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7만년-147]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100

제22대 색불루(索弗婁) 천왕(天王)의 역사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8/01/09 [12:43]

[홍익인간 7만년-147]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100

제22대 색불루(索弗婁) 천왕(天王)의 역사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8/01/09 [12:43]

  [홍익 통일 역사=플러스코리아 천산태백] 서기전1285년 병신년(丙申年) 가을 9월에 천왕께서 친히 장당경(藏唐京)으로 행차하여 사당(묘, 廟)을 세우고 고등왕(高登王)을 제사지냈다.

 

[고등왕묘(高登王廟)를 장당경(藏唐京)에 세우다]

 

장당경(藏唐京)은 단군조선 초기부터 개사원(蓋斯原)에 위치한 이궁(離宮, 別宮)으로 존재하였던 것이 되는데,  서기전2324년경 단군조선이 유웅국(有熊國)을 이은 당요(唐堯)를 굴복시키고 안치(安置)하면서, 정기적으로 상국(上國)인 단군조선에 조공을 하는 등의 제후(諸侯)인 천자(天子)로서의 예(禮)를 갖추도록 한 곳이 된다.

 

장당경은 서기전425년부터 말기 단군조선의 수도이기도 한데, 지금의 요동반도 북쪽에 위치한 심양(審陽)이다. 심양(審陽)은 장당경, 장춘(長春)은 상춘(常春)으로서 백악산아사달, 하얼빈(哈爾濱)은 아사달(阿斯達)로서 거의 남서-북동의 방향으로 일직선으로 이어진다.

 

한편, 서기전2267년 도산회의(塗山會議) 이후에는 산동반도 남쪽에 위치한 낭야성(琅耶城)에 우순(虞舜)을 감시감독하는 관청을 설치하여 감우(監虞)라 하였는데, 정기적으로 5년에 한번씩 순회하는 상국(上國)의 사자(使者)인 진한(眞韓) 태자부루(太子扶婁)에게 우공(虞貢)의 사례(事例)를 보고토록 하여 예(禮)를 올리게 한 곳이 된다.

 

고등왕(高登王)은 고구려의 시조왕(始祖王)이기도 한데, 고등(高登)은 원래 개사원(蓋斯原) 또는 개사성(蓋斯城)의 욕살(褥薩)이었다가, 무정(武丁)이 왕으로 있던 은(殷)나라를 정벌한 공로와 강력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하여 우현왕(右賢王)에 봉해줄 것을 자천(自薦)하여, 결국 소태 천왕이 우현왕에 봉한 인물이며, 후기 단군조선의 시조가 된다.

 

[은(殷)나라를 정벌하다]

 

서기전1285년 병신년(丙申年) 겨울 11월 색불루 천왕께서 몸소 구한(九桓)의 군사를 이끌고 수차에 걸쳐 싸워 은나라 서울(京)을 격파하고 곧 화친하였으나 또 다시 크게 싸워 이를 쳐 부수었다.

 

이때 은나라 왕은 제22대 무정(武丁)이며, 당시 은나라 서울은 박(亳)으로서 지금의 안양(安陽)의 서쪽에 위치한, 은나라가 은(殷)이라는 나라로 불리게 되는 땅이다. 당시 은나라의 수도인 박(亳)은 은나라 이전까지 수도로 정한 동서남북중(東西南北中)의 수도 중에서 중(中)에 해당하는 수도인 바, 중경(中京), 중박(中亳)에 해당한다.

 

구한(九桓)은 단군조선의 전체 백성을 가리키는 말로서 구족(九族)이라는 말이고, 고대중국 측에서는 구이(九夷)라고 하였던 것이 된다. 구족(九族)은 황족(黃族), 양족(陽族), 우족(于族), 방족(方族), 견족(畎族), 현족(玄族), 백족(白族), 남족(藍族), 적족(赤族)이다.

 

한편, 고대중국의 백성은 9족 중에서 극히 일부의 황족(黃族)과 극히 일부의 백족(白族)으로 구성되었다가, 하은주(夏殷周)의 후대에 내려오면서 북쪽의 북적(北狄) 또는 북융(北戎)이라 불리는 황족(黃族), 동쪽 산동지역의 동이(東夷)에 해당하는 황족(黃族)과 남족(藍族), 남쪽의 남만(南蠻)이라 불리는 적족(赤族), 서쪽의 서융(西戎) 또는 서이(西夷)라 불리는 백족(白族)의 일부가 더하여 이루어진다.

 

[황하(黃河)와 회대(淮岱)의 땅을 평정하고 승전축하(勝戰祝賀) 잔치를 벌이다]

 

서기전1284년 정유년(丁酉年) 봄 2월에 색불루 천왕께서 은(殷)나라 군사들을 추격하여 황하(黃河) 주변에 이르러 승전(勝戰)의 축하를 받고, 변한(弁韓)의 백성들을 회대(淮岱)의 땅으로 옮겨 그들로 하여금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짓게 하니 나라의 위세가 떨쳐졌다.

 

은나라의 서울을 격파한 후 다시 추격하여 황하 주변에 이르러 승전의 축하를 받았다는 것이 되는데, 은나라 무정(武丁) 당시 은나라의 서울은 황하의 북쪽에 위치한 박(亳)이 되는 것이다. 은나라는 처음 박(亳)을 수도로 삼았다가 홍수로 인하여 수도를 동서남북으로 다섯 차례나 옮겼는데, 이 박(亳)을 다시 수도로 삼은 것은 서기전1402년경 후기 은나라를 시작한 제19대 왕인 반경(盤庚)이다.

 

여기의 변한(弁韓)은 번한(番韓) 대신에 사용한 용어가 된다. 회대(淮岱)는 회수(淮水)와 대종(岱宗)이라는 산(山)인 태산(泰山) 사이의 땅을 가리킨다.

 

회대(淮岱)지역은 서기전2700년경 배달나라 제14대 치우(蚩尤)천왕이 수도를 청구(靑邱)로 옮기고 평정한 땅이며, 소위 요순시대 9년 대홍수의 치수를 위한 서기전2267년 도산회의(塗山會議) 때 단군조선의 사자(使者)로서 도산회의를 주관하러 갔던 태자부루가 번한(番韓) 낭야(琅耶)에게 명하여 천제(天祭)를 지내게 한 곳이 태산(泰山)이며, 치수 관련 회의를 연 곳이 도산(塗山)으로서 회수(淮水)의 하류에 위치한 산이다.

 

태산(泰山)은 산동의 서쪽에 위치하여 그 동쪽이 산동지역이 되는데, 사공(司空) 우(禹)가 도산회의 이전에 치수에 힘쓰던 중 올랐던 동서남북 사방의 큰 산 즉, 화악태형(華岳泰衡)이라 불리는 산 중에서 동쪽에 해당하는 산이 된다. 서쪽에는 서안(西安) 부근에 위치한 화산(華山)이 있고, 북쪽에는 북악(北岳)이라 불리는 항산(恒山)이 있으며, 남쪽에는 사공 우가 치수를 끝내고 그 정상(頂上)에 치수기념비를 세웠다는 양자강 남쪽에 위치한 형산(衡山)이 있다.

 

▲ 천군(天君) 관련 기사가 있는 금문(金文)     © 천산태백

 

 

소위 금문(金文)에 천군(天君)이라 기록하며 술통인 준(樽)에 관한 기사가 있는데, 이 천군(天君)이 여기 서기전1284년 2월경 황하주변에 이르러 승전축하 잔치를 벌인 색불루 천왕(天王)을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서기전909년 청구에 이르러 서쪽으로 엄독홀에서 제후들과 제천행사를 벌이고 주(周)나라와 수교를 맺은 제30대 내휴(奈休) 천왕을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제후국 중 군군(君國)인 고죽국(孤竹國)이나 청구국(靑邱國) 또는 남국(藍國) 등의 임금을 가리키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단, 서주시대의 금문인 점과 고죽국 관련 금문임을 고려하면 여기 천군은 단군 천왕(天王)이나 고죽군(孤竹君)일 가능성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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