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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백두산은 조선의 백두산과 달라-(3), '몽골의 동남쪽에 있었다'

수만리 크기의 한반도 축소하여 동북아로 이동시킨 백두산·장백산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5/06/11 [06:35]

현 백두산은 조선의 백두산과 달라-(3), '몽골의 동남쪽에 있었다'

수만리 크기의 한반도 축소하여 동북아로 이동시킨 백두산·장백산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 입력 : 2015/06/11 [06:35]

[플러스코리아타임즈=김종문] 白頭山(백두산)은 배달겨레의 시조이신 桓雄天王(환웅천왕)께서 神市(신시)를 건설하신 太白山(태백산)으로 민족의 시원과 닿아 있는 聖山(성산)이다. 배달겨레의 역사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강역을 바르게 아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앞 글에서 선조들의 역사기록들에 白頭山(백두산)과長白山(장백산)이 다른 산임을 보았고 현재의 백두산(장백산)이 역사기록들과 불일치 함을 보았었다.

北海(북해)인근 MONGAL(몽골, 蒙古)의 남동쪽 수천리에 白頭山(백두산)은 알래스카의Mount McKinley(맥킨리산)이며 長白山(장백산)은 Mount Logan(로간 산)이다.

[참조기사: 현 백두산은 조선의 백두산과 달라, '몽골의 동남쪽에 있었다'

[참조기사: 현 백두산은 조선의 백두산과 달라-(2), '몽골의 동남쪽에 있었다' 
 
▲ A: 北美(북미) Alaska(알래스카)에 원래의 白頭山(백두산)인 Mckinly산(6168m)의 天池(천지), B: 東北亞(동북아)에 있는 현재의 白頭山(백두산, 2750m)의 天池(천지) 역사기록들에 白頭山(백두산) 天池(천지)는 여름에도 눈과 얼음이 쌓여서 銀海(은해, 은빛바다)라 불렸으나 현재의 천지는 얼음이 없는 아름다운 호수이다.역사기록들에 백두산은 너무나 높고 험해서 오른 사람이 극히 적었으나 현재의 백두산은 보통의 사람들도 오를 수 있는 산이다. 원래의 백두산인 알래스카의 Mckinly(6168m)산은 北美(북미) 최고봉으로 일반인들이 산행으로 오르는 것이 극히 어려운 산이다.      ©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長白山(장백산)은 白頭山(백두산)에서 나왔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지리전고(地理典故) 중 다음과 같은 기록이 들어 있다.
"이것이 곧 《산해경(山海經)》에 이른바 불함산(不咸山)이다. 이곳으로부터 동쪽으로 뻗쳐서 장백산이 되고, 한 줄기는 북쪽으로 달려 경성ㆍ부령(富寧)을 지나 두만강을 끼고 동쪽으로 뻗어 경흥에서 그친다."

약천집(藥泉集)제28권기(記)중 다음과 같은 기록이 들어 있다.
"우리 국가가 나라를 세우고 영토를 개척해서 나누어 팔로(八路)를 만들었는데, 이 관북(關北) 지방이 가장 멀고 궁벽하며 또 지세는 백두산이 남쪽으로 뻗어 오고 장백산(長白山)이 북쪽으로 꺾여 나가 오랑캐 땅과 국경이 맞닿은 것이 거의 2천 리나 됩니다."

역사기록들에 長白山(장백산)은 白頭山(백두산)에서 나왔으며 백두산의 남쪽에 위치하였다. 장백산이 북쪽으로 '꺾였다는 말은 서쪽으로 휘어진 산의 형세를 말한다. 장백산은 백두산의 남쪽으로 길게 마주보는 지형이었으며 장백산이 淸(청나라)와 국경이 맞닿은 거리가 거의 2천 리이다.

古地圖(고지도)들의 白頭山(백두산)표기는 서로 다르다

우리나라와 현재의 세계사에서 白頭山(백두산)은 현재의 북한과 중공의 국경선 묘향산 위치에 있다.

▲ (좌) 長白山(장백산)이 있다, (우) 白頭山(백두산)이 있다 A: 1602 Kun yu wan guo quan tu(곤여만국전도, 坤輿萬國全圖), B: 1721 Da Ming yi tong shan he tu(대명일통산하도 大明一统山河图), C: 1760 Yŏjido(여지도, 輿地圖), D: 1789 Tongguk yŏjido(동국 여지도, 東國 輿地圖)현재 동아세아에서 제작되었다는 古地圖(고지도)들에 東北亞(동북아) 白頭山(백두산)을 보면 다수가 白頭山(백두산)과 長白山(장백산)을 하나의 산으로 표기하였다.     ©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漢文(한문)으로 제작된古地圖(고지도)들 중에 白頭山(백두산)과 長白山(장백산)을 하나의 산으로 표기한 지도들은 너무나 많다. 백두산 표기를 보면 대체로 동국조선측은  백두산으로 중국측은 장백산으로 표기하였다. 그러한 지도들을 보면 현재의 국사와 세계사가 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역사기록이나 고지도들 중에는 두 산을 전혀 다른 산으로 표기한 지도들이 많이 있다.

▲좌: 장백산이 북쪽에 있다, 우: 백두산이 북쪽에 있다, 1: 長白山(장백산), 2: 白頭山(백두산), A: 19세기 전반 廣輿圖(광여도), B: 1800 Yŏjido(여지도, 輿地圖), C: 1800 Cheonhado(천하도, 天下圖), D: 1800 Yŏjido(여지도, 輿地圖), E: 1700 Yŏjido(여지도, 輿地圖), F: 1700 Yŏjido(여지도, 輿地圖)(좌) (우)의 지도들에 백두산과 장백산의 위치는 상반된다. 동시기의 다른 수많은 지도들도 비슷하며 백두산인지 장백산인지는 큰 의미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E,F지도는 동일책자의 지도들이지만 백두산과 장백산의 위치가 서로 다르다. 동일제작자의 지도들이 백두산을 전혀 다른 위치에 표기한 것이다. 정상적인 지도라면 백두산의 위치도 모르고 지도를 제작할 제작자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위의 한문고지도들이 근세기에 세계사조작을 위하여 지도처럼 제작된 예술품들이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수많은 古地圖(고지도)들로는 白頭山(백두산)이 長白山(장백산)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 다른 산이라면 백두산과 장백산의 위치가 어느 것이 북쪽인지조차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동시기 뿐 아니라 동일년도 동일제작자의 지도들 조차도 백두산과 장백산의 위치가 서로 다른것은 극히 비정상이다.  위의 지도들은 백두산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기 위하여 제작된 조작들로 판단된다.

白頭山(백두산) 표기에 일관성이 없는 이유

韓半島(한반도)에 COREA(대조선, 大朝鮮)인들은 자국을 설명할 때 ‘遼水(요수)의 동쪽 長白山(장백산)의 남쪽’이 백두산이라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성종 12년(1481) 10월 17일1번째기사 중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우리 나라는 요수(遼水)의 동쪽 장백산(長白山)의 남쪽에 있어서 3면이 바다와 접하고 한쪽만이 육지에 연달아 있으며 지역의 넓이가 수만리(幾於萬里)나 됩니다."
"惟我大東, 居遼水之東、長白之南, 三方負海, 一隅連陸, 幅員之廣, 幾於萬里。"

幾於萬里(수만리) 크기의 韓半島(한반도)인 미대륙을 축소하여 東北亞(동북아)로 이동시키기 위해서는 반듯이 만들어야 하는 것이 白頭山(백두산)과 長白山(장백산)인 것이다. 그런데 東北亞(동북아)에는 白頭山(백두산)이라 불릴 만한 산이 하나밖에 없기에 백두산과 장백산을 하나의 산으로 만들어 세계사와 국사를 만들고 그에 맞게 고지도들을 조작한 것으로 판단된다.
 
▲ 1700년 이전에 제작됐다는 영문고지도들의 대부분에 MONGAL(몽골, 蒙古)은 현재의 Bering Strait(베링해협) 서쪽 北海(북해)인근에 있었다. 蒙古(몽골)은 현대의 Eurasia(유라시아) 중앙의 Mongolia(몽골리아)로 이동되었다. 蒙古(몽골)의 남동쪽 수천리 거리에 白頭山(백두산)은 알래스카의 Mount McKinley(맥킨리산)이며 長白山(장백산)은 Mount Logan(로간 산)이다. 백두산과 장백산은 근세기 원래의 韓半島(한반도)인 美大陸(미대륙)에서 현재의 한반도인 KOREA의 朝鮮半島(조선반도)로 이동되었다.     © 김종문 고지도전문위원

 

1700년 이전에 제작됐다는 영문고지도들의 대부분에 MONGAL(몽골, 蒙古)은 北海(북해)인근에 있었다. 수많은 역사기록들에 白頭山(백두산)은 蒙古(몽골)의 남동쪽 수천리 거리에 있었다. 白頭山(백두산)은 오르는 길이 200리의 높이였으며 좌우 천리의 거대한 산이었다. 백두산은 남동쪽에 長白山脈(장백산맥)의 시작인 거대한 長白山(장백산)이 있었다. 

역사기록들에 부합하는 白頭山(백두산)과 長白山(장백산)은 東北亞(동북아) 韓半島(한반도) 근처에는 보이지 않는다.

白頭山(백두산)이 없는 韓半島(한반도)는 한반도가 아니며 COREA(대조선, 大朝鮮)인들은 고향을 잃은 가련한 신세들일 것이다…
영문고지도들을 공부하다 우연히 고지도들의 중요지명들이 이동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후 현재의 중요지명들의 위치가 세계사조작을 위하여 이동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2년여간 지명이동사례들을 탐구하여 정리하였습니다. 2014년 7월부터 고지도조작의 사례들을 모은 ‘고지도의 진실’을 알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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