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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7만년-126]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79

제12대 아한(阿漢) 천왕(天王)의 역사, [외뿔 짐승 출현- 해치(해태)]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7/12/14 [08:51]

[홍익인간 7만년-126]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79

제12대 아한(阿漢) 천왕(天王)의 역사, [외뿔 짐승 출현- 해치(해태)]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7/12/14 [08:51]

[홍익 통일 역사=플러스코리아타임즈 천산태백] 서기전1833년 무자년(戊子年) 여름 4월에 뿔이 하나인 외뿔 짐승(一角獸)이 송화강의 북쪽에 나타났다.

▲ 1890년대에 세워진 광하문 앞 해치. 해태는 순우리말 고어로서 '해님이 파견한 벼슬아치'란 뜻     © 편집부



외뿔 짐승 즉 뿔이 하나만 달린 짐승을 일각수(一角獸)라 하는데, 양(羊)과 같이 생겼다 하여 외뿔양이라고도 한다. 이 외뿔양이 바로 해치(獬豸)이다. 원래 법(法)이라는 글자는, 물의 흐름을 따라 해치(?)가 따라가는 모습을 조합한 회의문자(會意文字)로서 해치(?)를 내포(內包)하고 있던 글자인데, 이 ?(치)를 생략하여 약자(略字)로서 法(법)이라 쓰게 된 것이 된다.

해치는 고대중국의 순(舜)임금 시절에 신령스런 동물로 전하는데, 선악(善惡)을 구분하였다고 한다. 이는 곧 단군조선의 삼사오가(三師五加) 제도에서 선악(善惡)을 담당하였던 양가(羊加)의 업무와 직결된다, 그리하여 해치는 순임금 시절에 형벌(刑罰)을 담당하였던 고요(皐陶)라는 사람이 관직에 해치(?)를 사용하였던 것임을 알 수 있다. 후대 조선시대에도 법과 형벌을 관장하는 관청이 되는 사헌부(司憲府) 등에서 해치(?)를 관모(官帽)나 관복(官服)에 새기기도 하였다.

 

한편, 경복궁 앞에 화기(火氣)를 죽이기 위하여 세운 소위 해태(海?)는 현재 서울의 상징동물이기도 한데, 원래는 해치(??, ?)는 일각수(一角獸)인 외뿔양(一角羊)으로서 선악(善惡)을 구분하는 신령스런 동물이었으나, 해치(?)를 법(法)이라는 글자에서 유추하여 물(水)과 관련된 해태(海?)라고 인식함으로써 불을 진압(鎭壓)하는 신령스런 동물로 의미가 확장된 것이 된다.

 

당시 송화강(松花江)은 속말(粟末)로 표기 되기도 하며 지금의 우수리강(牛首里江)에 합류하는 강으로서, 단군조선 전기의 수도가 되는 아사달(阿斯達)이 위치한 강이며, 그 북쪽에 외뿔 짐승이 출현하였다 하는 것이다.

 

외뿔 짐승이 출현하였다는 것은 선악(善惡)과 관련된 사건이 발생하였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 되는데, 원래 일각수(一角獸)가 순임금 시절에 관직에 사용한 상징적인 동물인 바, 순(舜)임금 나라의 땅을 이어 세운 하(夏)나라에 무슨 변고(變故)가 생긴 것을 알리는 것이 될 것이다. 즉, 이는 서기전2224년에 선 하(夏)나라가 약400년이 지나면서 이때부터 망조(亡兆)가 나타난 것을 알리는 것이 된다.

 

[요하(遼河) 동쪽의 순수관경비(巡狩管境碑)]

 

서기전1833년 가을 8월에 천왕께서 나라 안을 순수하시며 요하(遼河)의 왼쪽(左)에 이르러 순수관경비를 세우고 역대 제왕(帝王)의 명호(名號)를 새겨서 전하게 하였다.

 

요하(遼河)는 지금의 요동반도에 위치한 강이 아니라, 단군조선 당시에 요중(遼中)에 위치한 강으로서 후대에 소위 요수(遼水)라 하여 요동(遼東)과 요서(遼西)의 구분을 짓는 큰 강이 되는데, 원래 북류(北流)하는 황하(黃河) 하류에 합류하던 강이 될 것이며, 북경 부근을 흐르는 지금의 영정하(永定河)가 된다.

영정하(永定河)가 원래의 요수(遼水)로서 대요수(大遼水)가 되고 영정하 중상류 지역에 합류하는 강으로서 북동에서 서남으로 흐르는 강이 청수하(淸水河)로서 소요수(小遼水)이다. 대요수의 중하류 지역이 단군조선의 군국(君國)인 고죽국(孤竹國)의 영역이 되며, 대요수의 상류지역은 단군조선의 제후국(諸侯國)인 기후국(箕侯國, 소위 箕子國)의 북부지역이자 구려국(句麗國)의 서남지역에 속하게 되고, 소요수 지역은 단군조선의 군국(君國)인 구려국(句麗國)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 된다.

 

요하의 왼쪽은 곧 요하의 동쪽이 된다. 그리하여 순수관경비가 세워진 곳은 요하의 동쪽으로서 지금의 영정하 동쪽이 된다. 이 곳은 단군조선의 발해만 유역에 있었던 번한(番韓)이 위치한 지역이다. 즉 번한은 고죽국의 동쪽, 구려국의 남쪽, 진번국(眞番國)의 서쪽에 위치한다. 진번국은 진한(眞韓)과 번한(番韓)의 사이에 위치한 단군조선의 군국(君國)으로서 지금의 요동반도 서쪽을 흐르는 요하(遼河)의 서쪽지역과 대릉하 동쪽지역이 된다. 진번의 남쪽에 임둔(臨屯)이 위치한다.

 

단군조선 시대 요하의 동쪽이 되는 번한 땅에 세워진 순수관경비의 유적을 보고 서기전220년경 인물인 창해역사(蒼海力士) 여홍성(黎洪星)이 지은 시가 고려시대 문하시중을 지내신 이암(李?)선생이 지은 단군세기(檀君世紀)에 전한다. 창해(蒼海)는 고대 중국의 북해(北海) 또는 동북해(東北海)로서 지금의 발해(渤海)를 가리키며 여홍성의 여씨(黎氏)는 산동지역의 동이족(東夷族)과 직결되는 성씨이기도 하다.

 

여홍성이 지은 시는 아래와 같다.

 

“마을 밖 변한이라 불리는 곳에,

독특하게 빼어난 변함없는 돌이 있네.

받침은 거칠어지고 철축꽃은 붉기만 하고,

글자는 허물어지고 이끼는 푸르기만 하네.

처음 다듬어져 생긴 채로,

흥망의 돌로 서 있네.

문헌에는 증거가 없을지나,

이것이 단씨의 흔적이 아니랴!

(村郊稱弁韓 別有殊常石 臺荒??紅 字沒?苔碧 生於剖判初 立了興亡石 文獻俱無徵 此非檀氏跡)

▲ 홍산문화에서 발굴된 외뿔짐승 문양의 C자형 옥기.     © 편집부



여홍성은 단군조선의 역사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던 것이 된다. 단군조선의 변한 땅이 어디인지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여홍성은 진시황(秦始皇)을 철퇴(鐵槌)로 쳐 죽이려다 부차(副車)만 부수고 실패하였던 산동지역 동이족 출신의 인물이다.

 

여홍성이 말한 변한(弁韓)은 번한(番韓)을 음차(音借)한 글자로서 서기전209년 이후 한반도 남쪽에 세워진 후삼한(後三韓)의 변한이 아니라 곧 서기전2333년부터 서기전194년경까지 단군조선의 비왕(裨王)인 번한(番韓)이 다스리던 발해만 유역에 위치하였던 원래의 번한(番韓)을 가리키는 것이다.

 

창해역사 여홍성이 보았던 단군조선 번한(番韓)에 세워진 비석은 원래의 요하(遼河), 요수(遼水)였던 지금의 북경(北京) 동쪽을 흐르는 영정하(永定河)의 중하류 지역 바로 동쪽에 세워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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