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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력사] 우리 민족의 가무놀이풍습​

이형주 기자 | 기사입력 2020/11/07 [20:24]

[조선력사] 우리 민족의 가무놀이풍습​

이형주 기자 | 입력 : 2020/11/07 [20:24]

▲ 강강수월래. 사진=조선의오늘  © 플러스코리아

 

▲ 농악무. 사진=조선의오늘  © 플러스코리아

 

오랜 전통을 가지고있는 우리 민족의 가무놀이풍습​

 

위대한령도자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원래 우리 인민은 예로부터 춤을 추기 즐겨하였다. 우리 인민은 일하다 쉬는 참이나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그리고 명절날에 모여 흥겨운 춤판을 벌리군 하였다.》

 

서로 돕고 이끌면서 화목하게 살아온 우리 인민들은 오래전부터 가무놀이를 즐겨하며 생활을 락천적으로 하여왔다.

 

가무는 많은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는 대중예술형식의 하나로서 다른 예술형식보다 통속적이고 대중성이 강하기때문에 로동생활속에서 창조되여 세기를 이어오면서 그 풍습이 전승되여왔다.

 

원시시대에 벌써 그 시초가 마련된 가무놀이는 고대시기에 이르러 사람들의 생활속에서 일반화되여 고유한 풍습으로 굳어졌다. 옛 문헌에는 고대조선사람들의 가무풍습에 대하여 《해마다 10월이 오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서 밤낮으로 노래부르고 춤을 추는데 이것을 〈무천〉이라고 한다.》고 기록되여있으며 부여사람들의 가무풍습에 대하여서도 《부여사람들은 밤낮 늙은이, 어린이 할것없이 다 노래부르며 춤추기를 그치지 않았다.》고 씌여져있다. 또한 진국사람들의 가무풍습에 대하여서도 《해마다 5월 하순 씨뿌리기가 끝나면 풍작을 바라며 여럿이 한데 모여 노래부르고 춤추면서 밤낮 쉴줄을 몰랐다.》라고 기록되여있다.

 

력사기록들을 통하여 고대시기 여러 지역들에서 영농절기마다 농사의 성과를 바라는 민속행사를 크게 벌리고 가무놀이를 진행한 우리 인민의 풍습이 생활속에 깊이 뿌리내리고있었음을 알수 있다.

 

우리 인민의 가무놀이는 삼국시기에 이르러 주제와 형식, 구도와 자리길을 비롯하여 여러 면에서 발전된 양상을 띠고 활발해졌다.

 

삼국시기 우리 인민의 가무놀이풍습은 이웃나라사람들도 부러워할만큼 발전하였는데 특히 고구려사람들속에서 가무가 성행하였다.

 

《삼국지》에는 고구려의 가무에 대하여 《베, 비단, 가죽으로 옷을 해입으며 노래하고 춤추기를 즐겨하며 밤이면 남녀가 무리로 모여서 논다.》고 하였으며 다른 문헌들에는 《고구려사람들은 깨끗한것을 좋아하고 밤이면 남녀가 모여서 노래부르고 춤추면서 즐긴다.》고 기록하고있다. 이와 같은 자료들은 고구려사람들속에서 하루일을 끝마친 저녁마다 모두 모여 가무를 진행하는것이 일상적인 생활풍습으로 되여있었다는것을 보여준다.

 

《삼국사기》에는 신라에서 사람들이 즐겨부르면서 추던 18개의 가무곡이 기록되여있다.

 

고구려의 전통을 계승한 발해의 대표적인 가무《답추》를 보면 문헌기록에는 《해마다 설날에 집단적으로 모여 가무놀이를 하였는데 먼저 노래를 잘 부르고 춤을 잘 추는 사람들을 앞세우고 남녀들이 그 뒤를 따르면서 서로 〈소리〉를 먹이고 받으면서 돌아간다. 이를 〈답추〉라고 부른다.》라고 하였다.

 

춤 잘추는 사람을 앞세우고 많은 사람들이 여러가지 동작을 수행하면서 출수 있는 대중적인 형식의 가무는 앞선 시기 가무보다 구성에서 더 째이고 춤가락도 상당히 발전되였으며 이것은 락천적인 발해사람들의 성격적특질과 풍부한 예술적재능을 잘 반영하고있다.

 

고려시기 가무는 선행시기와 마찬가지로 음악과 결합되여 무용전반에서 새로운 양상을 띠고 활발하게 추어졌다.

 

특히 우리 인민들은 가무에 여러가지 소도구들을 창안제작하여 도입함으로써 독특한 예술적형상을 창조하였다.

 

대표적인 가무《무고》에는 북, 《무애무》에는 호로박, 《동동》에는 박 등이 소도구로 리용되여 우리 민족고유의 정서와 취미가 풍부히 반영되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와서도 우리 인민의 가무놀이는 주제와 형식에서 전시기의것을 전승하면서도 보다 발전된 양상을 보여주었다.

 

조선봉건왕조전반기에는 광범한 인민들속에서 《쾌지나 칭칭 나네》, 《강강수월래》, 《돈돌라리》, 《팔굽춤》, 《손벽춤》등이 창작되여 널리 보급되였다.

조선봉건왕조후반기에는 인민창작무용이 보다 세련되고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농경생활을 반영한 가무가 농악무로 발전하여 전국적범위에서 광범하게 추어졌다.

 

이밖에도 일정한 춤형식을 갖춘 민속무용들과 막춤형식의 가무들이 수많이 창작되여 근로인민대중의 락천적인 로동생활을 풍부히 반영하고 외래침략자들을 격멸소탕하는 성스러운 싸움에서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아주며 승리에로 고무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오랜 력사와 전통을 가지고있는 민속무용은 우리 당의 현명한 령도아래 주체성과 민족성이 구현된 로동당시대의 명작으로 보다 훌륭히 창조되여 우리 인민들에게 커다란 긍지와 자부심을 안겨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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