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서인의 중편소설] 곳고리 12회

임서인 | 기사입력 2016/10/18 [16:01]

[임서인의 중편소설] 곳고리 12회

임서인 | 입력 : 2016/10/18 [16:01]

 

 

 

[임서인의 중편소설] 곳고리 12회

 

 

해덕과 천만, 성민은 일을 끝내고 밤이면 모여 흔랑과 앵성마을을 살고 싶은 작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환경을 만들기 위하여 애를 썼다. 태양의 햇살에 싹이 자라고, 달빛의 사랑에 꿈이 피어나고, 바람의 흔적 없이도 열매가 익고, 만물의 이치는 보이지 않는 속에서 세세손손까지 유산이 되어야 했다.

 

그들은 영원농민회원들과 농업경영인연합회원들과도 가깝게 지냈다. 작목반에 들어가 생산활동 파악도 했다. 겨울에는 천태산에 산재해 있는 고인돌과 돌방무덤, 성터를 들러보며 2002년에 발견된 구석기 유물을 보며 역사를 기억했다.

 

해덕은 일을 마치고 달빛을 받으며 모산 마을로 차를 몰았다. 달빛 아래 앉아 백제시대의 중방의 역할을 했던 금사동산성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유산이 없어도 부모인 자연, 가르침이 없어도 스승인 자연이 달빛 속에 그의 영혼 속에 유산이 되어 박혔다.

 

한때는 찬란하고 호화로웠던 이곳이 이제는 정막마저 흐르고 있다. 군인들의 함성소리, 말발굽의 요란한 소리, 대장장의 쇠 두드리는 소리, 여인들의 교태의 웃음소리가 저 산성의 어디쯤에서 어둠에 갇혀 헐떡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산성 위로 작년 겨울, 우연히 차를 몰고 갔다가 10만평이 될 만한 밭에서 수확을 하지 않은 배추가 고스란히 말라가고 있는 모습이 지나갔다. 배추 값 폭락으로 제 가격을 받지 못해 밭주인의 좌절한 모습이 떠올랐다. 배추밭 주인의 깊은 시름에 패배감 같은 것이 산성위로 서렸다.

 

귀농카페에 들렀다. 회원들이 올린 글은 그를 더욱 암담하게 했다. 작은 군에서 예식업을 했는데 작년 가을에 한 번의 예식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고 했다. 더 이상 결혼할 젊은이가 없는 것이다. 한 회원은 고향을 내려가면 옛날 같지 않고 불편하고 외롭고 처량하고 쓸쓸한 것이 귀양살이 떠나온 것 같고, 정답지 않다는 것이었다.

 

해덕은 머리를 얻어맞은 듯 그 글을 읽으면서 한동안 멍할 수밖에 없었다. 정치인들은 표도 안 나오는 곳에 투자를 하려고 하지 않고, 정부는 농산물 가격이 조금이라도 오를 성 싶으면 중국에서 무관세로 엄청난 물량의 농산물을 수입해 온다. 농민들은 인건비도 나오지 않을 것 같으면 갈아엎고 다른 작물을 심기도 하지만 절망을 하면 손도 대지 못하고 영세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여자들은 농촌에 시집오려고 하지 않아 세 쌍 중에 한 쌍이 국제결혼을 했다. 좌우, 동서 지역감정만큼이나 도시와 농촌의 양극화 현상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지 못했다.

 

농업은 우리 민족의 뿌리요 삶이었다. 수천 년 이어진 공동체의 삶이 무너지려고 한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홀로는 행복할 수 없다. 서로 공존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며 사람을 살리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가 여기 내려오기 전에 꿈꾸어 온 농촌의 공동체를 살려놓는 설계도가 금사동산성 위로 훑고 지나갔다. 그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반드시 이루고야 말거야. 그의 꿈이 별빛이 되어 금사동산성 위로 날았다. 바지에 넣어두었던 휴대전화가 다급히 울어댄다.

 

“날세.”

 

“빨리 오게. 큰일 났네.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방아다리로 오게나.”

 

천만의 다급한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해덕은 급히 차에 올라 방아다리로 향했다. 차를 멈추고 방아다리로 들어가니 후레쉬를 든 몇 사람이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해덕이 도착한 것을 보자

 

“보게나. 누군가 나무를 죄다 뽑아버렸어. 며칠 된 것 같아. 뿌리가 거의 마른 것을 보면 말이야. 제초제 냄새가 진동한 걸보니 뽑고서 뿌리에 제초제를 뿌린 것 같네. 누구의 소행인 것 같은가?”

 

“다른 곳은?”

 

“모르겠네. 우리도 방금 이곳을 지나가다 발견한 것이네.”

 

“얼른 가보세. 차에 타게나.”

 

일행은 급히 벼락재로 향했다. 그곳도 똑같은 방법으로 나무가 뿌리째 뽑혀 있었다. 서낭댕이, 톱재의 나무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을 안에 있는 나무들만이 목숨을 건졌다.

 

“잡기만 하면 작두로 모가지를 베어버리겠어. 이게 어떤 나무인데, 자네의 전 재산이잖는가?”

 

해덕은 정신이 나가 멍하니 톱재의 나무가 송장처럼 누워 있는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고향으로 내려와 앵초의 아버지 하늘 길로 보내는 날, 처음으로 꾀꼬리 소리를 들었던 그 나무도 뽑혀져 있었다. 해덕은 벌떡 일어나 천만의 손에서 후레쉬를 뺏어들고 그 나무를 살폈다. 꾀꼬리는 어디로 사라지고 빈 둥지만이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땅에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해덕은 루릎을 꿇고 자신도 모르게 그 둥지를 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앵초야, 앵초야. 흑흑흑. 어디로 갔느냐? 나를 두고 어디로 갔느냐? 앵초야. 돌아오라. 어서 너는 내게로 오라. 앵초야! 엉,엉,엉.”

 

그의 섦은 울음에 천만도 땅에 주저앉아 훌쩍거렸다. 같이 갔던 동네 사람들도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눈시울을 적셨다. 그 나무를 심기 위하여 어둔 밤과 이른 새벽에 나와 굳어진 땅을 파고 물을 주기 위하여 한 양동이 물을 길어 나르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가?

 

“어떤 개자식이야! 누가? 왜?”

 

해덕의 울부짖는 소리는 멀리 마을까지 울렸다. 그의 소리에 개 짖는 소리가 들리며 꺼졌던 전등불이 하나, 둘씩 켜지고 있었다. 무덤에 누운 망자들이 그의 통곡소리를 들었는가? 하늘이 그의 눈물의 고함을 들었는가? 해덕은 동료 교수들로부터, 전국교수협회원들로부터 탈회를 하라는 말을 들을 때보다 더 외롭고 쓸쓸했다. 그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앵초로부터 외면을 당했을 때도 이 나무들을 생각하며 부푼 마음은 그를 당당하게 했었다. 천만은 그가 실컷 울도록 내버려두었다. 그의 고뇌와 고통, 그리고 부푼 꿈을 안다. 눈물도 웃음도 같이 나누었다.

 

“성민이는 요즘 어디를 갔는가? 일주일째 얼굴을 볼 수가 없네 그려.”

 

해덕이 울음을 멈추고 천만에게 물었다.

 

“보름 전에 정읍시내에서 태진이와 함께 술을 마셨다는 소리를 들었네.”

 

천만이 쭈뼛거리며 말했다.

 

“며칠 전에 조합장을 만났는데 성민이 자신의 돈을 찾아갔다고 하네. 이런 일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다른 말 못 들었는가?”

 

“그 돈을 찾아가면 어쩐단 말인가? 이미 자네와 내 돈은 나무를 사고, 역사관과 문화관을 짓는데 돈이 다 들어갔는데 말이네. 그놈이 우릴 배신하다니. 그놈이 아내를 핑계 삼아 정읍으로 이사 가는 것을 막았어야 했네.”

 

해덕과 천만은 망연자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부푼 꿈이 뽑혀 꼼짝을 하지 않는다. 해덕은 간신히 운전대를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아침, 해덕은 아침도 거르고 정읍으로 차를 몰았다. 정읍에 도착해 성민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았다. 그의 콧구멍에서 화가 뿜어져 나오고 정수리가 후끈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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