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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옛적에(35) -박달주의 구상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21/06/22 [19:42]

옛날옛적에(35) -박달주의 구상

안재세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21/06/22 [19:42]

사해동포주의의 초석인 박달주의(倍達主義)의 필요성

▲ 시베리아 바이칼호(배달호 음역) 대평원에 세웠던 6천년 전 배달국의 입헌 소도(立憲 蘇塗). 현 남북과 동북아는 소도였다.  © 플러스코리아



  인류사회는 너무도 무책임하게 갖가지 주의를 만들어 왔기때문에, 또 하나의 주의를 첨가한다는 것은 어쩌면 무익한 일로 보일 수도 있다. 특히 봉건주의절대주의자유방임주의각종의 국가이기주의자본주의제국주의공산주의 등 많은 주의들이 폭력과 분쟁을 야기시켰던 사실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민족의 민족적 각성과 평화적 세계일가 달성을 위한 기본 토대로서의 박달주의의 필요성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것은 혼란에 빠진 도량형을 통일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올바른 기준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침략적 야욕을 가진 다민족사회인 유럽지방의 부국강병과 영토 및 식민지 확장을 꾀하는 파괴적 논리로 내셔날리즘이라는 어설픈 용어를 써먹어 온 이후, 이 내셔날리즘이라는 용어는 민족주의국가주의 등으로 번역되면서 거기에 서구(西寇) 및 왜구(倭寇)식의 침략을 포함한 바람직하지 못한 침략적 용어로 느껴지기에 이르렀다.

 

   사실에 있어서는 민족주의 자체가 그러한 야만적이고 침략적인 민족주의도 있고, 그에 대항하는 평화적이고 방어적인 민족주의도 있는 데도 불구하고, 내셔날리즘이라는 용어는 이미 부정적인 의미에 오염될 대로 오염되어 온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세계평화와 그 세계평화에의 첫 단계로서의 한민족의 발전을 위해서는 완전히 새로운, 평화적 민족주의이면서 배타적이 아니고 세계평화에 기여하여 대동적인 세계일가 건설을 목적으로 하는 구본신참의 새로운 이념을 창출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새로운 이념이 있어야만 미증유의 말세에 처한 인류가 흉악한 살상무기들이 아닌, 평화와 인류애를 가득 싣고서 지상천국과 같은 아름다운 인류사회를 건설할 수 거라는 기대라도 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박달주의 - 용어선택의 문제

 

1. 박달주의로의 개안(開眼)

  박달주의는 세계평화를 지향하는 한민족이 우선 스스로의 기본역량을 충실히 육성하기 위하여 견지해야 할 하나의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한민족을 정의하는 용어로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배달민족·배달의 자손·단군의 자손·한민족 등이다. 그 중에서 한민족이라는 용어는 최근 수십년간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어왔으며, 한민족의 개국시조가 단군 왕검이라는 보편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단군민족이라는 용어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고, 한민족이라는 용어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어 온 것이 바로 배달민족이라는 용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하나의 민족에 대한 명칭이 여러가지로 분화되는 현상은 역사가 오랜 민족들에게는 흔히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한민족에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거의 아무런 이의가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한민족·단군의 자손 등의 용어들과 함께 배달이라는 용어도 그 어원이 확실하게 인식되지 않은 채로 매우 보편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유능한 연구가들에 의하면 배달은 박달의 음역(音譯)이며, 박달은 박달나무 단()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즉 단군과 배달은 같은 용어의 변모한 모습이라는 학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또 하나의 의견은 전해 내려오는 옛 기록에 의한 것으로서, 단군조선 이전에 배달나라가 있었으며 그 배달나라를 건설한 임금의 호()가 배달(倍達)이었으므로 그 호에서 우리 민족의 명칭이 유래한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여하튼 배달이라는 용어는 그 확실한 유래 여부와는 무관하게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용어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럼 이처럼 사용가능한 여러 가지 용어 중에서 왜 하필 배달(박달)이라는 용어를 선택하려고 하는가 - 하는 점을 설명해 보고자 한다.

                   *                                 *                               *

   어떤 국가나 민족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구심점이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증명되어 온 바 있다. 그리고 그 반대로 구심점이 없이 국론이 분열되어 있던 나라들이 잦은 내우외환에 시달리다가 쉽사리 멸망해 간 사실들도 인류역사는 넘쳐날만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인류역사의 가장 기본적인 법칙이기도 하므로 한민족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현재 민족존망이라는 대전환의 기로에 선 한민족은 어떤 구심점을 갖추어야 할 것인가를 심사숙고해야만 한다.

 

   그러나 아무리 민족역량을 집결하기 위한 구심점이 당장부터라도 필요하다고는 해도 한민족의 체질에 알맞는 것이 아니면 큰 부작용이 생길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만 한다.

 

   마치 심한 병에 걸려 체력이 형편없이 약화되었다고 해서 체질에 맞지도 않는 음식물이나 약을 마구 퍼 넣으면 그에 의한 심각한 신체적 거부반응이나 소화관장애가 겹쳐서 더욱 악화되는 것처럼, 오히려 커다란 부작용을 야기시킬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민족을 위한 구심점은 반드시 한민족의 역사적 체질 속에서 그 유용성이 입증된 바 있는 것으로 중심을 삼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처방이 궁극적으로는 한민족뿐만 아니라 인류전체를 위해서도 좋은 치료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면 가장 바람직한 일이 될 것이다.

 

   인류 전체를 위해서도 좋은 처방이란 즉 모든 인류의 체질에 맞는 처방이라는 뜻이 되며, 그것은 또한 인류사회에 널리 퍼진 여러 우수한 정신적 가치들의 장점들을 고루 갖춘 처방이라는 뜻이 될 것이다. 인간은 정신적 가치에 좌우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즉 올바른 정신세계를 이룰 수 있으면 인류사회는 그대로 지상낙원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들이 빠진 채 오직 물질적 풍요만을 추구해 마지않는 전 인류의 올바른 혼을 되찾을 수 있는 그러한 반혼단(返魂丹)이 과연 한민족에게 존재하고 있는가?

 

   한민족의 가치를 평가절하시키기에 여념이 없던 지난날의 사대사관 소유자들과 식민사관 추종자들은 한민족의 문화(사상포함)의 대부분이 지나문명으로부터 일방적인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단정하기를 서슴치 않는다. 심지어는 동아시아의 해양세력이었다는 왜열도로부터도 큰 영향을 받았다는 망발도 가끔 튀어나온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들은 한민족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너무나 편벽왜곡된 데서 비롯되는 오류들에 불과하다.

 

   배달문화 연구에 전 생애를 바친 여러 선구자들에 의하면 진실은 그와 정반대로서, 배달문화가 동아시아문화의 주역일 뿐 아니라 전세계 대부분의 문화의 선구적인 역할을 해 왔음을 알 수 있다. , 도를 비롯하여 유태교 및 거기서 파생된 기독교, 이슬람교, 거기에다가 일본열도의 신도(神道) 등에 이르기까지 그 뿌리는 다름 아닌 배달문화라는 것이다. , 배달문화는 적어도 현생인류문화의 모태이자 요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배달민족 역사와 문화 창달에 관심이 있는 평범한 시골의사 입니다.
서울중고-연대 의대 졸
단기 4315년(서1982)부터 세계 역사,문화 관심
단기 4324년(서1991) 십년 자료수집 바탕으로 영광과 통한의 세계사 저술
이후 우리찾기모임, 배달문화연구원 등에서 동료들과 정기 강좌 및 추가연구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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