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서인의 중편소설] 곳고리 13회

임서인 | 기사입력 2016/10/24 [13:11]

[임서인의 중편소설] 곳고리 13회

임서인 | 입력 : 2016/10/24 [13:11]

 

 

 

 

[임서인의 중편소설] 곳고리 13회

 

 

연지동에 있는 태진의 사무실로 차를 몰았다. 이를 악문 그의 입술이 이 자국으로 움푹 패였다. 태진이 대기업에서 운영하고 있는 이평의 백제 농장의 사장으로 발령받아 왔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바빠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백제 농장은 연지동에 사무실과 기숙사를 두고 있었다. 성민의 아내가 이곳 식당에서 일을 한다. 이평면에 있는 농장에 사무실과 기숙사를 두지 않은 것은 직원들이 일을 마치고 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 시내에 두었다.

 

이곳 농장에서 나오는 쌀은 농민들이 내는 가격보다 훨씬 쌌다. 그곳에서 나는 쌀은 판매보다는 그 기업의 계열사에서 쌀을 원료로 하는 가공공장으로 거의 유통되어 농민들에게 주는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이평면의 거의 절반의 땅이 그 기업의 소유이며, 영원면의 농지도 하나, 둘씩 사들여 영원면에도 농장을 짓는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태진이 이평면 출신이라 내려왔다는 말도 들렸다. 앵성과 흔랑 뒤의 보창 옆 미전의 농지들에서 나오는 쌀의 풍미가 좋아 그곳 농지를 사들이려고 한다는데, 그곳에는 그의 집안의 농지도 많이 소유하고 있었다. 마을 앞 사급들과 상논도 눈독을 들인다면 그가 꿈꾸는 농촌 공동체를 이루려는 꿈을 깨는 것이었다.

 

그가 사무실 앞에 차를 세웠다. 차 몇 대가 세워져 있었다. 살펴보니 성민의 차도 있었다. 차에서 내려 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직원 몇 사람이 일을 하고 있었다. 김태진 사장을 보러 왔다고 그가 말하자 여직원이 사장실로 안내했다.

 

그가 들어서자 성민과 태진이 앉아 있었다. 태진은 성민의 얼굴을 살폈으나 태연했다. 그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한 표정과 성민의 침착한 모습에 해덕은 화가 났지만 애써 참았다.

 

“어서 오십시오. 문 선배님, 언젠가는 찾아뵈려고 했습니다.”

 

“자네, 잘 왔네.”

 

성민이 말했다.

 

“왜 자네가 이 아침에 여기 있는가? 보름 전부터 연락도 할 수가 없고 말야.”

 

차마 농협에서 돈을 찾아간 이유를 물을 수가 없었다.

 

“난 자네의 공동체 마을 만들기 사업에서 손을 떼겠네.”

 

“이유가 뭔가?”

 

“자넨 허황된 꿈을 꾸고 있어. 나무가 울창하면 마을이 번창한다는 말은 예부터 있어왔지만, 지금 세상에 숲이 우거지지 않은 마을이 어디 있는가? 나무로 땔감을 때지 않은 지 오래되어서 숲은 우거져있지 않는가?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백제농장에 투자를 하는 것이 나에겐 훨씬 미래를 달콤하게 해줄 수 있는 것 같아 마음을 돌렸네. 자네에게 미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하네.”

 

성민은 당당한 모습이었다. 왼손으로 해덕의 어깨를 툭 쳤다. 해덕은 그의 손에서 전해지는 배신의 아픔이 진하게 전해져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며 속이 끓었다. 그러나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그런가?”

 

해덕의 짧은 대답이지만 단호하고 힘찼다. 이미 마음이 떠난 성민을 설득한다는 것이 부질없어 보였다. 의기투합하여 고향으로 내려올 때의 성민의 모습은 간 데 없고, 낯설고 허망함의 그림자가 그의 얼굴에 가득 차 있음을 보고 애써 태연하게 말했다.

 

“문 선배님, 농촌은 이제 개인이 농토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못 됩니다. 대기업에서 뛰어들어 농장을 만들어 다 같이 일하고 같은 월급을 받고 같은 밥을 먹고, 같은 곳으로 여행도 가고, 같이 영화도 볼 수 있고, 같이 문화를 즐길 수 있으면 그것이 공동체 아닙니까? 영원에다가도 조만간 농장을 만들건대 문 선배님이 동참하셔서 그곳 책임자가 되어주십시오. 성민 형님께는 곧 백제농장 책임자로 앉히고 저는 서울 본사로 들어갈 예정입니다. 제가 여기 온 것은 영원에 농장을 세우려고 온 것입니다.”

 

태진의 가는 눈 꼬리가 실룩거리며 해덕의 심기를 건드렸다. 해덕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통쾌해 하며 건너다보았다.

 

“난 약속이 있어서 가봐야겠네. 김 사장 말도 틀리지 않네. 개인이 농촌에서 살아가기는 힘들어, 잘 생각해 보게, 자네가 얼마나 무모한지. 종북으로 낙인찍힌 자네를 누가 따르겠나? 태진이 영원에 농장을 세우면 그나마 책임자로 써주는 것은 자네만큼 학벌이 좋은 사람은 없잖은가?”

 

말을 마치고 문을 열고 나가면서 성민이 직원에게 차 한 잔 갖다 주라는 말이 들렸다.

 

“이보게. 농지는 농민이 소유해야지. 기업이 소유하면 이 농촌은 피폐해져 갈세.”

 

“선배님, 요즘 정부에서는 내수보다는 수출을 주도하고 있어. 불황과 실업으로 서민들이 궁핍합니다. 비싼 농기계를 사들여 농사를 짓다가 망한 농부들이 어디 한둘입니까? 농장을 만들어서 단결하고 다 같이 일하고 혜택을 누리게 해주는 새로운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 아닙니까? 농사가 잘 되지 않아도 일만 하면 되는데 뭐가 걱정입니까? 매월 나오는 월급으로 살아가면 되지 농지를 소유한들 부담만 되지요.”

 

“사적 소유를 허용하지 않은 백제농장의 경영대로라면 어젠가는 어려움을 겪을 걸세. 사람은 자기 것을 소유하고 싶어 하니까 말이야.”

 

여직원이 해덕의 앞에 차를 놓으며 힐끗거리며 나갔다.

 

“백제농장은 직원들에게 현대인이 누릴 수 있는 모든 문화혜택을 다 누리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직장이 어디 있습니까?”

 

태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태진은 이평면에서 태어났다. 천재라는 소리가 파다했으며 큰 키에 잘생긴 얼굴로 뛰어난 언변으로 최고학부를 나와 대기업에 들어갔다. 조합장인 아버지를 둔 갑부의 아들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국회의원에 출마하려고 하였으나 비리가 드러나 도중에 출마를 포기했다.

 

그때 해덕이 정읍신문에 그의 아버지를 비판하는 칼럼을 쓴 것이 태진에게 크나큰 상처를 주었다. 태진의 가슴에는 앵초와 아버지의 일로 해덕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받고 있었다. 그가 정읍으로 내려온 것도 해덕이 대학에서 쫓겨나 고향으로 내려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꼴사나운 모습과 철저하게 하층민으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 모습을 앵초가 보고 실망하여 해덕을 철저히 외면하게 되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 물론 그가 영원의 앵성과 흔랑마을을 공동체 마을로 만들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백제 농장과 영원 농장이 그가 만든 공동체 마을보다 더 나은 곳이 되게 하고 싶었다. 농촌에도 자본주의만큼 사람들을 윤택하게 하는 것은 없다고 여겼다.

 

“자네 회사에서 빚에 몰려 오갈 데 없는 농부들의 농지를 사주고 빚을 갚아주고 일자리를 준 것은 잘했네. 하지만 자네도 잘 알걸세. 중국이 공산화로 인해 집단농장으로 운영하다가 소득이 감소하자, 농사지은 곡식은 내 것이 되게 했을 때 다섯 배에 달하는 소득을 내 세상을 놀라게 하지 않았나? 250개나 되는 이스라엘 키부츠도 점점 감소해 간다고 하지 않나. 집단 노동과 공동소유로는 사유농장을 따라가지 못하네. 백제농장은 공동소유라 볼 수 없지 않는가? 난 개인 농지를 소유한 농민이 공동체 사회를 이루어 가는 것을 꿈꾸고 있네. 새마을 운동으로 사라져간 우리의 공동체 사회를 되돌려 놓고 싶을 뿐이네. 난 아직도 기억하네. 모내기철이면 앵초 아버지가 못줄을 잡으면서 구성지게 불렀던 민요가 온 들판에 울려 퍼지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네. 우리의 품앗이와 두레는 얼마나 훌륭한 공동체인가? 내 소유가 있는 공동체 삶은 내 소유 없는 집단농장에서의 일을 하는 것이 농부의 더 나은 행복 아닌가? 땅은 농부의 것이 되어야 하네. 어떤 기업인의 소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여기네. 그저 그 기업의 노예일 뿐이네.”

 

해덕은 간절한 마음으로 태진이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 땅의 주인인 농부들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를 바랐다.

 

“옛날 고려적 이야기 하지 마십시오. 1차 농업에 머무르던 때는 지났습니다. 지금은 가공, 판매, 서비스, 종합적인 6차 농업산업화 시대란 말입니다. 대기업이 들어와 이 모든 것을 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농촌이 어디 있습니까? 젊은 사람은 눈 씻고 찾아봐도 겨우 보일까 하고 허리 꼬부라진 늙은이들만 있는 이 농촌에서 선배님이 이루려는 공동체 사회 가당키나 합니까? 그래서 나무를 심으면 마을이 부하게 된다고 갖은 재산을 다 들여 나무를 심습니까?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합니다. 대학으로 돌아갈 자신이 없으면 영원을 집단 농장으로 만드는데 앞장서십시오.”

 

태진이 노기 띤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영원에 집단농장을 만들겠다는 건가? 부탁이니 영원만은 그대로 놔두게 내가 이렇게 부탁하네.”

 

해덕은 벌떡 일어나 태진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혔다.

 

“그럼 앵초를 저에게 주시겠습니까?”

 

태진이 아직 허리를 펴지 않은 해덕의 등허리에 묘한 웃음을 날렸다.

 

“자네가 그 얘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아네만 자넨 결혼하지 않았나?”

 

해덕은 앉으며 눈을 태진에게서 떼지 못했다. 그의 앵초에 대한 집착에 화가 났다.

 

“앵초를 잊을 수가 없어 이혼을 했습니다. 선배님이 앵초를 가로채시지만 않았다면 지금쯤 앵초는 내 아내가 되었을 것입니다.”

 

“난 자네가 앵초를 그리 깊게 생각하는 줄 몰랐네. 앵초는 나를 몹시 따라서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뿐이지. 나중에 알았을 때는 늦지 않았는가?”

 

“몰랐다고요? 내가 앵초를 매일 따라다녀 소문이 났었는데도……. 그때 내가 선배님에 대한 증오로 결혼을 하면서 반드시 갚으리라 이를 갈며 살았습니다.”

 

“앵초와 나는 헤어졌네.”

 

해덕은 괴로운 듯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이제부터 앵초에게 관심두지 마십시오. 내가 반드시 앵초를 내 것으로 만들겠습니다. 내가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평면과 영원면 사람들을 구제하겠습니다. 선배님의 방법보다는 제가 하고자 하는 방법이 훨씬 그들을 행복하게 해 줄 것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선배님은 북한전문학자시니 북한의 동향이나 열심히 살폈다가 정부의 하는 일마다 촛불을 드는 어리석은 자들이나 깨우치십시오, 요즘 같은 태평성대에 촛불을 들어서 무엇 한답니까?”

 

태진의 격노한 목소리는 숫제 파고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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