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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도 사건,화제의 사진과 인물들(2)

사회부 | 기사입력 2007/12/30 [00:04]

2007년도 사건,화제의 사진과 인물들(2)

사회부 | 입력 : 2007/12/30 [00:04]
[연예계] 

▲이찬-이민영 부부 = 2006년 12월 10일 동료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한 서른한 살 동갑내기 탤런트 이찬-이민영 커플은 그해 마지막 날 이민영이 폭행으로 얼굴에 심한 상처를 입은 모습이 공개되며 긴 이혼공방의 출발을 알렸다. 두 사람은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곧바로 별거에 들어갔으며 신년 벽두부터 폭력 공방을 시끄럽게 벌였다. 

임신한 여자를 폭행해 변명의 여지가 없었던 이찬과 혼수에 대한 논란을 빚은 이민영 가족의 태도는 한동안 대중의 지탄을 받았다. 두 사람은 1999년 드라마에서 처음 만나 친구로 지내다 2004년 KBS 2TV 드라마 '부모님 전상서'를 찍으며 본격적으로 교제했다. 


이들의 이혼 공방은 10개월을 끈 결과 10월 19일 이찬의 폭력 등이 모두 유죄로 인정돼 이찬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명령 240시간을 선고받았다. 이민영 역시 현재 임신한 올케 폭행으로 벌금 50만 원에 약식 기소돼 있는 상태다.

▲  박철.옥소리
▲박철-옥소리 부부 = 10월 전해진 서른아홉 살 동갑내기 탤런트 박철-옥소리 커플의 파경은 그들이 11년을 잉꼬부부처럼 살아왔다고 생각한 팬들에게 안타까움을 전해줬다.

그러나 협의 이혼이 아닌, 박철이 옥소리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한 사실을 두고 온갖 추측이 난무하기 시작하더니 불과 며칠 뒤 둘의 파경 원인으로 옥소리의 외도가 거론됐다. 이와 관련해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나서는 등 초유의 사태가 잇따라 벌어지면서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게다가 옥소리는 기자회견을 열고 "우연히 성악을 하는 정모 씨를 만나 3개월간 교제한 바 있다", "결혼 생활 11년 하면서 부부관계는 단 10여 차례에 불과했다"는 충격 고백으로 대중을 경악시켰다.

결국 박철은 옥소리를 간통죄로 고소했고 둘이 경찰서에 출두하는 광경이 생중계됐다. 이 과정에서 둘의 결별을 안타까워했던 대중은 "이제 그만 좀 하라"며 짜증난다는 반응을 보였다. 

▲  (고)김주승
▲탤런트 김주승 = 신장암으로 투병해오다 46세를 일기로 8월 13일 타계했다. 투병 말기 외부와 연락을 끊고 지냈던 탓에 그의 타계 소식은 사망 하루 뒤에야 알려져 더욱 안타까움을 줬다.

1997년부터 신장암으로 투병해온 김주승은 2002년 병세가 호전되는 듯했으나 올 1월 재발하면서 힘겨운 투병 생활을 해왔다. 이 과정에서 결혼 17년 만에 이혼하는 등 말년을 외롭고 힘들게 보냈다. 


1983년 MBC 공채 16기 탤런트로 데뷔한 김주승은 1980-90년대 샤프하고 핸섬한 마스크로 브라운관 인기 스타로 활약했다. '달빛가족', '첫사랑', '애정의 조건', '순심이', '야망의 세월', '연인', '여자의 남자' 등의 드라마를 통해 브라운관의 황태자로 각광받았다. 

그러다 1990년 '큰손' 장영자 씨의 맏딸 김신아 씨와 결혼하면서 드라마 제작 등 사업가로 나서기도 했다. 암을 극복한 것으로 보였던 2003년에는 한국방송연기자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2005년에는 드라마 제작사 디지털돔을 차리고 '그녀가 돌아왔다', '나도야 간다' 등을 제작했다.
 

◇체육계 

 박태환 선수 
▲'마린보이' 박태환 = 올해 한국 수영 사상 처음으로 세계선수권대회를 제패하고 월드컵에서도 3개 대회 연속 3관왕에 오르는 등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지난 3월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제12회 국제수영연맹(FINA)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남자 자유형 400m에서 3분44초30으로 터치패드를 두드려 장거리 최강자로 군림하던 그랜트 해켓(호주)을 제치고 당당히 금메달을 걸면서 한국 수영 역사를 새롭게 썼다. 

박태환은 또 올해 전국체전에서 자유형 100m 한국 신기록을 작성하며 스프린터 가능성을 보였고 지난달 호주-스웨덴-독일로 이어진 경영 월드컵시리즈에서는 3회 연속 3관왕의 위업을 이뤘다. 

`국민 남동생' 별명까지 얻은 박태환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자유형 400m와 1,500m 2관왕 달성을 목표로 강도 높은 훈련으로 담금질을 하고 있다. 

▲   김연아 선수
▲'피겨 요정' 김연아 = 지난해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우승하며 국제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한 뒤 올해에도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갔다. 

올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실력을 인정받는 김연아는 허리 통증을 치료하면서 날개를 달아 11월 중국 하얼빈에서 열린 3차 그랑프리 피겨 여자싱글에서 짜릿한 역전 우승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김연아는 여세를 몰아 러시아에서 개최된 5차 그랑프리에서도 시즌 최고 점수를 받으며 두 개 대회 연속 우승에 성공하며 그랑프리 파이널 진출권을 따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집중 훈련을 해온 김연아가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강력한 라이벌인 아사다 마오(일본)를 따돌리고 정상에 오른다면 파이널 2연패 위업을 달성한다. 

▲ 김성근 프로야구 감독
▲김성근 감독 = 프로야구 SK 와이번스 감독을 맡아 한국시리즈에서 만난 두산 베어스를 4승2패로 따돌리며 2000년 창단 이후 첫 우승컵을 안겨주고 개인적으로도 생애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지휘해 명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김 감독은 1984년 OB(현 두산) 사령탑을 맡으면서 감독으로 데뷔한 뒤 태평양(1989∼1990년), 삼성(1991∼1992년), 쌍방울(1996∼1999), LG(2001∼2002) 등을 지휘했지만 2002년 한국시리즈 정상 길목에서 삼성에 덜미가 잡히는 등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김 감독은 올해 SK 감독으로 취임해 치열한 주전경쟁을 통해 전력 시너지 효과를 냈고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데이터 야구'로 한국시리즈에서 마침내 첫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김 감독은 아시아 4개국 챔피언이 맞붙은 코나미컵 시리즈에서 일본 우승팀 주니치 드래곤스를 꺾는 이변을 연출한 뒤 결승에서 주니치에 우승컵을 아깝게 내줬지만 그의 리더십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  신지애 프로골퍼
▲프로골퍼 신지애 = 프로 2년차인 올해 국내 18개 대회에 출전, 9개의 우승컵을 쓸어 담았다. 

승률 50%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남긴 신지애는 다승왕과 KLPGA 대상은 물론 상금왕(6억7천450만원)과 최저타수상(70.02타)까지 휩쓸며 그야말로 `지존'의 자리에 올랐다.
 

2006년부터 정규투어에 출전한 신지애는 33개 대회만에 통산 상금 10억4천800만원을 벌어들여 이전 정일미(8억8천600만원)의 기록을 갈아 치웠다. 한 시즌 아홉차례 우승도 이전에 없었던 기록이다. 

270야드를 넘나드는 드라이버샷과 컴퓨터 아이언샷은 페어웨이나 그린을 거의 놓친 적이 없었고 19세라는 나이답지 않게 위기를 극복하는 노련함은 다른 선수들을 숨죽이게 했다. 

그는 LPGA투어 메이저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 6위에 오른데 이어 에비앙마스터스에서 공동 3위를 차지하는 등 세계 상위 랭커들과 대결에서도 밀리지 않는 기량을 보여줬다.


▲  허정무 국가대표팀 감독
▲허정무 감독 = 7월 말 아시안컵을 마치고 사의를 표명한 핌 베어벡(네덜란드) 감독의 후임으로 7년만에 대표팀 지휘봉을 다시 잡게 됐다. 

1998년 성인 대표팀과 올림픽 대표팀을 한꺼번에 지휘한 허 감독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2승1패의 준수한 성적표에도 불구하고 8강 진출에 실패한 데다 같은 해 레바논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도 준결승에서 주저앉아 대표팀 지휘봉을 반납해야 했다.

전남 진도에서 태어난 데다 선수 시절부터 강한 승부근성으로 '진돗개'란 별명을 얻은 허 감독은 프로축구팀 전남 드래곤즈를 이끌며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FA컵을 2연패하는 등 단기전에 강한 면모를 보여왔다.

대한축구협회가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 외국인 지도자와 우선 협상을 벌이다가 막판에 불발되는 바람에 허 감독이 '차선책'으로 낙점된 느낌도 없지 않지만, 거스 히딩크 감독을 시작으로 7년 동안 외국인 감독이 맡아왔던 대표팀을 오랜만에 국내 지도자가 이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북한

▲ 김영일 북한 내각총리
▲김영일 내각 총리 = 해운대학 졸업 후 육해운성 말단 직원으로 출발해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총리로 임명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항해기사 자격을 갖고 있는 해운 전문가 출신으로 1994년부터 올해까지 육해운상(장관)으로 재직해 왔다.


그가 경제분야에서 오랫동안 전문 경력을 쌓아온 부총리들을 제치고 총리에 발탁된 데 대해 다소 이례적이라는 평가도 나왔었다. 

그러나 육해운상 시절인 2005년 남포항에 수만t급 선박을 여러 척 동시 수리할 수 있는 령남배수리공장과 대형컨테이너선을 댈 수 있는 부두를 완공한 것 등으로 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임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 2007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의 최고 실세중 하나로 부각된 인물. 대남 분야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양팔' 역할을 한다고 할 정도로 막강한 실력자다. 

김 부장은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간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북측 주역일 뿐 아니라 회담에 북측에선 유일하게 배석하고, 선언문 서명식에도 참가하는 등 김 위원장의 최측근임을 과시했다. 

김일성종합대학 졸업 이후 노동당 국제부에서 말단 부원으로 시작해 과장, 부부장, 부장으로 승진한 정통 당 관료이며, 핵문제로 부시 미 행정부와 대립하고 있는 2000년대 들어 국제부장과 국방위원회 참사를 겸임하면서 줄곧 김 위원장의 외교브레인 역할을 수행했다.

아부와 사심을 모르고 매너가 있으면서도, 성실하고 꼼꼼한 업무 스타일이라는 게 고위층 탈북자들의 설명이다. 

▲박의춘 외무상 = 30여 년 넘게 외교관으로 활동한 전문 외교관료로서 지난 5월 임명됐다.

1998년 4월부터 2006년 9월까지 8년여에 걸쳐 러시아 주재 대사를 역임하면서 두 차례에 걸친 김정일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을 치러냈다. 그가 러시아 대사로 활동한 기간 북한과 러시아 관계가 옛 소련의 해체 이래 어느 때보다 돈독해졌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오랫동안 외교관 생활을 했을 뿐 특별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측근 인물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그러나 지난 8월 마닐라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회의 때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을 대신해 참석한 존 네그로폰테 부장관과 만나 비핵화 추진 방안을 협의함으로써 국제무대의 조명을 받았을 뿐 아니라, 앞으로 북핵 6자 장관회담이 열리거나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북한을 방문할 경우 상대역으로 더욱 각광받을 전망이다. 


▲  사망한 백남순 전 북한 외무상
▲백남순 전 외무상 = 1월2일 폐암으로 숨졌다. 향년 77세. 외교 관료라기보다 남북관계에 더 정통한 '대남통'으로 평가받았었다.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대외문화연락협회 부위원장과 1974년 폴란드 주재 대사를 지냈지만 기본적으로 백남준이라는 가명으로 남북회담에서 더 낯익었던 인물이다.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자문위원으로 활동했고 1984년에는 북한 적십자사의 수해구호물자 인도 대표로 남측을 방문했으며, 1990년 9월부터 남북고위급회담에 정무원 참사실장 자격으로 빠짐없이 참가했었다. 

셋째 아들 백룡천 내각 사무국 부장이 지난달 열린 남북 총리회담에 참가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북송 비전향장기수 리인모 = 1993년 3월 판문점을 거쳐 북송된 최초의 비전향 장기수. 89세를 일기로 6월16일 숨졌다. 

북한군 문화부 소속 종군기자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붙잡혀 34년간 복역한 뒤 1988년 출소했으며 5년 후 '장기 방북' 형식으로 북한으로 송환됐다.

북송 당시 건강이 좋지 않아 북한 고위간부들이 사용하는 전용병원인 봉화진료소에서 치료를 받았으며 1996년 5월에는 진료차 미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북송 후 '의지와 신념의 화신', '통일의 영웅' 등으로 불리며 특별 대접을 받아왔다. 

▲  (고)임사준
▲도예가 임사준 = 우치선(2003년 사망)과 함께 북한 청자 제작의 양대 산맥을 이룬 인물. 80세를 일기로 4월 19일 숨을 거뒀다. 

14세부터 도예를 시작해 평양미술대학 공예과를 졸업하고 만수대창작사 도자기창작단에서 활동했으며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의 특성을 과학적으로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표작은 '잉어장식부각꽃병', '모란상감장식무늬꽃병', '목화련합무늬꽃병' 등. 그의 작품에 대해 북측은 민족적 특성은 물론 현대성이 구현된 도자기를 창작했다는 평을 붙였다. 남한에서도 2001년과 2004년 그의 작품 일부가 전시되기도 했다. 
 
아들인 경익.광익 씨가 만수대창작사에서 고려청자 제작의 대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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