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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세포게이트 진실 보고서-10

리복재 대표기자 | 기사입력 2007/01/02 [19:42]

줄기세포게이트 진실 보고서-10

리복재 대표기자 | 입력 : 2007/01/02 [19:42]
[제10편] 줄기세포게이트 진실보고서를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쓰는 것은 이 사건이 종지부를 찍은 것이 아니라 현재 불리한 속에서도 한 가닥 '진실'이라는 대의명분으로 진실규명을 할 수가 있기에 가슴아프고 답답해도 쓰게 된 것입니다.이 보고서를 쓰는 필자도 독자여러분도 답답함이 많을 줄 알지만, 이 드라마와 같은 진행이 프랑스의 드레퓌스사건으로 연상 될 정도로 회한과 고통이 수반되는 시간이 장장 1년여동안 흐르고 있습니다.  사건이 장기화 하면 할수록 거짓과 위선의 편에 선 자들은 활개를 칠 것이며, 진실규명을 하려는 순수한 지지자들은 레지스탕스와 같은 마음으로 지하로 잠적할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측근으로 가장한 의도된 계획의 각본대로 어쩔수 없이 따라 움직여야 했던 황 교수의 판단미스 때문도 한 원인이겠으나, 곤경에 처한 상황에서는 판단할 수가 없을 정도의 혜안을 어지럽히고 점점더 덫에 빠지게 만드는 법, 이는 지지자간 격렬한 내분과 세력화를 만들었고 점점 더 어려운 국면으로 끌려 들어가는 형국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진실편에 선 시민들은 물러설 곳도 없는 상태입니다. 그렇지만 비록 세력화는 되지 않았다 해도 어느 순간 화산이 폭발하면 용암이 터져 나올 것이며 그때에는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2005년 10월 세계줄기세포허브센타 준공식에 참석한 대통령 노무현과 주요인사들.자료사진

2003년 9월 22일
이날 서울대 수의대에서 정전 사고가 일어납니다.

이 사고로 인해 황교수 팀의 연구 진행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케 됩니다. 그러나 검찰보고서에 의하면 정전 사고는 이번 사건의 수사의 본질이 아니며 전혀 무관한 것으로 판단, 수사 대상에서 제외 합니다.

서정선 - 문신용 - 노성일 핫라인의 계획적 공략이라는 심정은 가지만 수의대 정전 사고에 대한 구체적 자료를 구할 때까지 이 부분에 관한 언급은 보류 합니다.

황 교수는 2006년 6월 관훈토론에서 “2003년 갑작스런 정전사고로 줄기세포들이 거의 다 죽은 일이 있었는데 이 일을 수습하면서 2개의 줄기세포를 살린 게 바로 박을순”이라고 말합니다.

2003년 10월
Nature지에 논문 기고하였으나 거절당합니다.


왜 황교수가 처음에 Nature지에 논문제출을 시도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자료는 없습니다. 2004년 ‘네이처’지 기자가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황 교수는 그들에게 복제된 세포를 보여줄 수 없다고 거절한 사실이 있었다고 합니다.

네이처는 20일 보도에서 황 교수가 "다른 연구원들조차 함부로 이것을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그런 면에서 "논문조작이 사실로 드러나는 경우 황 교수가 이 사실을 몰랐다고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네이처지가  황교수의 논문 게재를 거절한 이유는 이 외에도 네이처 지 기자와의 개인적 관계등 다른 이유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네이쳐지와 황교수와의 관계가 왜 그러했는지 분석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네이처지의 논문 게재 거부는 황교수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사유가 됩니다.  

“2004년 논문은 이미 2003년 여름에 네이처지에 게재 신청 됐으나,데이터 미비로 거부돼 나중에 데이터를 보충한 뒤 사이언스에 채택된 것”이라며 “논문은 2003년 봄에 이미 작성 됐다”고 말했다. 이 말은 정전 논란시 한 연구원이 한 말이라고 합니다.

네이처지의 논문 게재 거부의 진짜 이유가 무엇인가.

황교수가 네이처지가 원하는 대로 자료를 보완 재 요구를 하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인지에 관하여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만일 네이쳐 지에 황교수의 논문이 처음부터 실렸었다면  새튼과의 ‘이별 쑈’도 ‘황우석 죽이기’ 도 모두 사라졌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두 번째,구자민 연구원과의 연구원 난자 불법채취 사실을 인터뷰한 네이처지는 황교수의  연구원 난자 사용문제를 들고 나와 적대적 관계에 섭니다. 

세 번째,결국 네이처지의 논문게재 거부로  황교수는 자연스럽게 새튼의 안마당인 사어언스지로 발걸음을 옮겨가게 됩니다.네이처지의 논문게재 거부로 상심한 황교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새튼이 내민 구원의 손길로 활기를 되찾게 됩니다.   

네 번째,황교수가 얼마만큼 새튼을 존경하고 그리워하면서 새튼의 배신을 믿으려 하지 않았는지는, 사건이 불거진 이후 검찰 수사를 받는 중에도 새튼을 탓하지 않고 새튼과 재결합 하겠다는 애절한 마음 표시를 하고 있음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2003년 11월
"황교수 광우병에 걸리지 않는 복제 소  성공"

또 이즈음에 유영준은 황우석교수를 지도교수로 하여 “미성숙 난자의 인공수정 및 체세포 핵이식에 활용”이라는 석사학위 논문을 서울대학교에 제출합니다.


위 논문에서 유영준은 166개의 난자를 사용, 1개의 체세포복제(SCNT) 배반포 1개를 수립하면서, “체세포 이식 과정에서 난자 핵의 잔류 및, 제1극체의 유입을 확인하는 실험절차를 부과함으로서 ‘처녀생식’의 가능성을 배제시켰다.” 고 기술합니다.

자신의 논문에는 ‘처녀생식’ 가능성을 배제 시켰다는 말로 자신을 보호하면서 훗날 있게 될  서울대 조사위의 조사 자문역을 담당함에 있어서는 거꾸로 처녀생식론을 들고 나오는 이중성을 보입니다. 

이 논문은 황교수의 2004년도 논문보다  앞선 것으로 배반포 생성에 관한 한 세계 최초의  것이며, 황교수만 없어진다면 유영준이야 말로 인류 역사상 최초의 생명공학 아버지로 불리울 것입니다 

2003년  11월
이에 발맞춰 미국에 있는 새튼이 한국을 방문합니다.


드디어 미생명공학 권위자 새튼이 직접 황우석박사의 수의대 실험실을 방문합니다. 세기의 거물 새튼이 특등석 귀빈석 비행기로,특급 호텔을 제공하는 초청 잔치도 아닌데 자신의  비행기 삯을 들여 손수 방문한 것입니다.

그가 한국에 얼마 동안 체류했는지, 그 동안 누구를 만났고, 어디를 다녀왔는지 자세히 보도 된 바는 없습니다마는, 황우석박사 동명대 강연 도중 실험실 현미경을 들여다보면서 “새튼의 시대는 가고, 황우석박사의 시대가 도래하였다.”고 탄식했다고 합니다.

새튼의 한국 방문 사실에 관하여 우리는 좀 더 깊은 검토를 해야 합니다. 

첫 번째,‘영장류 복제는 불가능하다’ 라는 명제를 깨친 황 교수가 궁금하고 신통해서 그의 얼굴을 보기 위해 자신의 사비를 들여가며 일부러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두 번째,그는 한국이란 나라의 생명 공학 실태를 자세히 돌아보면서 앞으로 그가 어떤 태도를 가지고 이 문제에 대처해 나갈 것인지 심각한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세 번째,그의 입국으로 그토록 존경하던 세기의 생명공학 대선배를 앉은 자리에서 맞이하는  영광을 맞게 된 황교수가 새튼에 대하여 어떤 마음을 가졌을지에 대해서 황 교수는,이 때의 감격스런 고마움으로 박을순등의 연구원을 파견케 한 이유 중의 하나가 되지 않았나 생각 됩니다.   

네 번째, 그의 입국이 황교수의  네이처지 논문 게재가 거절당한지 불과 며칠만에 이루어졌던 사실은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의미를 부여 하는데 새튼은 이미 입국 전 자신의 특허 등록 내용 중 일부를 수정한 뒤였습니다.  

그는 당연히 황교수가 네이처지에 제출하고자 했던 논문의 내용을 모두 점검하고 자신과의 다른 점 등을 엄밀히 검토 하였을 것입니다. 새튼의 악랄한 면모가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다섯 번째,새튼은 이날 한국에 입국하기 전 이미 자신이 제출했던 특허 내용중 중요한 부분을 수정했는데 그것이 바로 황교수가 신청한 “젓가락 신공 법” 추가입니다. 제외 되었던 ‘인간’을 특허 내용에 첨가하고 배반포 형성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첨가물의 화학적 구성 비율도 황교수의 특허 내용 그대로 옮겨 갑니다.  

2003년 12월경 미즈메디 병원의 배양 기술자 박종혁 후임으로 김선종이 등장합니다. 
 
 
박종혁(사진)은 박을순과 미국 새튼에게 황교수팀 연구원으로 파견되었지만 ,이후 실질적으론 그와 파트너였음이 드러나고 있으며 특히 2005년 논문은 '새튼'이 파놓은 기막힌 함정으로 여러 가지 정황상 새튼과 미국측의 회유와 한국 음모세력들의 사전 공작이 이루어진 게 아닌가하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2005년 2월, 논문이 최종 출고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달전 2005년 1월에 오염사고로 NT-4,5,6,7 세포주가 사멸되고 말았습니다. 황박사는 이런 치명적인 사고를 교신저자인  새튼에게 알렸지만 새튼은 강행하도록 종용했다는 것이 밝혀 졌습니다. 그리고 한 달만에 사이언스지에 논문제출이 완료되었습니다.

상식적으로 과학자적 양심으로 그리할 수가 없었는데도 황 교수는 데이터부풀리기 방법으로 제출하게 된 동기에 대해, 새튼에게 타가핵이식 'NT-2번,3번'수립을 직접보여주고, 미국에 초청 방문하여보니'새튼과 함께 도널드케네디사이언스 편집장이 함께 와있었더라.' 라며 '그 자리에서 새튼은 이 정도면 cover paper(커버 논문) 가능하지 않느냐 ?' 고 사이언스 편집장에게 물었고, '사이언스 편집장'은 '가능하다.'고 직답을 해주었다고 밝혔습니다.

▲김선종 연구원     
황박사는 이런 새튼의 '직문화답'에 놀랄 수밖에 없었고, 미국의 논문 제출과 츨판에 관련해서는 새튼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 황교수팀은 국내의  모든 논문자료를 교신저자인 새튼을 거쳐(Through Schatten) 사이언스에 전달되었습니다.

이때 박을순은 '원숭이배아복제 실력검증'을 이유로 피츠버그대에 있었고,줄기세포배양 전문가인 박종혁도 2004년 합류하였습니다. 이렇게 황 교수는 2005년 논문은 논문의 교신저자 새튼의 역활(?)에 힘입어 통상 걸리는 6개월에서 채 절반도 안 되는 3개월이내 'Peer-review 및 최종검토'가 끝나고 출간되었습니다. 박종혁의 역할뿐만 아니라 2005년도에 건너간 김선종의 역할도 궁금합니다. 후술됩니다.

2003년 12월 노무현  대통령이 부인과 함께  연구실을 방문하여  연구팀의  노고를 치하합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황교수의 인간적 유대 관계는 이 이후에도 한 동안 지속 됩니다.그 마지막 시기는 박기영 청와대 보좌관이 물러날 때까지입니다. 

 감탄고토(吐)의 전형적 모습입니다 

이 때 황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비장의 프로젝트 추진의 일환으로 대한민국 발명품에 관련하여 보고를 올립니다. 보고하기 앞서 황 교수는 맨처음 세종대왕의 초상화와 훈민정음, 장영실의 발명품등을 슬라이드로 비추우고 다음으로 노무현 대통령 사진을 보여준 것으로 알려 졌습니다. 즉 노무현 대통령도 세종대왕처럼 훌륭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암시하는 것입니다.최고 권력자의 방문에 대한 응분의 예우를 다 한 것이고 이 자리에서 노통 또한 황교수의 연구에 관한한 정부 차원의 전폭적 지지를 다 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것을 두고 황우석 파동이 터지자 세간에서는 황 교수가 정치적 야욕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다음은 노대통령 생명공학 연구현장 방문에 따른 보도자료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10일 오전 세계 최초로 광우병에 걸리지 않는 소와 인간에게 장기를 제공할 수 있는 무균 미니돼지를 생산한 서울대의 연구현장을 방문하여 연구결과를 살펴보고 관련 연구진을 격려했다.

이 행사에는 박호군 과학기술부 장관과 정운찬 서울대 총장을 비롯한 150여명의 서울대 교수와 연구진이 참여했으며 연구책임자인 황우석 교수(수의학과)와 안규리 교수(의대 신장내과)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특수한 유전형질을 지닌 소와 돼지들이 태어날 때까지의 전 과정을 시연해 보였다.


2003년 12월  10일  세계 최초로 탄생시킨 `광우병 내성 소' 
 
2003년 12월 미즈메디 1,2,3번 줄기세포 발표 (BIOLOGY OF REPRODUCTION)

그러나 논문에는 DNA지문이 없이 핵형 검사만 올라옵니다. 첨부된 사진만 황교수의 줄기세포 1번으로 첨부되었는데 알맹이는 모두 빼어진 상태입니다.

미즈메디의 줄기세포는 2000년에 NIH에 이미 등록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수정란 줄기세포 사진은 미즈메디의 2003년12월 논문에 발표되기 전까지는 공개되어지지 않았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해당 사진을 첨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진 조차 황교수의 1번 사진과 동일합니다. 그 후 2006년 현재까지도 미즈메디 1번은(MIZ-HES1번) DNA정보가 공개 되지 않고 있습니다.

미즈메디의 해당 논문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진 철회됩니다. 제대로 된 논문이라면 황교수 사건과 관계없이 철회될 이유가 하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미즈메디의 2000년도 등록된 줄기세포도 결국 2000년 8월 황교수팀이 성립한  배반포를 가지고 수립한 체세포 줄기세포를 가지고 등록했던 것이 아니었나 의심을 갖게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당연히 따라야 할 지문 검사 결과가 없었고 NIH 등록시 수정란 줄기세포란 용어를 쓰지 않았던 점을 미루어 볼 때 이때 벌써 황교수의 체세포를 빼 돌리기 시작 했던 것으로 드러납니다. 

2003년 12월 30일 노성일 특허 출원

자가 체세포 핵이식란으로부터 유래한 배아 줄기세포주 및 이로부터 분화된 신경세포 특허    [출원자:노성일, 한국생명공학연구소]

은폐전 특허 신청 자료     © 플러스코리아


       
          은폐 후 특허 신청 자료 © 플러스코리아

드디어 노성일이 황교수의 배반포를 훔쳐 줄기세포를 만들었음을 자백하는 장면입니다. 훗날(2005년 12월) ‘줄기세포는 이 세상에 없다’라고 외치면서 울고불고 하던 사람인데 어떻게 이때는 줄기세포, 그것도 체세포 핵이식란으로부터 유래한 배아줄기세포가 있었을까요?

놀라운 것은 노성일은 이 특허를 포기합니다. PCT에 출원해 놓은 것을 영문으로 번역하여  각 국가별로 해당 국가에 일일이 따로 제출하여야 하는데 이를 제출마감 날짜까지 제출하지 않았음이 밝혀진 것입니다 

이후 이 게시물은 삭제됩니다. 

이것은 범죄 행위가 분명한데도 당사자인 황교수는 물론이고 국민 중 어느 누구도 이의나 시비 거는 사람이 없으니 신기한 일입니다.

※ 문신용과 노성일의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특허내용

문신용☞ 양수세포를 이용한 인간배아줄기세포의 배양(2004.2.14일 특허출원대상국 및 번호 - 한국 10-2004-00098/12)

노성일☞ 자가 체세포 핵이식란으로부터 유래한 배아 줄기세포주 및 이로부터 분화된 신경세포(2003. 12.30일 특허출원대상국 및 번호 - 세계 PCT/KRO3/02899)

2003년 12월 30일 황교수 '배아복제 PCT특허출원' (황우석팀, 2001년 이후 WIPO에 3건 특허출원)

WIPO가 운영하는 국제 특허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황교수팀은 2001년 12월 복제돼지, 2003년 8월에 복제소, 2004년 12월 ‘배아줄기세포의 셀라인과 이를 준비하기 위한 기법’을 각각 출원했다

2006년 1월 26일 한국일보 기사를 살펴 보겠습니다.
황우석 박사팀이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가 운영하는 PCT시스템을 통해 3건의 특허를 출원한 것으로 5일 확인됐다.

WIPO가 운영하는 국제 특허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황교수팀은 2001년 12월 복제돼지, 2003년 8월에 복제소, 2004년 12월 ‘배아줄기세포의 셀라인과 이를 준비하기 위한 기법’을 각각 출원했다.

2001년에 출원한 특허는 황교수를 비롯해 이병천, 강성근교수 등이 공동 발명 출원자로 기재돼 있고 2003년에 출원한 것은 이들 3명 외에 박을순 연구원 등이 공동 발명 출원자로 추가돼 있다.

2004년 12월에 출원한 것은 서울대 산학협력재단이 미국을 제외한 모든 지정국가의 출원자로 가장 먼저 등재돼 있다.

또 노성일 미즈메디 병원 이사장이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발명·출원자로 따로 기재돼 있어 그의 지분이 많음을 암시한다. 황교수는 미국만을 대상으로 한 국제특허를 출원했고 이병천 강성근 교수와 문신용 교수, 유영준, 박을순, 박종혁, 김선종 연구원 등이 공동 발명·출원자로 돼 있다.

PCT는 각국의 기업 및 발명가들의 해외특허출원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1978년 18개국으로 출범했으며 한국을 포함해 24개국이 가입했다

미국 ACT사 이미 “성공” 주장

황 교수의 발표에 대해 미국 생명공학회사인 어드밴스트 셀 테크놀로지(ACT) 측은 “호세 시벨리 박사가 1999년 6월 인간 체세포를 소 난자에 이식해 배반포 단계까지 배양을 한 뒤 줄기세포주를 확립해 이미 특허 출원을 했다”고 반박하고 나서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양쪽 연구팀 모두 논문은 없이 ‘특허 출원’만을 가지고 공방을 벌인 것입니다.

▲     © 플러스코리아
2004년 1월 29일 황교수팀 연구원 2명(박종혁, 박을순 )이 새튼의 요구대로 피츠버그대로 파견됩니다. 
 
이에 대해서 황교수는  "미국 피츠버그대 매기여성병원 생식발생연구팀의 제럴드 새튼 박사 요청으로 연구원 2명을 현지에 파견했다.“ 면서  ”2년이상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공동연구를 수행할 예정이다.“라고 발표합니다.

이 때 유의해서 보셔야 할 것은 이 때 발표된 언론 모두 “황교수팀 연구원 2명”이라고 보도 합니다. 박종혁은 서울대 연구원 팀이 아닌 미즈메디 병원 소속이었음에도 ‘황교수팀 연구원’으로서  미국으로 부터 초청을 받았다고 합니다 .  당시만 해도 황교수가 이 연구를 주도했으니 내부적으로 어떤  연구 분담이 있었건 구별 없이 ‘황교수팀’으로 명명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관행’은 결국 황교수를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빠지게 했던 원인중의 하나가 되었음이 훗날 밝혀집니다.

황교수가 이날 연구원 2명을 새튼에게 보냈던 것은 새튼의 속 깊은 ‘꼼수’에 의한 것이었는데, 황교수는 별다른 의심 없이 자신의 운명을 갈라놓게 될 그 첫 번째 패착수를 던집니다.

새튼의 꼼수였다는 사실은 훗날 사건이 불거진 후에도 특허 논쟁의 근원이 될 ‘젓가락  신공녀’ 박을순을 한국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끝까지 부둥켜안고 있음이 그 증거입니다. 

미국의 특허법은 우리와 달리 ‘선등록주의’가 아니라 ‘선발명주의’입니다.  

 새튼이 처음 제출한 발명 특허 출원은 2003년 3월 9일입니다.황교수는  그보다 늦은  2003 년 12 월  30일입니다.

▲왼쪽이 황우석 박사 특허출원서     © 플러스코리아

새튼이 황교수의 특허 출원보다 9개월이나 빠르면서도 황교수를 두려워한 까닭은, ☞미국의 선 발명주의 때문입니다

이 와중에 웃기는 이야기중의 하나는 소위 특허 문제 전담한다는 ‘서울대 산학협력 재단’의  담당자 왈, ‘새튼의 특허는  인간 영장류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황교수의 특허와 내용이 틀리며 따라서 황교수의 특허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호언장담이었습니다. 

미국의 특허제도는 설사 처음 제출된 특허출원 내용에 ‘인간 복제’가 포함되지 않아도 추후 얼마던지 추가, 수정,보완을 할 수 있고 이에 대한 효력도 처음 제출된 특허 신청 등록일  PRIORITY DATE 가 적용되므로 서울 산학재단의 발표는 글자 그대로 ‘무식의 소치’이거나  아니면‘ 특허 상납의 각본’에 의한 것이었다 라고 밖에 인정되지 않습니다. (산학 재단에는 특허 전문 변리사 및 변호사가 있습니다.) 

 이후 특허 문제에 관하여 이익 당사자 간 충돌이 있을 경우 ☞특허 내용을 증명할 수 있는 실물이 있는 경우에는 그 실물을 제출하는 자 ☞실물이 없는 경우에는 ‘재연’으로 그 특허 내용을 증명할 수 있는 자에 손이 올라갑니다. 

그런데  황교수의 경우에는, 2004년도 최초 인간 배아 줄기 세포가  서울대 조사위에 의해  ‘처녀 생식’으로 둔갑하였고 조사담당 기관이었던 검찰마저 처녀생식으로 밀어붙임으로써  결국 특허 내용을 증명할 근거가 소멸되었으며, 보건 복지부의  황교수에 대한 ‘체세포 복제에 의한 배아 복제 연구 승인’ 취소로  법률상 ‘재연’불가가 됨에 따라 황교수의 특허 신청은 원천적으로 ‘불능’으로 귀착 됩니다.

이에 반하여 새튼의 경우에는,  젓가락 신공녀  박을순이 미국 시민권을 얻는 2008년 3월 초에는 정정 당당히 - 물론 현재의 영주권 취득 상태에서도 피츠버그 대학의  FACULTY 자격이니  하등의 법적 하자가 없지만 -  미국 시민권자로서 새튼과 협력하여 ‘인간 체세포 줄기세포’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됩니다. 

카톨릭 신봉자 부시의 재임 기간은 이제 불과 2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미국내 모든 주변 상황은 새튼의 입맛대로 현재도 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엄청 큰 변화가 있을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정부와 언론의 내 팽개침을 당한 황교수가 자신의 원천기술을 지키기 위해 몇 안 되는 자신의 지지자들의 힘을 빌어 언제까지 새튼과의 힘겨운 싸움을 진행 해 나갈지 끝을 보지 않아도 결과는 뻔 한 일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진실은 승리한다 라는 불변의 원칙이 있기에 인간이 사는 것입니다.

어쨋든  황교수는 순수한 마음으로 새튼의 요구에 선뜻 응하고, 'BROTHER'의 칭호에 걸맞게 배반포 기술자인 제주도 출신 순둥이 박을순과  배양 기술자 박종혁을 새튼의 밥상위에  올려놓습니다. 
독자 07/01/03 [11:57] 수정 삭제  
  그런데 부시가 가톨릭이 아니라 기독교(개신교)아닌가요?
신영수 07/01/04 [03:01] 수정 삭제  
  심도 있는 기사 감사드립니다.
국익수호 07/01/05 [00:40] 수정 삭제  
  언제나 진실규명을 위해서 앞장서시는 리복재 기자님 존경합니다. 누가 어떤 음해를 하든 꺾이지 마시고 특허수호를 위해서 끝까지 힘내시기 바랍니다. 많은 국민들은 리기자님의 진정성을 다 알고 있습니다. 정해년 새해는 좋은 일만 가득하길 빕니다.
배영채 07/01/05 [04:48] 수정 삭제  
  진실추구를 위해 힘쓰시는 님의 열정에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지속적인 기사 부탁드립니다.
베어 07/01/21 [00:49] 수정 삭제  
  모진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초지일관 불굴의 투혼으로 줄기사태의 진실규명을 위한 님의 열정과 애국심에 깊은 감사드립니다. 양심과 정의가 생동하는 기사는 줄기사태의 진실이 밝혀지고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하는데 초석이 될 것입니다. 귀한 기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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