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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사랑도둑] 남편의 선물 2

임서인 | 기사입력 2015/07/08 [17:00]

[연재소설] [사랑도둑] 남편의 선물 2

임서인 | 입력 : 2015/07/08 [17:00]

 

 
옆집 경호네가 그녀의 집에서 나는 소리에 현관문을 빼꼼 열고 나왔다. 부서진 현관문 사이로 선영이 식탁에 멍하니 앉아있는 모습을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한참 바라보다 발소리를 죽여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

선영이 의자에서 일어나 발을 옮기는 순간 몸이 휘청했다. 발에 힘을 주었지만 온 몸의 기가 빠져나갔는지 죽을 것 같았다. 천천히 현관문 앞으로 걸어갔다. 이혼해주자. 죽어도 이혼해주지 않을 거야. 두 마음이 그녀의 여린 마음속에서 싸움을 했다.

오로지 이 생각을 하며 현관문을 맞추어 놓고 베란다로 갔다. 이미 그는 아파트를 빠져 나갔을 것이지만, 가족을 버리고 가는 뒷모습을 한번 보고 싶었다. 남편은 베란다에서 잘 보이는 곳에 차를 주차한다.

마당은 고요한 적막에 싸여 있고, 희미한 불빛 아래 빼곡히 주차되어 있는 차 사이를 뚫고 남편의 모습을 찾았다. 아파트 입구에서 차 한 대가 스르르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시야에서 차가 사라지자 선영의 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일단일단 전진해 나가는 것이 삶이라고 하지만, 자기의 생활을 밟고 넘어가는 것이라지만, 선영은 항상 자신의 삶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음악이 테마와 템포를 차례차례로 바꾸어 한 곡을 끝내고, 완성하고, 뒤에 남기듯이 자신의 생활도 물 흐르듯이 차례차례 밟아나가야만 된다는 생각에 머물자, 그 자리에 우뚝 섰다.

그래 여기까지가 내 인생의 한 장막이다. 다음 장막을 내리는 것도 걷는 것도 나의 손으로 할 것이다. 무기력한 그녀가 신속하게 마음을 정리했다. 아니, 무기력한 생활을 하면서도 이런 날이 자신에게 닥칠지 모른다는 위기위식을 늘 느끼며 살았기에, 쉽게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런지.

그녀는 식탁으로 걸음을 옮겼다. 팽개친 서류를 들어올렸다. 방으로 들어왔다. 침대에 걸터앉았다. 조심스레 봉투 입을 펼치고 안에 들어있는 종이를 빼냈다.

이혼 수속에 관한 서류였다. 그가 신속하고 정확하게 일처리를 하는 능력자처럼, 완벽한 서류였다. 한 푼의 위자료나 양육비를 주겠다는 인정 있는 문자는 눈에 띄지도 않았다. 선영은 그 문자들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언젠가, 인생의 치욕을 씻어내는 최상의 무기는 용기와 아집과 인내라고 했던 지혜의 말이 생각났다. 그러면서 이혼을 하고 오는 날도 침착하다 못해 냉혈인간처럼 차디찬 눈으로 선영을 바라보던 지혜의 눈을 잊을 수가 없다.

그녀는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용기라고 생각했다. 용기는 그녀를 강하게 하고, 지금 이 불행을 농담 삼아 말할 수 있는 아집은 부려볼 수는 없지만, 이 치욕을 극복해 내고 나면 향희와 지혜처럼 자신이 그동안 살아왔던 생활들에 대해 농담할 수 있을 것이리라.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남편을 붙들고 이십 여 년을 살아온 자신의 인내심이 때로는 한계에 부딪쳤지만, 이제 그를 놓아주고,  자식에게 당하는 수모와 고달픔으로 인내를 요구하는 삶이지만 내 천형인걸, 이 인내심만은 그녀가 죽을 때까지 감당해야 할 멍에라 여겼다.

인내를 가지고 준형과 영준을 무한히 사랑하자는 마음이 들자 마음이 침착해지며 자신이 할 바가 무엇인지 하나하나 정리되기 시작했다.

가슴이 아파도 참을 수 없는 일이 생겨도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 참아야만 하는 그런 세대가 아니면서도, 선영은 그런 여자였다. 수많은 설움을 가슴에 지닌 채, 향희와 지혜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스스로 달래가면서 비탈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이런 선영이 답답하여 다른 친구들은 하나하나 떠나갔다.

어느 날부터 사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 준형과 남편으로 인해 고달픈 것을 치우고 있는 사이, 세월이 그녀를 끌고 이만큼 왔다. 마흔 아홉이라는, 마지막 마흔을 보내는 해에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문이 열리려 한다.


그녀가 분당이라는 곳에 정착한지가 15년 전이다. 선영이 먹을 것 입을 것을 아껴가며 마련한 종자돈으로 분양받은 아파트가 운 좋게 당첨되어 분당에 살게 되었다.

천당아래 분당이라고 하는 이곳은 쾌적하고 살기 좋은 도시이다. 그녀가 분당이라는 도시에 입성할 때는 덜 자란 나무들 같던 도시가 요즘은 제법 튼실해져 넉넉함을 안겨준다.

s동 동사무소 옆 동에 사는 선영의 아파트에는 얼마 전에 택시 기사가 이사를 왔다가 한 달도 되기 전에 이사를 갔다. 그녀는 그저 들은 소문이지만, 택시기사는 돈이 많아 자식을 분당에서 교육시키고자 학교가 가까운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그가 택시기사라는 것을 알게 된 여자들은 단번에 그를 찾아가 급이 다르니 당장 다른 곳으로 이사 가라고 엄포를 놓았다. 경비에게 인사를 해도 경비조차 인사를 받지 않고 외면하고 차별을 당하자 택시기사는 결국 이삿짐을 쌌다. 이삿짐 센타 차를 가리키며 옆집에 사는 경호네가 귓속말로 말해주었다. 언간생심 택시기사 주제에 이런 곳엘 이사를 오느냐는 것이었다.

선영은 침대에 앉아 슬픈 표정을 지으며 떠난 택시기사의 아내의 얼굴을 떠올렸다. 혹시 자신이 이혼을 하면 자신도 이 아파트에서 쫓겨나지는 않을까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이 집에서 아이들과 인생을 묻고 싶었다.

그녀는 그런 생각에게까지 미치자, 인생의 모든 의미와 의의가 상실되는 순간처럼, 또 한번의 절망이 온몸을 옥죄인다. 몸이 파르르 떨리며 치미는 화에 얼굴이 붉어지며 숨이 가빠졌다. 그러나 이 순간이야말로 가장 의미 깊은 순간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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