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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 [사랑도둑] 슬픈 아침 2

임서인 | 기사입력 2015/06/06 [21:12]

연재소설 - [사랑도둑] 슬픈 아침 2

임서인 | 입력 : 2015/06/06 [21:12]


남편 몰래 넣은 주식 가격이 올라가 제법 덩어리가 커진 것을 생각하니 그녀는 기분이 좋아졌다. 어제 밤에 천둥번개로 온 세상이 떠들썩해도 그것을 생각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영준을 수영장에 보내놓고 잠시 슬픔과 기쁨의 기분을 교환하고 있는데 향희가 그녀에게 오겠다는 문자를 했다. 그녀는 향희를 맞이할 기분이 아니었다. 다음에 지혜와 함께 차 한 잔 하자는 문자를 대신 날렸다.

준형은 도서관에 간다며 가방을 들고 나왔다. 이 더위에 웬 긴팔은 입었는지, 검은 양말은 벗어던져버릴 일이지 오늘도 어김없이 신었다. 검은 양말을 벗고 맨발로 슬리퍼를 신으라 하면 발을 함부로 보일 수 없다고 할 것이다. 그저 준형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두는 것이  상책이다.
 
선영은 아침 먹기 전 눈물을 펑펑 쏟았던 것을 잊고, 석고상처럼 아무런 표정이 없는 준형의 얼굴을 바라보며 함박 웃었다. 절대 굶지 말고 도서관 식당에서 가장 맛있는 것을 사먹으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남편 몰래 준형에게 용돈을 두둑이 줄 수 있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준형의 친절한 대답이 없어도 웃음이 난다.
 
그녀는 준형이 나간 현관을 마주서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향희와 지혜를 만나고 싶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향희에게 나중에 보자고 해놓고 뜬금없이 다시 그녀들이 보고 싶은 마음에 대책이 없다. 무슨 말이라도 주절대고 싶다. 그녀들 앞에서 한없이 떠들어 대면 자신이 처한 이 비참한 생활이 숨겨질 것 같았다.

텅비어버린 거실, 불안한 황홀이 번졌다. 다시는 남편이 이 집으로 돌아오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자 일시적인 편안함이 느껴졌다.

선영은 한 번도 남편에게 대들어본 적이 없다.
 
갓 시집온 새댁이 첫  추석을  시집에서 보냈다. 사근사근할 줄 알았더니  무슨 여자가 이리도 애교가 없냐는 시엄니의 말에 원래 성격이 그런다고  한마디 했다가, 시어머니에게 대꾸한다고 혼났다.
 
그녀가 시어머니에게 꾸지람을 듣고 있어도 말한마디 없던 그가 집에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다. 갑자기 당하는 바람에 그녀는 얼빠져 충격에 휩싸였다.
그녀는 창피해서 병원에 가지는 못했지만 아마 전치 3주가 나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폭력의 변은 며느리 중에서 가장 못난 년이 무슨 할 말이 있느냐였다. 이혼해주면 더 좋은 여자를 며느리로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선영은 충격에 정신이 혼미하면서도 절대 이혼해주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자신보다 더 좋은 여자에게 남편을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그를 사랑해서가 아니었다.  남편이행복을 누리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자신과 살면서 두고두고 불행하다라고 느끼며 살게 하고 싶었다. 그것이 자신을 능멸하고 치욕스럽게 한 남편에 대한 복수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남편과 팽팽한 긴장감을 가지고 사는 날들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향희를 보면서 알았다.

친정 부모가 늘상 싸우는 것을 보고 자란 그녀는 자신은 시집을 가면 절대 남편과 싸우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어머니의 걸걸한 목소리가 싫었다. 여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화가 나더라도 조신조신 말을 했으며, 아무리 급하더라도 뛰지 않았다. 남편과 언성을 높혀 싸우지 않았다. 아주 낮은 목소리로 자근자근 말하는 그녀의 태도가 남편의 화를 돋구었는지 비웃었다고 욕을 해대기가 일쑤였다.

그녀는 신호등을 건널 때에 파란 불이 세 조각 정도 남아도 다음 신호등을 기다렸다가 건넜다. 가장 불행하고, 가장 우울할 때는 가장 쾌활하게 웃었다. 깊은 상처를 받은 자들의 웃음이 그리스 신들의 웃음과 같다면 그녀만큼 올림푸스의 웃음을 가장 잘 짓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보다도 혼자 된 병든 친정아버지를 모시고 살 수 밖에 없어 참아낸 것이었다.  갓 시집을 간 동생에게 암에 걸려 삼 개 월밖에 살지 못하는 아버지를 맡길 수는 없었다.

아버지를 데려오겠다고 남편에게 말할 때 남편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그 집은 우리 것이 될 거라는 말에 그가 당장 처가로 거취를 옮겼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아버지가 그녀에게 물려준 집이다. 그는 먼저 살던 집을 팔아, 판교에 더 넓은 집을 사 전세를 놓았다.

아버지는 점점 야위어갔다.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점점 또렷이 알아가고 있는 듯 했다. 
 

몸을 하루에도 그 어떤 빛으로 말리는지 앙상하게 말라갔다. 험악하게 굳었던 얼굴이 어린아이 마냥 부드러워졌다. 그 어떤 섬광이 비쳤는지 간혹 미소를 짓곤 했다.

“준형 에미야, 나는 돈 냄새만 맡고 살았다. 왜 그리도 사람냄새보다 돈 냄새가 좋았는지 모른단다. 에미가 에비한테 못된 짓을 당하는 것을 보고 내가 잘못 살았다는 것을 알았단다…….”

아버지가 숨을 몰아쉬며 잠시 말을 놓았다. 눈가에 촉촉히 젖었다.  그녀는 옆에 놓아둔 가제수건으로 눈물을 닦아주으며 속울음을 했다.

“에미야, 고맙구나. 꽃냄새를 맡게 해주고, 별을 볼 수 있게 해주다니…….”

또 아버지가 말을 다하지 못한다.

“아버지, 더 편안하게 모시지 못해 죄송합니다. 행복한 가정을 보여드리지도 못한 딸을 용서해 주세요.”

그녀는 아버지의 머리맡의 장미 한송이를 담은 화병으로  눈길을 보냈다. 왜 아버지에게 매일 꽃을 한송이만 화병에 꽂아 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어느 날, 아버지와 이별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자 문득 아버지에게 매일 꽃을 드리고 싶었다. 만약 자신이 죽음 앞에 있다면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매일 100일 동안 꽃을 받아보고 싶은 소망의 표출인지 모른다.
 
오늘은 80개의 장미가 짧게 아버지의 곁에 머물렀다.
 
 며칠 후에는 별을 보게 해드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당장 밤에 불을 끄면 별이 보이는 도배지를 사다가 천장에 별을 달았다. 하늘을 볼 수 없는 아버지에게 하늘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다행히 달도 그 옆에 떠 있었다.

“준형 에미야, 나는 늘 돈이 많다. 부지런한 사람이다. 되뇌면서 오만을 떨고 살았단다. 네가 꽃을 처음 꽃아 놓은 날도 나는 꽃을 보지 않았어. 다 죽어가는 아버지에게 꽃을 주는 에미가 정신 나갔다고 여겼단다. 한번 두 번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내가 그동안 살아온 날들이 눈앞에 활짝 펼쳐지더구나. 자랑스럽던 그 날들이 부끄러움으로 변하고 오만스러웠던 그날들이 수치스럽더구나. 네가 별을 보여준 날부터는 하늘을 생각하게 되더구나. 아비가 이 세상을 떠나거든 이 편지들을 사람들에게 전해주렴.”

아버지는 이불 밑에서 편지봉투를 꺼냈다. 한웅큼의 편지였다. 어떤 봉투는 얇았고 어떤 봉투는 꽤 두툼했다.

“에미야, 준형 에비가 계속 속을 썩이거든 이혼하거라. 너를 소중히 여기지 못하는 남자는 자신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아니다. 이 아비도 네 어미의 좋지 않는 것으로 좋은 것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단다. 에미야, 너는 내가 물려준 재산으로 꽃과 별을 외면하지 말고 살아야 하느니라.”

그 말을 하는 아버지의 눈동자가 선했다. 저 너머 세상으로 건너가기 전, 이 세상에 왔던 이치를 깨들은 것일까? 아버지의 입은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그녀가 90송이째 꽃을 아버지께 선물하던 날, 모처럼 일찍 귀가한 남편은 그녀와 아버지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남편의 노래가 거의 끝나갈 무렵, 아버지가 눈을 떴다. 자신이 죽기를 바라는 노래를 들은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렸다. 앙상한 손으로 그녀의 손을 더듬어 잡더니 힘을 주었다. 용서하라는 말일까? 참으라는 말일까?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를 향해 눈물 머금은 도끼눈으로 바라보았다. 그에게 대들었다가는 사족을 못 쓸 거라는 생각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분명 아버지의 참으라는 무언이지만 두 아들이 문 밖에서 그 소리를 듣고 있었기에 그녀는 이대로 넘길 수는 없었다. 그녀는 준형을 조용히 불렀다.

“준형아, 아버지가 할아버지 빨리 죽으라고 노래를 부른다. 엄마는 가슴이 찢어진다. 할아버지가 아버지와 너에게 어떻게 했니? 세상에서 너를 가장 사랑했다. 네가 할아버지 앞에서 아버지처럼 노래를 부르렴. 그러면 엄마는 너를 때릴 거야. 심하게 때릴 지도 모르겠구나. 아파도 참아줄 수 있니?”

“네. 엄마 알겠어요. 아버지가 나빠요.”

초등학교 6학년인 준형은 무리한 그녀의 요구에 아무 말이 없다.

그가 회사에서 돌아왔다. 그가 아버지가 누워있는 방으로 들어가자 그 옆에 있던 준형은 남편이 불렀던 노래를 똑같이 불렀다. 그 때 선영은 부엌에서 있다가 방으로 들어와 다짜고짜 준형의 뺨을 여러 차례 올려 부쳤다.

“네 놈이 사람이냐? 다 죽어가는 할아버지 앞에서 어떻게 노래를 부른단 말이냐? 이 짐승만도 못한 놈아. 할아버지가 너에게 어떻게 했어. 엄마보다 더 너를 사랑했고 아꼈다. 사시사철 보약을 해서 먹이고, 할아버지가 사 준 차를 타고 다니며 놀러 다니지 않았느냐? 이 배은망덕한 놈아. 아무리 어린놈이지만 은혜를 알아야지. 은혜도 모르는 네 놈은 죽어도 싸!”

그녀는 눈물을 쏙 뺄 정도로 아들을 때렸다. 준형이 비틀거리며 잘못했다고 울어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준형이 남편처럼 느껴져 그만 과도하게 때리고 말았다. 준형이 쓰러져 울어대자 정신이 퍼뜩 나, 손짓을 멈추었다. 그녀는 어린 아들을 부둥켜안고 서러움에 복받쳐 울었다.

아버지의 눈에서는 왕방울만한 눈물이 베개를 적셨다. 그 모습을 그가 멍하니 바라보더니 그 다음 날부터는 아버지에게 죽으라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얼마 후, 아버지는 눈을 간신히  감았고, 정신을 잃다가 깨다가 그녀는 며칠째 울었다.

장례가 끝나자마자, 그녀에게 아버지가 물려준 집을 그녀 앞으로 빨리 하라고 재촉을 했다. 그녀에게 아버지는 집과 수 천 만원의 현금을 남겨두었다. 마침, 아버지가 일러준 대로 주식을 했다가 수천의 차익을 남기기도 했다. 그 차익에 대해서는 그에게 함구했다.

남편의 하는 일도 잘 되었다. 대기업 재무부장으로 옮긴 그는 능력을 인정받았다. 수억의 연봉을 받고 차출되어 갔다.

한동안 선영은 아파트 앞의 고목나무 아래 멍하니 하늘을 보며 앉아 있기가 일쑤였다. 인간은 수목과 같은 것이라서 나무는 높게, 밝음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그 뿌리는 점점 강하게 땅 속의 아래쪽으로, 어두운 쪽으로 , 나쁜 쪽으로 향한다고 말해주던 지혜의 말에 자신의 뿌리는 얼마나 더 어둡게 땅속으로 뻗어갈지 막연한 두려움을 느꼈다. 

아버지가 떠나자 도도해진 남편은 그녀에게 주는 모욕의 수위가 더 강해졌다. 월급이 수십 배로 늘어났어도 그녀에게 가져다주는 돈은 동일했다. 

출근할 때, 거울 앞에서 안 보던 넥타이를 매느라 지각을 하기도 했다, 향수까지 뿌렸는지 방안에 향기가 가득차곤 했다. 어쩌다 남편의 지갑을 볼라치면 미모의 아가씨를 꼭 껴안고 찍은 사진이 나오곤 했다. 그녀에게 잠자리를 요구하지 않은 날이 점점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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