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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규 단편소설> 911, 그날 2회

박종규 소설가 | 기사입력 2015/11/27 [12:30]

<박종규 단편소설> 911, 그날 2회

박종규 소설가 | 입력 : 2015/11/27 [12:30]

 

 

 

 

<박종규 단편소설> 911, 그날 2회

 

 

재생 2.

 

사람들에게는 모두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있다. 나는 부모와 함께하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부모에게 투정부리고, 먹을 것 맘대로 사 먹는 또래 아이들은 다른 세상에서 사는 것 같았다. 내 나이가 들면서 열등감도 따라서 자라났다. 열등감은 나를 움츠러들게 하더니 차츰 다른 사람들에 대한 증오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 증오는 오히려 내 가슴에 불꽃 하나를 지펴 주었다. 열등감을 갖게 한 사람들 위에 올라서면 되는 거였다.

 

세상의 꼭대기에서 사람들 위에 서는 일! 그 꿈을 실현하려면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공부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애썼고, 보육원 원장의 관심을 얻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내게 공부는 욕망의 불꽃으로 타올랐으며, 학교에서는 ‘공부벌레’로 알려지게 되었다. 결국, 보육원 형제들로서는 꿈도 못 꿀 대학생이 되어 장학금 수혜자가 되었다.

 

TU 컴퍼니의 장학금으로 대학을 졸업한 나는 그 회사에 스카우트되었다. TU 컴퍼니는 국내 굴지의 보안관련 제품 생산업체다. 회사에서는 나의 성장배경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듯했지만, 대부분의 보육원 출신이 갖는 태생적 열등감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나의 약점을 잘 아는 김준구 사장은 내게 각별한 관심을 보이며 늘 챙겨주었다. 김 사장은 나를 아껴 주었고, 나는 그 보답으로 회사를 사랑해야만 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처세술이 필요했다. 김준구 사장은 내가 존경하는 인물이었으나 차츰 처세의 달인으로 이미지가 바뀌어간다. 그래도 그의 처세는 사회에서 지혜로 통했고, 나는 그의 지혜를 습득해 나간다. 그것은 새로운 공부였다.

 

나는 김 사장의 사진을 가슴에 품고 다닐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김 사장의 글로벌 성장전략에 맞는 인물로 가꿔 나간다. 내 부서는 실적이 월등하게 앞서기 시작하였고, 회사의 인센티브 제도는 내 빠른 진급을 도왔으며, 그 결과 입사 5년 만에 나는 부서 책임자가 된다.

 

어느 날 나는 사장과 독대하여 아프리카의 탄자니아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탄자니아는 치안은 비교적 안정되었으나 기후적인 여건이 열악해서 외국 주재원들도 회피하는 나라 중의 하나다. 김 사장은 마땅한 인물이 없다면서 넌지시 내 생각을 묻는다. 나는 가슴이 뛰었다. 물론 나 같은 신출내기에게는 부담이 갈 수밖에 없는 오지다.

 

그러나 탄자니아를 장차 아프리카 진출의 교두보로 삼고자 하는 김 사장의 의중을 꿰뚫어 본 나는 적극적으로 아프리카 발령을 요청한다. 김 사장은 서서히 내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분위기다. 그리고 대화의 말미를 호의적으로 이끈다.

 

“한 부장도 국제 감각을 체득할 때가 되었어. 좋은 기회긴 해.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다면, 자넨 아직 신혼 초기란 말일세. 아이도 너무 어리고…….”

 

김 사장이 우려하는 것은 일리가 있었다. 나는 부서장이 되기 전 장수아와 혼례를 올렸다. 내 목표를 위해서라면 해야 할 일을 미뤄 둘 이유가 없었다. 나는 그녀와 결혼하고 나서야 책임을 다했다는 생각을 했다. 내게 가정은 상상도 못할 먼 곳의 꿈같은 것이었다. 내가 혼자였기 때문에 그만큼 간절한 소망이었는데, 그 소망이 꿈처럼 실현된 것이다. 이젠 출퇴근하는 길이 즐거웠으며 어린 딸은 작은 울타리에 핀 소중한 꽃이었다.

 

돌을 갓 넘긴 딸과 함께 나는 아프리카의 먼 나라에서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그곳이야말로 내가 키워 온 꿈의 디딤돌이라 생각했기에 늘 그날을 준비해 왔고, 나는 모처럼 큰 계단을 오르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아프리카에는 수많은 풍토병이 외지인들을 노리고 있었다. 모기와 파리, 들쥐, 습도와 더위, 청결하지 못한 도시환경, 석회질이 많은 물 등, 현지 적응이 되기까지 많은 외국인이 풍토병의 위험에 노출되고 있었다.

 

아내가 된 수아는 낯선 탄자니아에 새살림을 차리고 나서 넉 달째 접어들면서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내가 회사 일로 집을 비우는 시간에 그녀는 열이 높았다가 다시 회복되기를 반복했다. 수아도 처음에는 별것 아닌 것으로 여겼다.

 

더구나 밤낮없이 분주한 내게 감기증상 정도를 가지고 말을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수아는 악성 풍토병에 걸린 환자라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 열대열 말라리아였다. 수아는 급격히 혼절하기 일쑤였고, 급기야 다렌살램의 큰 의료 기관에 입원했으나 이미 시기를 놓친 뒤였다.

 

나는 뒤늦게 업무를 팽개치고 대사관으로, 병원으로, 교민회로,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수아 만 살릴 수 있다면 세상의 모든 것을 내줘도 좋았다. 가장 가까운 한인교회에 나가 난생처음 기도를 하며 울부짖었다. 수아를 잃는다는 것은 내가 가장 소중하게 일궈낸 것을 잃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서서히 수아를 죽이고 있었다.

 

수아를 살릴 수 없는 의술의 한계가 원망스러웠다. 내가 생명공학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이 시기였다. 사람을 보호하는 산업에서 질병을 다스려 사람의 수명을 연장하는 산업으로 가야 한다는 새로운 비전, 그것이 생명공학이었다. 수아는 나의 마지막 목표를 제시해 준 셈이었다. 아내는 결국 한 살배기 어린 딸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신혼의 단꿈이 여물기도 전에, 나에게 기회의 땅이었던 이곳은 그녀에게는 주검의 땅이 되어버린다. 그 일은 너무 갑자기, 어처구니없이 일어났다. 나를 살려 주었던 수아를 내가 죽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심한 자책에 시달리면서 수아가 덮어주었던 태생적인 상실감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내 팔이, 내 가슴이 떨어져 나간 다음부터 나는 아무것도 입에 대질 않았다.

 

온 종일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누워 있는가 하면, 하염없이 어린 딸 다미를 보면서 얼굴도 모르는 내 어머니를 떠올렸다. 원망스러운 어머니! 그 어머니에 대한 원초적 그리움이 울컥 솟았다. 수아는 자기를 책임지라고 했다. 책임을 지기는커녕 사지로 내몰고 말았다.

 

장수아는 차가운 짐이 되어 발밑 화물칸에 누워 있다. 타원형 창문 밖으로는 아프리카의 노을이 핑크빛 구름파도를 만들어 낸다. 그 끝점에서 해맑은 빛이 난사되어 나의 동공에 쏟아져 든다. 그러나 빛은 곧 구름파도 밑으로 가라앉는다.

 

동시에 기이한 어둠이 순식간에 기내에 들어찬다. 내 앞으로 밝은 빛줄기가 다시 쏟아져 들어 아른거린다. 그 빛은 반짝이는 작은 황금색 알갱이들로 이루어졌는데 그 가운데서 수아가 홀연히 나타난다. 나는 반가움과 놀라움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 하나 무엇인가가 묵직하게 무릎을 내리누르는 것 같다.

 

“수아…….”

 

간신히 그녀를 부르자 수아는 쓸쓸한 미소를 짓는다.

 

“다미 아빠……. 너무 높이 올라가지는 마.”

 

잔잔한 소리의 물결이 그녀로부터 맑고 곱게 흘러든다. 조심스럽다. 조금만 잘못하면 놓쳐버릴 것 같아 작은 소리로 묻는다.

 

“뭐라고?”

 

“너무 높이 올라가지는 말아요…….”

 

수아는 황금빛 알갱이에 싸여 구름파도 속으로 사라져가지만, 그녀가 남긴 말은 소리파도를 타고 가슴 속으로 잔잔하게 스며든다. 수아는 어디로 가는지, 더 멀어지기 전에 물어야 할 것 같다. 나는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묻는다.

 

“……왜?”

 

수아의 예쁜 음성은 아직도 좁은 기내를 떠다니다가 차츰 멀어져 가는 듯하다. 너무 높이 올라가지 말아, 무슨 의미일까? 지금 나는 비행기 안에 있다. 기내는 밝다. 그러나 창 밖에는 어둠이 짙게 깔려서 어떤 공간을 비행하는지 분간이 안 간다. 마치 비행기 동체 밖에 있다가 순간이동으로 기내에 들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인다. 황금빛에 싸였던 수아. 아! 내 사랑.

 

나의 품에는 어린 딸 다미가 곤히 잠들어 있다. 다미의 부드러운 뺨을 어루만지는 손끝에 작은 경련이 일어난다. 의욕을 가지고 미지의 땅에 왔다. 먼저 입국하여 애쓰고 있던 선배 직원들 마음 다치지 않도록 배려해 가며 온 힘을 다해 지사의 틀은 다져 가고 있었다.

 

이제 성과가 나타나는 시점이었다. 그때 나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 수아는 아내 이상의 존재였다. 마지막 운명하던 수아의 모습이 떠오른다. 부들부들 떨면서 손을 놓지 않았던 수아. 끊길 듯 이어지는 숨을 모아 그녀는 힘겹게 말했다.

 

“당신 꿈… 같이 못 할 것 같아… 여보, 미안해…….”

 

그녀는 숨을 거두고 나서도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때 빛 가운데서 수아가 했던 말이 뇌리에 스친다.

 

“너무 높이는… 올라가지는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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