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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서거 5주기,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탐방기

정찬희 기자 | 기사입력 2014/08/14 [13:51]

김대중 서거 5주기,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탐방기

정찬희 기자 | 입력 : 2014/08/14 [13:51]
[플러스코리아타임즈-서울의소리 정찬희기자]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정희의 유신독재에 살해의 위협까지 당했고, 불굴의 의지로 1998년 대한민국 15대 대통령이 되었다. 2009년 8월18일 서거했다.
 
▲ 김대중 전 대통령     © 정찬희 기자
 
그는 김영삼 정부시절 닥쳐온 IMF 경제지배를 2년만에 졸업하고 615선언으로 남북통일의 주춧돌을 마련하였던 인물로 평가되고 있으며, 특히 화해와 용서를 내세우며 자신의 정적들을 숙청하는 피바람을 일으키지 않았으며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평은 여전히 분분하지만 그의 용서는 지금도 이해하기 힘들정도로 큰 인간됨됨이와 큰 그릇을 상징하는 용어로 쓰인다.
 
김대중 대통령 서거 5주기를 기념하여 12일 목포에 위치한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을 방문했다.
 
▲ 김대중 노벨평화상 박물관     © 정찬희 기자

입장료 4천원(성인기준)을 지불하고 들어간 박물관은 김대중의 정치역사와 평화통일을 꿈꾸었던 그의 업적을 담은 전시들로 꾸며져 있었다.
 
▲ 박정희에 맞섰던 그.. 부정선거를 당했다     © 정찬희 기자
 
그는 박정희 정권시절, 부정선거로 투표에서 이기고 개표에서 졌다는 평을 받았다.
지금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 또한 18대 대선부정사건으로 도마에 올라가 있음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역사는 반복되는가 하는 한탄을 부른다.
 
▲ 박정희 정권에 정면으로 맞선 김대중     © 정찬희 기자
 
그는 서슬퍼런 박정희 정부시절 맞서다 1973년 그의 이력중 가장 유명한 납치사건을 당하고 바다한가운데서 토막살해당하고 수장될 위기를 맞기도 하였다. 도쿄의 한 호텔에서 납치되어 한일 외교문제로 까지 비화되기도 하였다.
 
▲ 김대중 납치살해 미수사건을 제구성한 화면     © 정찬희 기자
 
▲ 구사일생.. 박정희 정권에 죽임을 당할 뻔한 김대중 전 대통령     © 정찬희 기자
 
그러나 살해당하기 직전 국내외의 압력으로 죽음을 면하고 5일만에 자택으로 귀환, 이후 가택 구금을 당했다. 당시 언론은 놀랍게도 박정희의 서슬에도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여 국내와 전세계에 박정희 정부의 잔혹한 야당탄압을 알렸다.
 
기념관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업적과 개인적 유품들 뿐 아니라 이용객들이 대통령 집무실을 직접 체험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 이용객 대상 대통령 집무실 체험코너     © 정찬희 기자
 
이용객은 김대중 대통령의 어록 중 마음에 드는 부분을 골라 대통령집무실에 앉아있는 내모습과 합성하여 사진을 찍는 이 코너가 참 신기하고 재미있다 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 평화와 통일을 염원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기념하는 붓글씨        © 정찬희 기자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은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관람이 가능하며 매주 월요일은 쉰다. 
 
▲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관람안내                      © 정찬희 기자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5주기...
그가 생전 그토록 염원하였던 평화와 통일의 날이 곧 다가오기를 바라며, 그를 추모했다.
 
   

원본 기사 보기:서울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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