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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일사 신시본기》에 “태호복희는 배달국 5대 태우의(太虞儀) 환웅의 12번째 막내아들로 신시에서 태어나 뒤에 청구(靑邱)와 낙랑(樂浪)을 거쳐 마침내 진(陳)에 옮겼다. (생략) 지금 산서성의 제수(濟水)에 희족(犧族)의 옛 거처가 있다. 임(任) 숙(宿) 구(句) 수유(須臾)의 나라는 모두 여기에 모여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위에서 언급한 복희족의 거처가 있다는 제수(濟水)는 어느 강이고, 또 제수에 모여 있었다는 수유(須臾)는 무엇이며 혹 지명이라면 과연 어디였을까?
먼저 고대에 하수(河水)와 강수(江水), 회수(淮水)에 이어 4번째로 길었던 강이라고 하는 제수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중국의 ‘바이두 백과’에 따르면, ”제수(濟水) 또는 연수(沇水)는 현 제하(濟河)의 고칭이며, 하남성 제원(濟源)시 서쪽 왕옥산(王屋山)에서 발원해 동류하다가 제원시 북서쪽에서 발원한 두 개의 물줄기와 동쪽에서 추가로 합류 후 온현을 거쳐 황하로 들어갔다가 이후 하남성과 산동성을 거쳐 발해로 흘러가는 강이다.
제수는 세 번을 지하로 흐르다가 세 번 나온다고 알려져 있는데, 왕옥산에서 발원한 제수는 70리 이상 지하로 흐르다가 나타났다가 황하를 건너 형택(滎澤)을 형성했다가 산동성 하택(荷澤)에서 다시 나타난다고 하며, 하남성의 제원(濟源), 산동성의 제남(濟南)과 제령(濟寧)이라는 지명 모두 제수에서 유래되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제수는 <수경주> 권7~8 두 권에 걸쳐 그 물길이 상세하게 설명되어있는데 7권의 제수는 발원해서 하남성 온현에서 하수로 들어가는 물길이고, 8권의 제수는 하수에서 나와서 다시 동쪽 산동성으로 흐른다고 했다. 그러나 황하•호수에 3번 합쳐졌다가 3번이나 나온 하남성 제수와 산동성 제수를 하나의 물줄기로 보기는 곤란하지 않은가!
수경(水經) 권7에서는 “제수는 하동군 원현의 동쪽 왕옥산에서 나오는데 연수라고 한다. 또 동쪽으로 온현 서북쪽까지 흐르는데 제수라고 한다.(濟水出河東垣縣東王屋山,爲沇水;又東至溫縣西北,爲濟水。)”이라고 간단히 설명하고 있다.
즉 발원해서는 연수라는 이름으로 흐르다 제원(濟源)현에서 제수•격수와 합쳐져 제수라는 이름으로 흐르다 온(溫)현을 지나 황하로 들어간다는 설명이다. <대청광여도>에 하남성 제원시 밑에 沇水가 그려져 있으며, 현대 지도에서도 격하(湨河)/추하(溴河)라는 이름이 사용되고 있으며, 심수 중류에서 발원한 제하(濟河)와 합쳐져 망하(莽河)라는 이름으로 흐르고 있다.
제7권 제수의 앞부분에 나오는 왕옥산에서 발원한 聯水=沇水의 물길이 권14에서 우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지명인 패수의 설명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수경주》는 왜 이렇게 하나의 물길을 두 물길로 서로 다른 강처럼 보이도록 편집되었을까?
원래 저술된 <수경주>의 40권 가운데 소실된 5권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명•청 때 《수경주》를 재편집하면서 동이족의 역사와 직접 관련 있는 패수(浿水) 등 7개 강은 위치의 순서에 상관없이 모두 권14에 모아둔 채로, 황하변에 있어야 할 유주의 역사지명을 북경 부근으로 이동시켰으니 이 물길들이 하수의 지류가 아닌 것으로 인식되도록 편집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고대의 패수(浿水)는 하남성 제수(濟水)에 속하는 강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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