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서인의 중편소설] 곳고리 11회

임서인 | 기사입력 2016/10/13 [16:03]

[임서인의 중편소설] 곳고리 11회

임서인 | 입력 : 2016/10/13 [16:03]

 

 

 

[임서인의 중편소설] 곳고리 11회

 

하늘 끝으로 향하던 해덕의 눈이 다시 마을 안으로 들어선 무리들 속의 앵초에게 꽂혔다.

 

“삣삐비 삐비비비 삣삐비 삐비비비 하는 소리 들리지 않는가?”

 

천만이 입술을 쫑긋쫑긋 거리며 물었다.

 

“자넨 귀도 밝네.”

 

천만이 일어나 소리가 들린다는 쪽으로 살금살금 걸었다. 나무 몇 그루 서 있던 자리에도 나무들이 빼곡이 가족을 이루었다. 천만을 꼬드겨 시골로 내려오자마자 묘목부터 심었다. 그들이 심었던 나무보다 더 오래 이곳에 있었던 나무에게 가더니 천만이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나뭇가지 사이에 마른 풀을 엮은 바구니 모양의 둥지가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한 쌍의 새가 다섯 마리의 새끼 새에게 싱싱한 애벌레를 먹이고 있는 중이었다.

 

“저, 노란 신사, 꾀꼬리 맞지?”

 

천만이 물었다.

 

생명은 무엇이나 자신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가다듬는다고 이 우주의 한 공간을 방문한 저, 소리는 분명 꾀꼬리였다. 노란색 몸뚱어리에 검은 눈선이 뒷머리까지 둘러있었다. 자연스런 본능의 소리를 듣는 순간, 해덕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2년만에 처음 듣는 소리였다. 나무 한 그루를 심을 때마다 앵초를 심었고 꾀꼬리 소리를 심었었다. 그의 영혼이 엄숙해지며 코끝에 집중해서 숨을 골랐다.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은 듯 싶네. 보시게나. 온 마을이 나무로 가득 둘러싸여 있지 않는가? 아직은 어린나무이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이 마을은 푸른 숲으로 울창해질 걸세. 그러면 도시로 나갔던 사람들이 돌아오겠지? 웅성했던 그 시절로 돌아갈 날이 멀지 않았네. 그땐 신파공연도 함 해보세.”

 

해덕의 목소리가 들떴다. 마을 길가에 심었던 봄꽃이 힘없이 떨어졌던 애처로운 향기가 가는 바람을 타고 이곳으로 흘렀다.

 

“좋구 말고!”

 

어미 꾀꼬리가 천만의 큰소리에 경계를 하고 깩~하고 소리를 질렀다. 꾀꼬리는 조선후기의 학자 이만영이 32가지 소리를 낸다고 하더니 다른 새의 소리인지 착각할 뻔했다. 그 소리에 천만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노란 신사가 지를 수 있는 소리치고는 괴짜라며 웃어댔다.

 

“여보게, 한 사람의 인간이 불필요한 것을 잔뜩 안고 있어 다른 많은 사람들이 필요한데도 부족한 생활을 하고 있는 이 모순된 사회를 우리는 이곳에서만이라도 다함께 필요를 채우면서 살아보세.”

 

해덕은 꾀꼬리 한 쌍이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을 흐뭇해하며 천만을 향해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자네가 귀에 박히도록 말한 푸리에가 조직한 파랑스테르를 만들어보자는 것인가?”

 

“우리민족의 공동체 생활이 버젓이 있는데 남의 것을 흉내 낼 필요가 있는가?”

 

“옳은 소리네. 우리 것이 최고지. 이제 내려가세. 참, 자네, 소식 들었는가? 태진이 백제농장 책임자로 내려 왔다는군. 현우에게 앵초에 대해 물었다 하네. 병원에도 다녀갔다는 말도 들리구. 태진이를 자주 보게 될 텐데 괜찮은가?”

 

“음. 사람이 달라졌다는 소리는 안 들리던가?”

 

“본성이 어디 가겠는가? 앵초를 만났다는 소리는 들지 못했네."

 

“별일이 있을라고. 조만간 나를 찾아오겠지. 얼른 갑세.”

 

톱재를 벗어나는 두 사람의 발걸음이 또 다시 울리는 깩~하는 꾀꼬리의 소리에 훔칫 놀랐으나 이내 발걸음을 재촉에 마을로 돌아왔다.

 

앵초는 해덕에게 서울로 돌아간다는 문자만 남기고 떠났다. 그는 그녀의 그리운 얼굴을 보지 못한 서운한 마음에 눈시울이 뜨겁다. 기약 없는 그녀의 약속은 그의 가슴팍에 걸려 기울어가는 서산의 해가 피를 토했다. 그녀를 향해 서성이던 입술, 기회를 놓칠 때마다 성기마저 말라가고 있노라고 칼질하던 그녀의 문자, 두 번 다시 사랑했다고 말하지 말라는 그녀의 마음 따라서 움직이는 정신과 육신이었다.

 

그는 그녀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꾀꼬리 창공을 날 때 그녀도 그에게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은 그의 영혼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앵초는 서울로 올라와 그 겨울이 다가오도록 해덕에게 연락한번 하지 않았다.

 

그는 인근의 묘목을 사들이는데 바쁘게 움직였다. 겨우내 발품을 판 덕분에 작년만큼의 나무를 사들일 수 있었다.

 

온난화 현상으로 나무 심는 적기가 앞당겨져 산림청에서 권장하는 삼월 중순경부터 사월 중순경까지 심은 나무를 바라보면 마음이 흐뭇하다. 마을 진입로를 따라 심어진 나무의 환대를 받으며 앵초가 그에게 올 것을 생각하면 그와 그녀가 초승달에 이쪽 끝과 저쪽 끝에 앉아 있는 마냥 흥겹다.

 

공한지에는 유실수, 속성수, 특용수 등 수종을 선정하여 아름답고 정감 넘치는 마을경관이 조성될 수 있도록 했다.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수종을 선택했다.

 

만락정 옆의 야산은 그가 어렸을 때는 제법 많은 소나무가 이제는 몇 그루 밖에 되지 않아 그곳에 어린 소나무를 심고, 방아다리 긴 등성이에는 물푸레나무와 자작나무를 심고, 묘지가 있는 벼락재에는 배롱나무와 편백, 철쭉과 단풍나무를 심었다.

 

지금은 없어진 서낭댕이주변에는 염주나무를 심고, 밀양박씨 정려문 옆에는 겨울에 오히려 잎이 더 푸르고 열매가 익는 광나무 한그루를 심었다. 그 광나무는 그가  몰래 심어놓고 앵초나무라고 이름을 지었다. 앵초가 그에게 오는 날 보여줄 것이었다. 광나무에 혹여 꾀꼬리 한 쌍 둥지를 트는 환상을 보며 해덕은 육체의 고달픔과 앵초에 대한 그리움을 별과 달에 걸어두었다.

 

그는 고향사람들에게 한동안은 조롱의 손가락질을 등 뒤에서 느껴야만했다. 이런 짓을 하려고 박사 학위를 받았느냐? 사회에서 낙오자가 되어 쫓겨 온 것이 아니냐는 속삭임이 들릴 때면 속상했다. 짐작한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의 눈물을 훔쳐볼 때는 종북과 빨갱이라는 말을 들으며 곰삭은 능청으로 견디었다. 가장 힘든 앵초의 토라짐보다는 나았다. 아니 앵초를 향한 그리움은 날마다 별들을 향하여 높이 투망을 던지곤 했다. 그리움이 투망 속에 가득 걸려 올 때는 가슴에 꼭 안고 그 밤을 견디었다.

 

수많은 나무들이 투망에 걸려든 앵초에 대한 그리움이 거름이 되어 잘 자라고 있다. 그와 함께 내려온 천만은 조상이 물려준 땅이 있어 고만고만하게 농사를 지어 소득을 올리는데, 정식과 성민은 아내에게 다시 도시로 나가자는 무언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고 해덕에게 하소연을 했다.

 

그는 정식과 성민에게 문명과 제도는 인간을 사악하게 만들고 인간에게 사기꾼이 되게 하는 가증스러운 환경이라고 말했다. 인간 본성의 선인이 되고 형제애의 비이기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농촌을 변혁할 필요가 있다는 샤를지드의 말로 설득을 했으나, 정식은 1년 6개월을 견디다 아내 따라 도시로 나갔다. 성민은 아내를 설득을 했는지 도시로 나간다는 말이 들리지 않았다. 알고 보니 가까운 백제농장에 다니는 조건을 들어주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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