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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규 단편소설] 잭팟 터트리기 4회

박종규 | 기사입력 2015/10/11 [17:07]

[박종규 단편소설] 잭팟 터트리기 4회

박종규 | 입력 : 2015/10/11 [17:07]

[박종규 단편소설] 잭팟 터트리기 4회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 나는 참담해 있었다.

  250불은 땄다. 그러나 환락의 도시를 이런 기분으로 떠나가게 될 줄은 몰랐다. 속상했다. 50불에서 오르내리기를 계속할 때, 나는 기어이 아내의 손에 이끌려 라스베이거스에서의 ‘잭팟의 꿈’을 접어야 했다.

 

무리한 일정에서 오는 피로감은 극복할 수 있었으나 너무 늦은 시간이 문제였다. LA에서의 다음 일정 때문에 새벽 출발은 어쩔 수 없었다. 그때 들어가서 잠을 청해도 2시간밖에는 못 잘 시간이었다. 그리고 잭팟이 터지려면 벌써 터져야 했다.

 

긴장은 서서히 이완되기 시작하였고, 피곤이 몰려왔으며, 아내는 올라가자고 졸랐다. 잭팟에 대한 미련을 털지 못하고 아내에게 이끌리다시피 호텔 방에 들어오고 말았다. 허망한 기분이 되어 잠바를 벗으려다 보니 아무래도 뭔가가 허전했다.

 

나는 어깨 부분이 유난히 가벼운 걸 비로소 알아차렸다. 허망함과 허전함을 구분하지 못한 것일까? 육중하게 어깨를 내리누르던 무게감이 훌쩍 날아가 버린 것이다. 아니, 어디 있지?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나는 화장실로 들어가는 아내에게 나직이 말했다.

 

  “내 카메라.”

 

  당연히 가지고 들어 온 것으로 생각하여 대수롭지 않게 아내에게 툭 건넨 말이었다.

 

  “당신 아까…!”

 

  아내의 그 한마디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 부리나케 1층의 카지노로 내달렸다. 제발, 제발!

 

  엘리베이터는 느렸다. 안으로 엘리베이터 밖의 소란이 스며들었다. 밖에서는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폭죽 터지는 소리도 들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왁자한 소음이 와락 쏟아져 들어왔다. 카지노에서는 엄청난 소란이 일고 있었다.

 

요란한 비트 음향과 크로스 조명, 카지노에 있는 모든 손님이 일어나서 박수를 쳐대고, 어딘가에서 불꽃놀이처럼 섬광이 일었다. 경호요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축하송도 울려 퍼졌다. 모두의 시선은 카지노 중앙 부분에 있는 슬롯머신 주위에 쏠려있었고 모두 하나같이 축하해 주는 분위기였다. 그 기기에서 슬롯과 대결을 펼치던 누군가가 큰일을 낸 모양이었다.

 

그 밤, 터질 것은 기어이 터졌고, 나는 기가 막혔다. 믿을 수가 없었다. 누가 뭐라 해도 이 소란의 진원지는 당연히 나라야 했다. 지나의 논리대로라면 우주의 믓 별들이 나에게 영향을 주기 위해 정렬했고, 주인공의 자리에는 마땅히 내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잃어버린 카메라를 찾느라 급급한 신세가 되어있었다. 한 사람은 예기치 않게 돈다발을 안아 빛의 축제를 즐기고 있고, 나는 어두운 구석구석을 샅샅이 훑어야 하는 처량한 꼴이 되어 있었다. 나는 행성들의 빛 에너지가 쏘이는 언저리까지는 왔으나 그 빛의 그림자에 갇혀 힘겨운 조연을 감수해야 했다. 오로지 하나, 250불을 딴 대가를 처절하게 치르고 있었던 것이다.

 

  카지노가 이렇게 넓었었나! 주변이 어수선해서인지 내가 앉았던 자리가 어딘지 기억이 안 났다. 15분을 넘기며 헤매고 나서야 내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 자리는 사람이 없이 비어 있었다. ‘제발 제발…’ 카메라만 있어라,

 

그러나 카메라가 있어야 할 자리도 텅 비어 있었다. 아찔하면서 때아닌 허기가 몰려왔다. 경비를 불렀다. 안내양을 불렀다. 주변 게이머들에게 묻고, 시큐리티 캡틴을 불러 카메라 분실을 알렸다. 그들은 나름대로 이리저리 전화하고, 서로 묻고, 같이 찾고……. 나는 카메라보다 사진이 더 중요하다며 꼭 찾아달라고 통사정을 하고. 잭팟 축제는 이어지고 있었고! 그 와중에 기다리다 못한 아내가 헐레벌떡 내려왔다.

 

우리는 1시간이 넘도록 혹시나 해서 똑같이 생긴 게임부스들을 샅샅이 훑으며 카메라를 찾아 헤맸다. 그새 팔자를 고친 누군가는 양양하게 호위를 받으며 카지노를 빠져나가고 주위가 평온을 되찾았다.

  아무리 공짜라고는 없는 팔자라지만 이건 해도 너무 했다.

 

공짜 없는 팔자가 아니라 혹독한 대가를 요구하는 팔자였다. 언제 이 나라를 다시 올 수나 있을까. 정성껏 찍었던 그 멋진 앵글들이 자꾸 머릿속에서 되살아나 화를 돋웠다. 이따금 아내가 휴대전화로 건성건성 찍었던 몇 컷 만이 모든 여행의 추억을 달래줄 판이었지만 그나마도 해상도가 뚝 떨어지는 컴퓨터용 사진일 터였다.

 

모처럼 아내의 포즈를 여러 각도에서 아름다운 배경에 앉혀보곤 했는데…. 그 아쉬움과 원망을 어떻게 다 들을까. 비싼 렌즈 때문에? 그건 카메라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아내는 250달러에 9천 달러짜리 카메라를 날려버렸다고 낙담했다. 카메라는 다시 사면된다.

 

그러나 추억을 담은, 욕심내서 찍은 그 많은 작품사진은 어디서 되살릴 수 있을까. 차곡차곡 많이도 쌓아온 앵글 속의 피사체들이 여행 말미에 와서 하옇게 변하고 만 것이다. 내 어깨에는 언제나처럼 카메라가 올려 메어져 있었다. 여행 중에 카메라는 늘 그 무게가 부담이었지만, 불시에 나타나기 마련인 멋진 앵글에 대비한 것이었다.

 

삼각대는 방에 두고 왔어도 1.4의 밝은 렌즈에서부터 800밀리 망원렌즈까지 카메라 보디보다도 렌즈가 가방 무게를 더했다. 웬만해서는 벗어놓지 않는 카메라가방을 옆자리 사이의 비트 같은 공간에 벗어 놓고 홀가분하게 고대하던 게임을 시작했던 것이다. 우리에게 공짜 운이 없는 것은 하나님이 내린 축복이라 생각하라던 아내의 말이 허공에 메아리처럼 떠돌았다.

 

미세스 지나가 나에게 정말 잭팟의 행운을 가져다줄 줄 알았다. 점성술은 우리의 사주풀이와는 달라서 꽤 과학적인 것으로 보였다. 서울에 와서 라스베이거스의 호텔카지노 안전요원에게 전화를 넣었으나 그간 분실물 접수창구에 들어온 카메라는 없었다는 답변이었다. 돈 잃은 어떤 사람이 얼씨구나 챙겨 가버렸을 것이다.

 

  지나가 말한 4월 둘째 주는 서울에서 지나갔다. 금전적인 행운? 전혀 없었다. 다른 좋은 일도 물론 없었다. 대망의 달 7월에도 없었다. 나에게 길을 열어 줄 물병자리의 여인도, 귀인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나는 여전히 내게 메일을 보내오고 있다.

 

더 디테일하게 하루하루 코치를 받아 행성의 기운이 나에게로 향하는 운을 꼭 잡으라고. 2013년을 절대로 놓치지 말라고. 이제 보름도 안 남은 2013년이다. 나는 그 250불마저 로또에 날려버렸는데 오늘도 메일이 도착했다. 나의 목마름을 간파한 것일까? 지나는 지금도 나를 도울 수 있다고 한다.

 

 

                                         - 끝 -

 

 

 

 

[박종규 소설가]

 

- 전 문학동인 글마루회 회장  /전 에세이스트문학회 회장 / 현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 / 현 한국문인협회 문협진흥재단설립위원 / 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수필집<바다칸타타),<꽃섬>  /소설집 <그날>  / 장편소설<주앙마잘>,<파란비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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