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장수왕의 남진정책은 어디가 목표인가?

"고구려 장수왕은 내몽고에서 산서성으로 남진했다"

심제(心濟) | 기사입력 2008/07/06 [11:04]

장수왕의 남진정책은 어디가 목표인가?

"고구려 장수왕은 내몽고에서 산서성으로 남진했다"

심제(心濟) | 입력 : 2008/07/06 [11:04]



 
427년 고구려 장수왕의 평양 천도 및 남진정책 ...남진해서 진출한 최남단 지역은 어딜까?
고구려의 하북성 및 산서성 태원 공략 ...
연개소문의 태원부근의 고려산.. 내몽골에 깔린 수많은 고려지명 ,고려 호수명

지리지형을 보면 황하 하류지역인 하북에서 상류지역인 산서를  공격한다는 논리는  서울에서 개마고원지대를 공격하는 꼴 ,..
해발 1미터 지대에서 평균고도 2200 미터 지대를 기마로 공격하거나 황하나 지류를 함선으로 거꾸로 올라 간다는 것은 지형적 해석으로 보아서 고대 목재함선에 디젤엔진과 스크류 달고 공격하여야 하는것과 같다.

중국대륙의 지형도와 수계를 보고 사서나 원전의 뜻을 파악해야 할것인데.  
특히 내몽고 수도 <호화호특시>는 수원성의 수도이자 초원지대 근방에서는 최고의 역사도시 .. 그리고 청나라 왕조가 시작된 정신적 지주가 된 지역.

고구려는 고원지대  국가로서 정복왕조 및 기마국가로서 호화호특시에는 고조선,신라,백제 ,가야로 유입된 고대 문화유물이 대량으로  출토되고 형식도 같다.
고구려에서 전략적으로 동남진한 지역이 하북,산서,요녕...길림


고구려 왕과 귀족,백제왕들의 무덤이 하남성에서 발굴되어지는데 唐시기 망한 고구려의 유민을 소개시킨 지역이 감숙과 녕하지역 이라도 보장왕과 왕족들의 무덤 위치는 우리가 알고있는 하북 고구려 지역에서 너무 멀다. 

(부연 설명)
오르도스라고 불리우는 지역이 바로 황하가 지나는 최북단 산서성과 내몽고가 지나는 넓은 목초지인데 흉노가 한나라를 괴롭히던 지역인데 이곳에서 고조선, 고구려, 신라. 가야의 문화원형들이 다량으로 발굴되고 그 현장을 전 역사학과 단국대 이모교수도 동행하여 확인했던 지역이다. 개인적으로도 몇 가지 사진을 갖고 있는데 한민족 문화의 원형이라 판단된다.  이곳에서 북으로 올라가면 몽골초원이 나타나고...
고구려는 원래 기마민족이며 음산산맥 고원지대에서 길림에 이르는 동진과 산서성 남단에 이르기까지 영역을 넓혔다고 판단이 된다. 그것은 지형적/지리적 우위를 갖고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이 되고 그것을 증명이나 해주듯이 1990년대 이미 박창범교수가 고구려의 일식관측지역이 현재 서쪽지점인 내몽골에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  고구려 일식의 최적관측지는 내몽고 일대.

고구려는 평원을 내달려서 산서성 태원으로 올라간것이 아니라 오르도스 초원에서 남으로 산맥지역을 타고 공격했을 것으로 판단이 된다. 길림이나 요녕성에서 태원을 공격하려면 태행산맥을 거슬러 올라가야 되는데 합리성이 떨어진다.

마지막으로 청나라도 황태극(청태종)이 만주를 근간으로 만주에서 하북으로 진출하여 청나라를 건국했지만 그 근원은 몽골과 원나라의 지배지역을 기반으로 몽골과 연합하여 그 서북지역을 넓혔고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이룩했는데 그 기반지역이 바로 오르도스 수원성이다. 수원성은 원래 그 수도를 귀수라 했는데 거란과 원의 상도성이 있는 지역이다. 거란은 고려와 나중에 금나라와 대결구도로 치달을 때 고구려의 자손임을 주장한다.

백석족이 현재 오르도스에 남아있는데 이 사람들은 청나라에서 파견해서 오르도스를 지키게끔 변방으로 보냈다고 하는데 그들이 지은 백석족 산문을 보면 과연 길림이 청나라를 건국한 만주죽의 고향인가 하는데 의심이 가는 부분이 있다.

호화호특은 필지가 확신을 가지고 있는 고구려와 고조선유물이 발굴된 지역이다. 향고도님도 지도를 많이 갖고 계신데 그분의 고려지명 찾기를 보면 림동 림서까지 옴을 볼 수 있는데 제가 찾은 바로는 호화호특까지 더 서진합니다. 여기가 바로 원나라/거란의 궁궐지가 있는 곳이고 더 이상은 밝히지 않고 있다.

고구려 사신이 돈황석굴에 그려져 있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오르도스에서 서남진하면 바로 돈황이다. 그리고 영하성 사람들이 사막지대임에도 왜 깔끔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   돈황석굴의 벽화는 고구려의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이 치양식으로 동이의 것이고, 호피 오우관의 깃털 등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포토뉴스
메인사진
울주군, 제5회 작천정 벚꽃축제 개최
1/23
연재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