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시대정신이 박약한 글기술자들을 향한 글

홍익인간, 애국이 바탕으로 그 정신이 없는 글쟁이는 글기술자에 불과하다.

경정 칼럼 | 기사입력 2015/04/02 [07:00]

시대정신이 박약한 글기술자들을 향한 글

홍익인간, 애국이 바탕으로 그 정신이 없는 글쟁이는 글기술자에 불과하다.

경정 칼럼 | 입력 : 2015/04/02 [07:00]
[플러스코리아 타임즈-경정] 나라가 엉망인 것과 글을 쓴다는 것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시국을 어렵게 보고, 시국이 나아지면 글을 쓰겠다는 것은 희망의 빛이 보일 때 글을 쓴다는 것이고, 지금 글을 쓴다는 것은 희망을 보고 글을 쓴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시국을 좋게 보고 좋지 않게 보고, 물론 그것은 현저하게 개인적인 입장에서 주관적인 판단에 기인한다.

그러나 사드(THAAD)배치 문제로 드러난 한 강대국의 식민지로 전락한 나라, 그 나라 하나의 군사작전지역에 불과한 나라, 그리고 한미일 군사정보공유약정으로, 일제강점기의 역사와 더불어 반성과 통찰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나눠야할 이웃 일본은, 군국대국,군사대국화의 꿈을 접지 않고, 전쟁대국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그 약정으로 인해, 한국의 군사정보를 손금 보듯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된 지금에 있어서...

그리고 세월호사건으로 드러났듯이 국가는 국민에게 의무와 책임만을 강요하고, 자국민보호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국가가 되고, 진실을 밝혀달라는 그 유족들이 종북세력이 되고, 사회적 혐오세력으로 낙인 찍힌 지금...

통치권자의 자의적 실책에 의해 물가 0퍼센트대를 기록하는 데에도 치솟는 각종 공공요금, 그리고 기득권자들을 위한 주택정책, 그리고 국민들 대다수의 요구를 무시한 각종 정책들...

위의 한 통치권자의 실책때문에 복지에 있어서 증세는 없는 복지가 가능하다고 대통령이 된 자는 과거의 수없는 식언을 입버릇하듯이 하며 서민과 관련된 물가를 인상시키고, 각종 범칙금을 높이고, 또 수많은 서민에서 비롯되는 각종 간접세만 자꾸 올리며, 그러면서도 있는 자들의 요람인 기업들은 각종세제혜택을 통해 엄청난 재원을 없애고 있는 나라...

그리고 국민의 시종이 되어야할 국회의원들은 연금법등 수백가지 특혜를 받고도 국회에서 성인영상을 본다던가 낮잠을 자고 있는 나라...

기득권의 정책에 반하면 종북, 범법자, 비도덕론자로 낙인 찍히고, 또 그 기득권의 뿌리는 일제강점기의 반민족행위자들인 나라...

반민족행위자가 처벌되지 못하고 흘러온 지금, 그들의 자손이 부자,엘리트계층,고위 관료 등 상위 몇 퍼센트의 기득권이 되고, 가지지 못한 대다수의 국민들로 나눠지고, 그 빈부나 있고 없음 등이 대물림 되는 나라...

그래서 비리가 없는 곳이 없는, 부실이 없는 부문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의 나라...

수없이 열거가능할 것은 이런 나라에 산다는 것은 절망적이다.

시국이 어떻고 하는 것은 보는 관점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와 사회적인, 구조적인 등의 문제들을 들여다봄으로써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 그 해답이 나올 것이다.

일제시대에도 많은 글쟁이들이 당시 나라를 잃어버린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성향의 글을 남겼고, 또 그 글들은 물론 문학적인 가치가 쏠쏠한 글도 많을 것이다.

또 때로는 그런 권력을 가진 일제에 빌붙어서 그들을 찬양하고 그들의 정책에 협조하고, 그들의 통치에 조력한 글쟁이들도 엄청나게 많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종이에 남기는 자신의 생각의 기록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사상을 담고 자신의 생각을 담고 자신의 모든 것이 담기는 것이다.

왜 세계 제2차대전 종결 후 망명정부를 이끌다 귀국한 프랑스 드골은 나치에 협력한 반민족행위자를 절단내었다. 무려 5만명이상이 사형되고 50만여명이 징역형을 받았다.

그중 글과 관련깊은 시인, 언론인, 작가는 가중처벌했다.

왜 그랬을까?

펜은 총보다 강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강한 만큼의 의무도 따른다는 것이다.

단순히 자신의 감상을 적은 데에 글을 쓴다는 것이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기록을 통해 타인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되기때문에 글은 더욱 조심스러워지는 영역이 되는 것이다.

거짓말이 한 사람의 말로 전파될 때에는 거짓말쟁이의 언설에 그치고, 글쟁이의 글로 기록된다면 그 거짓은 거짓의 소문이 되고, 또 최고의 문필가의 글에서 탄생한 거짓말은 희대의 혹세무민이 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글이다.

시국이 나아지길 기다려 글을 쓰고, 희망적인 글을 쓰고...

그런 따위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글을 쓴다는 것은 한국에서는 선비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올곧은 글, 그리고 글의 필력을 떠나 바른 글, 제대로 된 글을 써야 한다.

경술의 국치때 매천 황현은 조선후기 당시 최고의 시인이자 문필가였다. 그런 그가 왜 자결을 택했을까?

▲ 펜과 노트. 글을 쓴다는 것은?     © 경정 칼럼니스트
 
글을 쓴다는 것은 시대정신을 가지지 않으면 안되다는 증좌이다.

그런 목숨값을 등에 지고 글을 쓰는 자가 글쟁이다.

함부로 꽃놀이하는 서정에 담긴 시 한 수 즉흥적으로 읊어내는 글기술자가 글쟁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개인적으로 문인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또한 어려운이를 못 본 체하고, 어렵고 힘든 이에게 버들수 한 닢 띄운 물 한 잔과 같은 글이 되지 못한다면 제아무리 필력이 뛰어난 글도 단순히 뛰어난 글기술자의 글 하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시인, 칼럼니스트, 공인중개사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포토뉴스
메인사진
미식 여행지 고흥, ‘녹동항 포차’에서 추억을 쌓아요
1/23
연재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