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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력사] 동지날과 《동지팥죽》​

이형주 기자 | 기사입력 2020/09/22 [16:46]

[조선력사] 동지날과 《동지팥죽》​

이형주 기자 | 입력 : 2020/09/22 [16:46]

 

▲ 동지팥죽. 사진=류경



동지날과 《동지팥죽》​

 

위대한령도자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동지날에 팥죽을 쑤어먹는것은 우리 인민의 민속적인 풍습의 하나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창조하고 계승발전시켜온 비물질문화유산들에는 동지죽풍습도 있다.

동지는 24절기의 하나이면서도 오래전부터 우리 인민들이 즐겨쇠온 민속명절의 하나이다.

동지는 1년중 낮이 가장 짧고 다음날부터는 낮이 길어진다는데로부터 새해가 시작된다는 뜻에서 《아세》 또는 《작은 설》이라고도 하였다.

우리 나라에서 동지를 민속명절로 쇠였다는 력사기록은 고려시기 문헌들에 처음 보인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 고려시기 이전에 음력을 사용하고있었고 24절기도 이미 제정되여있었던것으로 보아 고려이전에도 동지를 민속명절로 맞이하였을것으로 보인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도 우리 인민들은 동지를 민속명절로 맞이하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 편찬된 《동국세시기》, 《경도잡지》, 《렬양세시기》 등에 의하면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민속명절은 설명절, 정월대보름, 8월추석 등과 함께 동지도 민속명절의 하나라고 하였다.

민간에서는 동지가 음력으로 11월 상순에 들면 《애동지》라고 하였고 상순을 지나서 들면 《로동지》라고 하였다.

《애동지》인가, 《로동지》인가에 따라 다가올 겨울날씨를 가늠하기도 하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는 동지날을 맞으면서 새해의 달력을 만들어 《동문지보》라는 도장을 찍어 관리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하였다.

동지날에 특별한 민속놀이나 의례를 진행하는것이 없었다.

다만 팥죽을 특색있게 쑤어먹는 풍습이 있다.

이것을 동지날에 쑤어먹는 팥죽이라고 하여 《동지팥죽》이라고 하였다.

력사기록에 의하면 동지날에 《작은 설》이라고 하면서 별식으로 《동지팥죽》을 쑤어먹는 풍습이 있는데 《동지팥죽》에 새알심을 만들어넣고 꿀을 타서 먹는다고 하였다.

팥죽을 쑬 때 찰수수가루나 찹쌀가루를 익반죽하여 새알같이 빚어넣은 떡을 새알심이라고 하는데 지방에 따라 이것을 《오그랑이》, 《도그랑이》 등으로 불렀다.

팥죽에는 보통 새알심보다 비교적 큰 《오그랑이》를 몇개 만들어 넣었는데 이것이 차례지면 복을 받는다고 하면서 식구들이 서로 양보하며 새해에도 집안의 화목을 더욱 두터이하도록 하였다.

사람들은 《동지팥죽》을 먹으면서 나이 한살 더 먹었다는 생각과 함께 지나온 한해를 돌이켜보았으며 이웃들사이에도 서로 나누어먹으며 화목을 도모하기도 하였다.

평양지방에서는 동지날 해가 뜨기 직전에 팥죽을 쑤어먹는 풍습이 있었으며 어떤 지방에서는 팥죽을 겨울밤에 옹배기같은데 떠서 밖에 내놓았다가 먹는 풍습도 있었다.

《동지팥죽》은 영양가가 높고 소화에도 좋은 계절음식의 하나이다.

고려약을 소개한 옛 기록에는 팥죽을 쑤어먹으면 오줌이 잘 나가고 부은것이 내리며 독을 풀고 고름을 내보내며 설사가 멎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늙은이들의 비만증, 각기병, 적리 등의 치료에 효과가 있으며 여러가지 수종병(붓는 병)에도 팥죽을 쑤어먹는것이 좋다고 하였다.

조선로동당의 민족유산보호정책의 빛발아래 공화국에서는 민속명절 동지날과 동지죽풍습은 오늘도 그대로 전해지면서 우리 인민의 민족적향취를 더욱 북돋아주고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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