분을 아예 저들의 역사의 일부라고 말도 안되는 강변을 늘어 놔서 뜻있는 역사가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한국의 저명한 강단역사학자라는 자들마저 고대사에 대해 명확한 견해를 제시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한심한 상태였으니, 국가정책적으로 제대로 반박조차 못하여 더욱 더 참 역사가들의 분노를 가중시키기도 했으니 말 해 뭣하리?

 

   중공과의 인접국들 중 영토분쟁에 자유로운 나라는 드물고, 따라서 중공에 대응하기 위해 인접국들은 미국유럽러시아인도 등 다른 강국들과의 관계를 보다 긴밀하게 함으로써 자주권을 지키려는 노력도 증가했다. 하지만 당시 미국이 새로운 패권을 추구하면서 세계는 결국 두 강대국의 양보없는 전면적 대결양상으로 나아갔다.

 

   인구와 경제 규모면에서 미국과 경쟁할 정도로 비대해진 중공이 인류사회에 그나마 공헌한 게 있다면 소시민이 얻기 쉬운 저렴한 상품을 생산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경제발전에 따라서 인민들의 소득향상 욕구가 증대하고 인건비도 상승할 수밖에 없어서 그것도 한시적인 효과에 불과하다고 지적되었다.

 

   중공이 진정한 인류문화의 중심지로서의 대중화를 이루려면 세계사상 독보적이었던 인본주의적 문화전통에 다시 관심을 기울여, 보다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사회를 향한 대장정을 재개해야만 할 것으로 지적받았다. 이웃 민족들의 역사까지 저들 역사에 편입하려던 각종 공정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광대극에 불과했다.  자신의 역사와 문화가 중요한 만큼 이웃 민족들의 그것 또한 존중하고 조화를 이룰 때에 진정한 중화가 이루어지는 것이지 억지 부려서 될 일이 아니었다. 한민족의 홍익인간 이념과 중공의 중화주의가 어울리는 날이 진정한 아시아적 평화가 회복되는 전환점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되기도 했다. 그것은 곧 세계평화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었기에. 그러나

배달민족 역사와 문화 창달에 관심이 있는 평범한 시골의사 입니다.
서울중고-연대 의대 졸
단기 4315년(서1982)부터 세계 역사,문화 관심
단기 4324년(서1991) 십년 자료수집 바탕으로 영광과 통한의 세계사 저술
이후 우리찾기모임, 배달문화연구원 등에서 동료들과 정기 강좌 및 추가연구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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