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옛날옛적에(24) -남한(옛 대한민국)의 변화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20/11/18 [11:59]

옛날옛적에(24) -남한(옛 대한민국)의 변화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20/11/18 [11:59]

 

▲ 1945년 서울의 모습  © 플러스코리아



김일성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인하여 민족통일의 좋은 기회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한국의 정권담당자였던 소위 문민정부의 일각에서는 아직도 냉전식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자본주의식으로 북한을 흡수통일하려는 망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어떻게 보면 대체로 그 당시까지도 미국이나 일본의 대자본에 예속되어 있다시피 하던 한국재벌들의 대변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으며, 민족통일보다도 어떻게 하면 재벌들이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는가에 대해서만 연구하는 사람들같기도 했다.

 

따라서 김일성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통일논의는 여전히 정권안보와 재벌이익 추구차원에서 맴도는 답보상태를 면치못하고 있었다. 이에 분노한 한국의 민중사이에서는 그들 민중 스스로의 힘으로 민족통일을 이루려는 열정이 분출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서 민족공동체의식이 대폭적으로 고취되어 그때까지 헌신적으로 민중복지사회를 이루기 위하여 노력해 왔던 민중운동가들과 실천적 민족주의자들이사소한 편견들을 극복하고 민족통일의 대의라는 기치하에 하나로 모여 갔다. 그들은 우선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남한사회부터 참된 민족사회로 재건하는 과업에 헌신적이고도 협조적으로 참여하기로 하였으며, 그에 따라서 나중에는 그들 민족주체적 사회운동가(주체운동가)들의 정치조직인 배달형제당이 결성되어 급속히 전국적인 조직으로 확산되어 갔다.

 

그리고 그 후 전국의 수백만 배달형제당원들이 계속하여 자신의 모든 힘을 기울여서 헌신적으로 철저하게 노력한 끝에, 마침내 민족공동체 확립을 공약으로 내세운 배달형제당이 남한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서 국회에 대거 진출함으로써 한민족에게는 새로운 도약의 장이 열렸으며, 대통령선거에서도 결국 배달형제당이 내세운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리하여 강폭하고도 야비하기 이를 데 없었던 야만적인 외세에 의하여 식민지나 다름없는 비참한 암흑 속으로 전락해 갔던 남한은, 대한국이 일제에 의하여 강제합방당한 지 약 백여년만에 진정한 해방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으니..

 

민족공동체 확립은 통일민족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필수 요소였지.

그리고 그것은 통일된 역사인식의 광범위한 공유에 의해서만 성립될 수 있는 것이기도 했어.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잘 알고 또 모두 수긍하고 있는 거족적인 역사인식의 공유라는 게 그 당시에 얼마나 어려웠던지!

역사인식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당시에는 남·북한이 현저하게 달랐을 뿐 아니라, 남한사회나 남한 역사학계의 역사인식에 대한 갈등은 눈뜨고 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단다.

북한은 차라리 어떤 형식이건 간에 일당 독재적 사회답게 그 나름대로 하나의 중심적 역사관이라도 있었지만, 남한의 사정은 완전히 잡탕이 되어 버린 역사 갈등의 소용돌이 바로 그런 거였어.

 

역사라,

참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말이로구나!

 

우리 민족의 크나큰 자랑이고, 또 이제는 전 세계인들이 추앙하고 부러워하고 있는 위대한 한민족의 역사 - 하지만 그 때는 이렇게 알기 쉽게 잘 정리된 민족공동체 역사라는 건 있지도 않았어. 다만, 서양중심으로 제멋대로 만들어 버린 이상한 역사발전법칙이니, ‘유물사관이니 이론들이 무성했고, 과학만능이라고나 해야 할까 싶은 사이비 진보주의같은 것들도 판쳤다고 해. 그 결과는 참담한 자연환경파괴와 그 후유증으로 인한 괴질들과 정신질환의 창궐이었지.

 

우리 민족사회가 민족분단 이래로 크게는 북쪽의 유물사관(나중에는 주체사관으로 탈바꿈)과 남쪽의 서구사관(그런게 실체가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럽지만)으로 크게 갈라졌던 건 너도 선생님들한테 이미 배워서 잘 알겠지? 그런데 북쪽은 그렇다치고, 남쪽에서는 국권회복을 위해 노력하던 광복운동가들이 밝혀냈던 민족사관을 발전시킨 연구자들이 많이 있었어. 사실 그 민족사관은 당시 민족을 갈라놓았던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두 조류를 통합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이었지.

 

그런데 문제는 그 민족사관을 추구해 온 연구자들조차 다양하게 분파가 형성되었던 거야.

 

물론 철저하게 가능한 한 역사적 진실에 바탕을 두고 냉철하게 민족사와 세계사의 관계를 분석하고 정리한 연구자들도 많이 있었지.

그런데 한 편으로는 숨겨졌던 우리 민족사 연구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다소 과다할 정도로 민족사의 범위를 넓혀가다가 증명하기 어려운 주장을 하는 연구자들도 적지 않게 나타났단 말이지.

역사에 대한 건 사실 말 꺼내기가 쉽지도 않았던 시절이었겠지만, 그래도 이 문제는 짚고 넘어가야만 할 일이었겠고, 나의 할아버지께서도 여기에 대해서는 내게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셨어.

이제 잠시 그 역사적 혼돈의 시대를 회상해 보는 게 좋겠구나.

배달민족 역사와 문화 창달에 관심이 있는 평범한 시골의사 입니다.
서울중고-연대 의대 졸
단기 4315년(서1982)부터 세계 역사,문화 관심
단기 4324년(서1991) 십년 자료수집 바탕으로 영광과 통한의 세계사 저술
이후 우리찾기모임, 배달문화연구원 등에서 동료들과 정기 강좌 및 추가연구 지속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유물사관의 망령 관련기사목록
광고
포토뉴스
메인사진
은빛 물든 홍성 오서산, 가을정취 폴폴(fall fall)
1/12
연재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