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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사랑도둑] 당당한 그녀 3

임서인 | 기사입력 2015/08/29 [14:24]

연재소설 [사랑도둑] 당당한 그녀 3

임서인 | 입력 : 2015/08/29 [14:24]


휘향이 눈을 떴다. 6인용 병실이었다. 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나서 들은 바에 의하면 그가 수덕사엘 들러 수덕여관의 뒤편 너럭바위에 고암 이응로 화백이 새긴 문자추상 암각화를 구경하고 방안을 둘러보다 휘향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는 처음에는 여인이 쓰러져 자는 줄만 알았다가 옆으로 나뒹굴고 있는 술병과 약병을 발견하고 들어와 여인을 깨웠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자 들쳐 업고 예산삼성병원에 한달음에 달려왔다는 것이다.

그녀가 눈을 떠 주위를 둘러보니 그녀 옆으로 두 개의 침대와 맞은편에 세 개의 침대가 있었다. 여섯 개의 침대가 병실 가득 차 비좁았다. 환자가 병실 밖으로 나갔는지 비어 있는 침대가 있었고 창문 쪽 침대에는 여자 세 사람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 옆의 침대에는 앳된 여자가 누워 자고 있었다. 환자 보호자는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그녀는 누군가가 자신을 병원에 데려왔다는 것을 알고 절망했다. 희망이 없는 세상에 다시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이 괴로웠다. 이대로 눈감아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몸을 떨었다.

“여자가 한번 남자에게 버림받으면 사랑의 대가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요.”

목소리가 굵직한 여자의 음성이 들렸다.

“맞아요. 남편과 헤어지면 모두를 잃는 것과 같다니까요? 후~”

이번에는 다른 가냘픈 여자 목소리가 힘없이 말했다.

“한숨 쉬지 마세요, 몸을 추스리고 나가서 보란 듯이 좋은 남자 만나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 꼭 보여주세요.”

목소리 굵직한 여자가 말했다.

“웬수같은 놈이 바람을 피우더라도 내게 말만 안했어도 이혼하자고 하지 않았어요. 몸이 이렇게 망가지고 보니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목소리가 가냘픈 여자가 푸념을 했다.

“요즘 혼자 사는 남자들 많다 하니 남자들을 많이 사겨 보고 괜찮은 남자 만나면 되죠. 나 같으면 그 인물로 남자 골라서 가겠네. 무슨 걱정이야. 딸린 식구도 없는데.”

목소리 굵직한 여자가 말했다.

“날 떠났지만 문득문득 보고 싶은 마음에 마음이 찢어져요. 흑흑흑.”

목소리 가냘픈 여자가 울었다.

“널 배신하고 간 남자가 보고 싶다고? 정신 차려라. 요즘 여자나 남자나 지조 있는 사람을 보지 못했어. 아, 글쎄, 유부녀들이 애인을 두어도 둘, 셋씩 다 있다쟎아. 지랄 맞은 세상이야”

다른 목소리의 여자가 누가 들을까봐 속삭이듯 말했다.

“나 어떻게 살아야 돼? 병든 이 몸으로 어디 가서 무얼 하고 살아야 하냐고? 저 여자처럼 차라리 죽어버리게 약을 먹어버렸으면 좋겠어.”

목소리 가냘픈 여자가 울먹였다.

“이것아, 그러게 왜 위자료라도 듬뿍 받아내지 무슨 청승이라고 쥐꼬리만치 주는 것 가지고 나와.”

친구인 여자가 말했다.

“누가 알았나. 나 몰래 재산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넘겼는지. 내 동의 없이 판 재산에 대해 내가 청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지금 생각하면 분해서 못살겠어. 의도적으로 그런 것을 까맣게 모르고 그래도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어.”

목소리 가냘픈 여자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법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네요. 한번 알아볼까요?”

굵은 목소리 여자가 말했다.

“이제 와서 다시 괴로운 일에 맞닥뜨리고 싶지는 않지만……. 돈도 하나도 없이 살려니 막막해요.”

“사람은 결국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할 상황이란 없어요. 살다보면 지금 이 상황이 전부인 것 같아도 희망도 보일 거여요. 사랑이 전부는 아닐 거여요. 남편은 그 여자가 죽고 못 살 정도로 사랑한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미란씨가 얼마나 좋은 여자인지 알게 될 거여요. 남자는 바람을 피우면서도 조강지처가 그래도 좋다고 깨닫고 돌아온다잖아요. 설사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버스는 항상 옵니다. 그 버스에 올라타고 갈 때, 누군가가 미란씨 옆자리에 앉아 갈 거여요. 다행히 버스 내릴 때까지 옆자리에 앉아 가 준다면 고마운 일이고, 다른 사람이 다시 그 옆자리에 앉을 테니 세상 그리 낙망하지 말아요.”

“해송이 엄마 말을 들으니 용기가 나네요. 제가 다시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럼그럼, 넌 예쁘고 착하니까 금방 사랑을 할 수 있을 거야.”

목소리 가냘픈 친구가 힘 있게 말했다. 휘향은 여자들의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 여자들에게 자신의 치부가 훤히 보여질 것 같았다.

그때, 문 입구에서 사람들의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 발자국이 휘향의 옆 침실 가까이 다가왔다.

“아이고 이 불쌍한 것, 먹어도 그것을 먹었다냐? 어엉엉.”

“엄마, 울지 마. 언니가 깨서 엄마 우는 것 보면 마음 아파하잖아.”

휘향은 도저히 눈을 감고 있을 수 없었다. 눈을 뜨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궁색한 노인과 대학생인 듯한 젊은 여자, 중년 남자가 잠자고 있는 여자를 드려다 보고 있었다. 노인은 자고 있는 딸의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내면서 방울방울 여자의 얼굴에 눈물을 떨어뜨렸다. 몇 방울이 떨어지자 여자가 눈을 떴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다. 아직 삼십 초반 같았다.

“엄마, 의사란 놈이 내가 죽는대. 위세척을 하고 지금 멀쩡한데 내가 죽는대. 엄마! 나 어떡해! 엄마!”

노인을 보자 여자가 울부짖었다.

“넌 안 죽어.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한테 널 데려갈 거다. 염려 마라.”

노인은 딸을 부둥켜안고 울었다.

“며칠 됐는데도 나 이렇게 멀쩡하잖아. 근데 내가 왜 죽어! 엄마, 나 살려줘!”

여자는 몸에 주렁주렁 달린 링거들을 뽑고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침대에서 바닥으로 내려와 힘차게 팔을 내저으며 걸었다. 나 멀쩡한데 왜 죽는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그러더니 이내 목을 그러쥐었다. 폐가 손상되어 호흡곤란이 온 듯했다. 그 모습을 놀란 눈으로 창문 곁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여자들이 바라보았다.

여자의 동생은 급하게 의사를 불렀다. 같이 온 중년 남자가 여자를 끌어안고 여자를 침대에 눕혔다. 간호사는 급히 산소 호흡기를 꽂았다. 계기판의 산소수치는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서, 선…선생님, 나, 나 살고 싶어요. 그이한테 용서를 빌, 빌어야 해요. 사, 살, 살려주세요.”

여자의 애처로운 울부짖음에 휘향은 그만 눈을 감고 몸을 떨었다. 여자의 한이 자신의 몸에 착 달라붙는 것처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엄습하며 자신도 모르게 이불을 뒤집어썼다.

여자를 다급하게 중환자실로 옮겨가느라 응급실 안이 소란해졌다. 여자들은 입을 다문 체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여자가 중환자실로 옮겨지는 모습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필이면 그라목손을 먹었다잖아. 동생이 말하는데 의사가 위세척을 하고 며칠은 멀쩡하다가도 저렇게 호흡관란이 오면 끝장이래. 청바지에 한 방울만 튀어도 청바지가 구멍이 날 정도로 폐를 파괴하며 서서히 숨줄을 조여온대. 아우, 끔찍해.”

여자의 친구가 몸을 떨며 말했다. 환자인 여자는 중환자실로 옮겨간 여자를 멍한 눈으로 바라보며 자신을 한탄하고 남편을 원망하던 입을 다물었다.

“왜 약을 먹었대요?”

목소리 굵은 여자가 물었다.

“아마, 여자가 남편 몰래 바람을 피웠대나 봐요. 그걸 남편이 알고 이혼을 요구했는데, 하나 있는 아들을 서로 데리고 살겠다고 싸우다 홧김에 여자가 약을 먹었나 봐요. 죽으려고 약을 먹는 사람들 보면 참, 무서운 사람들입니다. 아우, 끔찍해. 한동안 저 여자의 모습 잊지 못할 것 같아요.”

환자의 여자 친구가 진저리가 난다는 듯이 몸서리를 쳤다.

의사가 올 때까지 휘향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여자의 애처로운 모습을 뇌리에 떠올리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누군가가 그녀의 몸을 어루만지자 이불을 걷어 올렸다. 말쑥한 정장을 한 낯선 남자였다.

“정신이 드셨군요? 몸은 어떻습니까? 불편한 것은 없나요?”

굵은 목소리톤의 남자의 부드러운 말에 그녀는 말없이 쳐다보았다.

“댁의 은인입니다. 하마터면 저승에 갈 뻔했습니다.”

순간, 휘향은 그가 저승사자나 쓸법한 말을 하자 화가 났다.

“난 안 죽어요. 내가 왜 죽습니까? 당신이 날 구해주었나 본데 난 죽을 운명이 아닙니다. 약 몇 알 먹었다고 죽습니까?”

야멸찬 그녀의 말에 그는 어이가 없는지 허허 웃다가 이내 정색을 했다.

“갈 곳 없죠? 없으면 나 따라와요.”

“내가 댁을 왜 따라갑니까?”

“가족을 찾으려고 가방을 뒤져보니 아무도 없던데, 갈 곳도 없는 것 아닙니까? 살려면 어디든 몸을 맡길 곳이 있어야 하지 않나요? 이런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잔말 말고 말 들어요.”

그녀는 강한 어조의 그의 말에 눈을 부릅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죽음에서 건져준 은인이지만 자신의 가야 할 곳을 마음대로 정하는 무례를 그녀는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녀의 부릅뜬 눈 따위는 무섭지 않다는 듯, 그는 여전히 서글서글한 미소를 띠었다. 그의 굵직한 약지 손가락에 낀 반지가 휘향의 눈에 들어왔다. 임자 있는 사람일거라 짐작을 했다.

창문 옆에 있던 여자들이 휘향과 그가 실랑이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두 사람의 사이가 부부 사이가 아님을 알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다음 행동을 지켜보았다. 휘향은 그녀들이 자신을 보는 눈빛이 그리 곱지 않음을 알고, 더 이상의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

“어서 여기서만 나가게 해주세요. 은혜는 갚죠.”

그녀는 속삭이듯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여주고 내일 오겠노라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그리고는 허리를 펴 그녀의 가슴에 얹어놓은 손등을 툭툭 쳤다. 그의 그런 행동에 놀라 그녀는 얼른 손을 이불 속으로 감추었다.

그가 갔다. 그가 누구일까? 둥근 얼굴, 서글서글한 눈, 넓은 가슴, 그녀의 헌칠한 키만했다.

혹시 나를 아는 사람일까? 아니면 길거리에라도 우연히 마주친 사람은 아닐까? 하고 별의별 생각을 해보았으나 그가 누구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병실 불이 꺼지고 시끄럽던 병원이 쥐죽은 듯 고요하여도 눈을 말똥말똥 뜨고서 그만 생각했다. 그만 생각하다 보니 자신이 왜 약을 먹었는지조차 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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