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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숭겸(申崇謙) 장군. 평산 신씨 시조로... 장절공(壯節公) 신숭겸 장군 묘를 찾아서

보도국 신종철 기자 | 기사입력 2017/09/18 [19:24]

신숭겸(申崇謙) 장군. 평산 신씨 시조로... 장절공(壯節公) 신숭겸 장군 묘를 찾아서

보도국 신종철 기자 | 입력 : 2017/09/18 [19:24]
▲     © 보도국 신종철 기자


[플러스코리아타임즈=신종철 기자] 이번에는 쓴 지 1080년 된 묘를 찾았다.

신숭겸(申崇謙) 장군. 평산 신씨 시조로 시호는 장절공(壯節公), 고려 개국 일등공신이다. 서기 927년 대구 팔공산 전투에서 후백제 견훤과 싸우다 태조 왕건 대신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강원도 춘천시 서면 방동1리. 경춘국도를 따라 북으로 가는 길은 눈 들어 보이는 곳마다 절경 아닌 곳이 없다. 그 중에서도 의암호를 끼고 도는 호반 길은 차에서 내려 차라리 걷고 싶은 호젓한 숲으로만 이어진다. 길섶의 코스모스와 올망졸망 피어오른 물안개가 절묘하다.

 

이곳 장절공 묘를 처음 찾았을 때는 깜짝 놀랐다. 한 사람의 묘에 봉분이 세 개다. 내력을 알고 나서도 섬뜩한 마음은 가시지 않고 사람이 사람한테 충성한다는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여러 번 반추하게 되었다. 그의 묘는 강원도 기념물 제26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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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절공이 살던 시기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난세 중의 난세였다. 후삼국 시대다. 천년 사직의 신라는 망조가 들어 방방곡곡에서 지방 호족들이 군사를 일으켰고 걸핏하면 중앙 정부를 위협했다. 왕실도 기강이 무너져 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면 다른 사람이 그 왕을 또 죽이고 새로 왕위에 오르던 때다.

 

이즈음 걸출한 인물 셋이 있었으니 견훤, 궁예, 왕건이다. 세력이 비슷하여 틈만 나면 싸우는 게 일이었다. 우리 역사에서 유일한 전국시대다. 신숭겸은 홍유, 배현경, 복지겸 등과 궁예의 태봉(후고구려)을 뒤엎어 버리고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를 개국(918년)한 공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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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궁예가 세운 나라인 태봉의 기장으로 있다가 궁예의 폭정이 날로 심해지자 뜻을 같이하는 신하들과 함께 궁예를 축출하기로 하고 왕건에게 점술가의 예언을 설명하면서 거사를 권한다.

 

서기 927년 후백제는 군사를 이끌고 경주를 침범했고, 왕건은 신라를 도와 후백제와 싸우려고 5천명을 거느리고 후백제를 공격하였으나 팔공산 공산의 미리사 부근에서 병력이 열세하여 대패하고 말았다.

 

신숭겸은 국가의 장래를 위해 왕건과 자신의 외양이 닮은 점을 이용하여 갑옷을 바꿔입고 태조를 탈출시킨 후, 스스로 적진을 향해 돌격했다.

 

후백제군은 장군을 태조로 오인하여 집중 공격을 가하였고, 신숭겸이 전사하자, 그의 목을 베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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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아우로 아끼던 신숭겸의 죽음을 슬퍼한 태조는 그의 공을 기려 후백제군이 베어간 그의 머리 대신에 순금으로 머리를 만들어 후하게 장례를 지냈다.

 

그리고 금으로 만들어진 그의 머리가 도굴될 것이 염려스러워 춘천, 구월산, 팔공산에 똑같은 묘를 만들게 했다고 전해진다. 그것도 안심이 되지 않아, 이 곳 춘천에 만들어진 봉분은 3개다.

특히 춘천의 이 묘역은 도선 국사가 왕건을 위해 잡아준 자리였다고 한다. 그러나 왕건은 자신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택한 신숭겸을 위해 그 자리를 내주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숭겸의 충성은 고려는 물론 조선 때까지 충신의 표상으로 받을어졌으며, 고려 16대 예종은 신숭겸, 김낙 두 장군을 추모하기 위해「도이장가(悼二將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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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역 입구의 홍살문을 지나 멀리 보이는 신숭겸의 세 봉분을 향해 걸어가면서, 묘지 주위 하늘을 향해 뻗은 소나무 군락지가 가슴 찡하게 다가온다. 푸르른 소나무는 신숭겸 장군의 변치않는 충심을 대변하는가.

 

대학 시절 배낭여행의 첫 목적지 괘릉의 인상적이었던 소나무가 머릿속에서 오버랩 됐다.

경주시내와 떨어진 외딴 곳이라 방문객이 적어 그 한적함도 좋았지만 봉분 주위로 자태 빼어난 소나무들이 무덤을 한껏 위엄있고 멋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소나무가 아닌 다른 수종으로 이런 분위기를 뿜어낼 수 있을까. 상상이 잘 안 간다.

옛 충신의 넋이 깃든 묘소를 뒤로하면서, 현재까지도 봉분을 보살피는 듯한 소나무의 정신을 기억함과 함께 후손에게도 이 감흥을 남겨주고 싶다


9회말 2아웃에도 포기를 모르는 야구선수들처럼,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책임감 있는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강심장’을 가슴에 품고, ‘런닝맨’처럼 취재현장을 뛰어, 독자들에게 웃음과 ‘힐링’을 선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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