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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규 단편소설] 하얀도화지 5회

박종규 소설가 | 기사입력 2015/10/22 [09:54]

[박종규 단편소설] 하얀도화지 5회

박종규 소설가 | 입력 : 2015/10/22 [09:54]

 

<박종규 단편소설> 하얀 도화지 (5회)

    

    

두 사람이 청의 저녁 자리를 다녀온 이튿날, 사장님은 조 실장과 같이 온종일 전화를 기다리는 눈칩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청으로부터는 끝내 전화가 오지 않습니다. 칸막이 너머 회의실에서 들려오는 두 사람의 대화는 그러나 정겹게 들립니다.

 

“어제 분위기가 묘했지요? 사장님.”

 

“글쎄, 내가 말이 너무 많았나? 그 사람들 뜻밖에 말이 없는 편이데!”

 

“그 여 주임. 내가 주는 선물 받을 때부터 영 뭐 씹은 얼굴이던데……. 그런 느낌 못 받으셨어요?”

“조금 그렇긴 했지. 그런데 말이야, 난 또 무슨 큰 일거리라도 더 주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막상 구체적인 얘기도 안 나오고, 우렁잇속같이 그 팀장도 이상하긴 하드만!”

 

그들이 고작 밥 한 끼 얻어먹으려고 나왔을까요? 식당도 전보다는 허접스런 곳으로 잡고. 그쯤 하면 우리가 그들의 기대에 부응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들이 청렴이나 개혁을 부르짖지만 않았어도 상황이 달라졌을 겁니다.

 

청렴, 개혁 앞에 불쑥 무엇을 들이밀면 그들 자존심이나 개혁 의지를 시험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 되니까요. 그래도 우리 측에서 봉투를 준비했어야 했는지, 과연 그랬을까요? 하기는 일도 끝났는데 뭐 하려고 어렵게 시간 내서 나왔을까. 두 사람 표정이 영 풀리질 않았다는 조 실장의 말에 사장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겁니다.

 

조 실장이 음식값을 결제할 때도 여 주임은 바로 옆에 있었답니다. 그 팀장은 먼저 나갔고, 그때 사장님이 따라나가서 찔러주어야 하는 그런 상황을 만들었는데 우리 측에서 액션이 없으니. 뭐 쫓던 뭐가 된 꼴이 아니냐고 조 실장이 웃어 재낍니다.

 

“그게 맞아! 영 찜찜하게 헤어지기는 했어. 청장 줄인대도 그런 생각을 하나?”

 

“글쎄 말이에요. 일반인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돼요. 여 주임이 더 영악했어요. 암튼 잘 끝났지요, 뭐.”

 

“이 사람들 버릇 참 잘 못 들었네. 이런 게 소위 그 관행인 모양이지. 그런 것도 모르고 나는 광고에 대해서만 강의를 하고 있었으니… 참 지루하기도 했겠다!”

 

“아마 전화가 안 올 것 같아요. 다음 주에 새로운 일이 예상된다고는 했어요. 내일까지는 전화가 와야 하거든요. 만약 전화가 안 오면 우리 짐작이 맞는 것이지요.”

 

“개혁팀이라고 했는데, 설마! 혁신하자는 광고 방송을 개혁팀에서 만들면서 자기들은 그렇게들 처신하고 있다면…….”

 

“아마 그 청의 일은 앞으로, 더는 없을 것 같아요!”

 

“그렇겠지? 엄청 밀어주겠다고 들 했지만, 우리가 그들 마음을 그렇게도 헤아리지 못했으니.”

“거기 아니라도 일 많지 않습니까? 괜찮아요, 사장님.”

 

“하긴! 우린, 우리 방식이 있잖아. 우리가 언제 돈 싸들고 다니면서 일 딴 적 있었어?”

“맞아요, 사장님.”

    

이틀 뒤 뜬금없이 여 주임이 회사를 방문했습니다. 일거리를 가지고 온 것일까? 사장님과 독대한 뒤 회사를 나서는 주임의 표정은 전에 없이 부드러웠고, 사근사근했습니다.

 

그런데 사장실에 다녀온 조 실장은 입이 세 치나 나왔습니다. 정산 과정에서 여 주임은 처음 합의된 견적 금액대로 청구하지 말고, 견적금액보다 두 배나 높은 액수로 청구하라고 했답니다. 물론 그걸 다 주겠다는 것이 아니지요.

 

여차여차 한 일로 팀의 자금 조성이 필요하다는 취지랍니다. 나중에는 우리 회사가 무척 바가지를 씌운 것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지만, 혁신팀의 얼굴에 먹칠한 그 주임의 요구대로 청구할 수밖에요. 회사는 턱없이 실적이 올라가 세금만 더 내게 될 것입니다. 혁신이라니, 무늬만 혁신이지 서민 등쳐먹는 꼴은 역대 갈개발들과 뭐가 다른지. 우린 결국 우리 몸집만 한 혹을 붙여서 청구하는 수밖에 없었으니, 따지고 보면 그 혹은 직원들의 땀이고 우리 회사의 생살입니다. 개혁을 하겠다던 그들에게는 또 다른 의혹이고.

 

  TV에서는 우리가 만들어 낸 창작물이 방송을 타고 있습니다. 적은 노출에도 반응은 괜찮았고, 직원들은 어렵게 만들어 낸 작품이라서 더 뿌듯해하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지요. 물론 여 주임과 사장의 독대 이후 사흘이 지나도록 청에서는 전화가 오질 않고 있습니다. 아마도 개혁(犬革)에 정신들이 없는 모양입니다.

 

나흘째 되던 날, 나에게 접보가 들어옵니다. 청에서 우리와 경쟁했던 프로덕션에 견적의뢰가 왔다고. 그 회사는 청장이 천거했다며 턱없이 낮은 가격에 맞춰달라는 내용이라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선 경험자인 나에게 정보를 얻으려 한 모양입니다.

 

우리에게 주겠다고 낚싯밥으로 사용하던 바로 그 건이었지요. 거기에는 얼마나 큰 혹이 붙을까요. 그나저나 아직은 어린 내 가슴에도 커다란 혹이 하나 생겼습니다. 세상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의혹 말이에요.

 

(끝)

    

    

    

    

    

깨끗한 수체화(하얀 도화지 - 박종규) 

  

이 작품을 읽다 보면 계속 소곤대는 이야기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세상살이에 익숙하지 않은, 그래서 겸손한 화자는 모든 것에 자신 있게 말하기보다 낮은 톤으로 겸손하게 의문을 표시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낮은 톤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화자가 마지막까지 자신의 알고 있는 세상의 원리, 즉 옳은 것이 옳은 것이고, 선한 것이 선한 것이라는 삶의 원칙과 다른 실제 삶에서의 의문이 풀리지 않았음을 드러낸 서사적 화법이라 할 수 있다. 느낌표와 의문표를 사용해, 이해되지 않는 세상 원리를 하소연하듯 소곤대는 화자의 낮은 목소리는 밤새 들어주어야할 것 같은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갑의 위치에 있으면서 을의 입장을 이해하는 척하면서, 갑의 이익을 챙기는 관공서의 이중성과 개혁 정부 하에서 말끝마다 개혁을 외치며 딴 짓을 하는 표리부동한 태도, 을의 입장에 있는 일반 회사는 코메디 같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쩔쩔매는 불합리한 상황을 서사 화법을 통해서 잘 드러낸 작품이다.

 

마치 도화지 뒤에 많은 그림을 숨겨 놓았지만 아무것도 없는 하얀 도화지처럼, 사회 초년생이기 때문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는 세상읽기의 순수함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 -문학평론가 이덕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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