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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평양시민 김련희 이만갑에 끝장토론 제안한다

숙청되었다는 고위간부들이 사라졌다 나타나는 이유는..

정찬희 기자 | 기사입력 2016/05/19 [01:22]

[인터뷰]평양시민 김련희 이만갑에 끝장토론 제안한다

숙청되었다는 고위간부들이 사라졌다 나타나는 이유는..

정찬희 기자 | 입력 : 2016/05/19 [01:22]

 

지난 15일 본지 기자는 딸과 남편을 만나게 해달라 며 북으로의 송환을 요구하고 있는 세계적인 유명인사이자 평양시민인 김련희 씨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김련희 씨는 국내 언론에는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는 인물이나 미 뉴욕타임즈, 영국 BBC 등 해외 대형언론사에서 사연이 대서특필된 인물이다.

 

관련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5np573n-3M

          평양의 김련희 가족, CNN통해 송환 호소

 

김련희 씨는 "간경화를 치료하기 위해 중국 친척집에 갔다가 남쪽에 잠시 가서 돈을 벌어 치료비를 대면 된다는 브로커의 말에 속아서 왔다가 독방에 감금되고 고문을 당했다. 어서 집에 돌아가 딸과 남편을 만나고 싶다" 며 국제사회에 귀가를 호소중인 인물이다.

 

김련희 씨는 참 많이 배운 교양인 의 느낌을 갖게 하는 여자였다. 말투는 오리지날 북한 말투였지만. 그녀와의 종편이 알려주지 않는 이야기들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여자들의 수다이므로 무거운 이야기부터 가벼운 이야기 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녀와의 일문일답을 정리해본다.

 

▲   평양시민 김련희      © 정찬희 기자

 

문: 평양사람이라고 들었다.

답: 그렇다. 평양에서 살았고 남편은 외과의사, 어머니도 의사였고, 나는 재단일을 했다.

 

문: 어떻게 지내시나?

답: 송환을 요구하는 집회에 참석하기도 하고 바쁘게 살고 있다. 내 소원은 제발 가족을 만나는 것이다. 딸과 남편, 내 부모가 그립다. 그런데 이 정부에서는 여권도 내주지 않고 귀가를 거절하고 있다. 최근에 모 단체에서 대구에 작은 원룸을 마련해주신다고 하여 들어가기로 했다.

 

(*기자주: 김 씨는 정부 수급비 약40만원으로 한달을 살고 있다. 주공임대아파트를 탈북자 우선 등의 형태로 제공받을 수 있지만 수급비는 임대료, 관리비를 내기도 턱없이 적은 돈이다. 주공임대아파트는 서민을 위한 아파트라고 표방되고 있지만 실제는 관리비 비리 등으로 진짜 서민은 살 수 없는 아파트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금 들어간다는 대구의 원룸은 보증금과 3개월치 집세를 단체에서 지원해준다고 함) 

 

문: 가족이 많이 그리워서 힘드시겠다.

답: 지금도 너무나 힘들지만 처음에는 정말 죽고 싶었다. 손목을 긋기도 했다. 지금도 흉터가 남아있다. 불을 끄고 손목을 그었는데 감시하던 형사에 발견되어 곧바로 병원으로 후송되어 살았다.

 

▲  김련희 씨 손목에 선명한 자해의 흔적.. 너무나 힘들다고   © 정찬희 기자

 

문: 테레비는 자주 보시는지?

답: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종편에 나오는 북한 탈북자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것들은 완전히 거짓말 경연대회라는 생각이 든다.

 

문: 안그래도 사실 종편 보면서 진짜 북한 사람 만나면 질문하고 싶은게 많았는데 질문해도 되나?

답: 해보시라.

 

문: 종편을 보니 북에 장애인이 별로 없는 이유가 태어나자마자 죽여서 그렇다는데 사실인가?

답: -_- 그걸 질문이라고 하나. 농담으로 알겠다. 그런일이 있을 수 있나?

만일 정말 그런 일이 있다면 그 아이를 누가 죽이나? 애 부모가 죽이겠나? 당이 죽이겠나? 그건 인륜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만갑(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끝장토론을 제안하고 싶다.

 

문: 북한에서는 실수를 하면 다 숙청한다는데 사실인가?

답: 아니다.

 

문: 종종 보다보면 숙청되었다는 인사가 갑자기 나타나기도 하고 신기한 현상들이 있다.

답: 북에서는 군장성급의 경우 1년에 한번 약20일 정도 병사체험이라는 것을 시킨다. 그것은 하급 병사들과 함께 같이 지내며 그들의 생활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잘못을 했을 경우는 혁명 을 시킨다.

작업장으로 보내 노동을 하는 것이다. 예전에 우리 아버지도 공장책임자였는데 잘못을 해서 공장 소속의 작업장으로 배정을 받아 고기잡이 배를 탔었다. 기간은 정해져 있지 않고 성실히 혁명을 하면 주변의 평판 등의 평가에 따라 원래 자리로 복귀시킨다.

 

▲  운전대를 잡은 김련희 씨         © 정찬희 기자

 

 

문: 종편에서 광주 5.18때 북한군이 파견되었다 그러던데 사실인가?

답: 말도 안된다. 그러면 파견되었던 북한군은 어디로 갔나?

 

문: 너무 무거운 이야기만 한거 같다. 가벼운 얘기도 해보자. 드라마도 보시나?

답: 태양의 후예 재미있게 봤다. 한국 드라마 재미있다.

 

문: 남쪽 남자랑 북쪽 남자랑 어느쪽이 잘생겼나?

답: 남쪽 남자가 잘생겼다. 하지만 우리 남편이 제일 잘생겼다. (웃음)

 

문: 북에 있을 때 직업이 재단사라고 하였는데 남편과 어머니가 의사인데 의외다?

답: 다들 남편, 어머니가 의사라고 하니 대단하다고 하는데 북에서는 직업은 직업일 뿐 의사라고 특별한 대우를 받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다만 여기서 그 재능을 활용할 수 없어 아쉽다.

 

 

▲  서울역 독립운동가 동상 옆에서 구걸하는 노숙자의 모습..    © 정찬희 기자

 

 

문: 재단사 셨는데 재능을 발휘못해 아쉬우시겠다

답: 재능을 발휘할 여건이 되면 좋겠다. 물론 송환요구 집회 등 할일이 많아 시간이 많이 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남쪽에 머무는 동안 틈틈히 무언가 남을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극단적 선택을 실행했을만큼 힘들었고 지금도 정말 어렵게 살고 있고 지금이라도 당장 평양 내 가족품으로 달려가고 싶다. 하지만 여기와서 보니 나보다도 어렵게 사는 사람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공간과 재봉틀, 천만 있다면 시간이 날때마다 수를 놓고 옷을 지어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봉사를 하고 싶다.

 

문: 끝으로 하실말씀이 있으시다면?

답: 내가 원하는 것은 내 가족을 만나는 것이다. 내 딸이 남편이 내 부모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천륜을 끊어놓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부디 나를 나의 조국으로 보내달라. 나는 간경화 환자다. 늘 피곤하고 아프다. 부디 죽더라도 고향에서 죽게 해달라.

 

▲   송환촉구 기자회견 김련희      © 임현준 페이스북

 

부디 김련희 씨가 행복해지기를 기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원본 기사 보기:서울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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