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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7만년-181] 단군조선 군후국(君侯國)의 역사 4

단군조선(檀君朝鮮)의 군후국(君侯國) 2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8/02/15 [20:50]

[홍익인간 7만년-181] 단군조선 군후국(君侯國)의 역사 4

단군조선(檀君朝鮮)의 군후국(君侯國) 2

천산태백 역사전문위원 | 입력 : 2018/02/15 [20:50]

[홍익 통일 역사=플러스코리아 천산태백]단군왕검 천왕(天王)이 태자(太子) 부루(扶婁)를 진한(眞韓)으로 봉한 것이 된다.

 

[삼한(三韓)]

 

1) 진한(眞韓)

 

단군왕검 천왕이 태자부루를 언제 진한(眞韓)으로 봉하였는지는 불명이나, 서기전2333년에 마한(馬韓)과 번한(番韓)을 봉한 이후에 서기전2324년경 천사(天使) 유호씨(有戶氏)로 하여금 요(堯)를 토벌토록 파견한 때, 태자부루를 진한으로 봉하여 섭정케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태자부루는 약20세가 될 것이다. 유호씨의 장자(長子)인 순(舜)이 서기전2343년생인데 태자부루와 엇비슷한 나이가 된다고 본다. 한편, 단군왕검은 14세때부터 단웅국(檀熊國)의 비왕(裨王)으로 섭정하였다고 기록된다.

 

진한(眞韓)이란 말은 “참 왕” 즉 왕 중의 왕이라는 말이다. 마한은 남쪽의 왕이라는 말이며, 번한은 번(番) 즉 차례를 서서 경계를 하는 왕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진한은 마한과 번한을 거느리는 통솔의 왕이라는 뜻이 된다. 진한(眞韓)을 진한(震韓) 또는 진한(辰韓) 또는 진한(秦韓)이라 적기도 하는데, 이는 진한(眞韓)의 진(眞)과 같은 소리의 글자로 적은 용어가 된다. 신한(辰韓)이라고도 읽어 세력이 가장 강한 왕이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있기도 한데, 참왕이라는 말이 원래의 뜻이 될 것이다.

 

태자부루는 진한(眞韓)으로 봉해진 이후 제2대 천왕으로 즉위할 때까지 즉 서기전2241년까지 섭정(攝政)한 것이 되며, 천왕으로는 58년간 다스렸다. 단군왕검은 130세를 사셨고, 태자부루는 서기전2343년경생이면 서기전2183년에 돌아가셨으니 약160세를 사신 것이 된다.

 

단군왕검은 서기전2370년 탄생하여 배달나라의 천군(天君)으로서 서기전2333년 38세에 조선(朝鮮) 개국시조(開國始祖)가 됨으로써 천왕(天王)이 되셨고, 서기전2324년경 48세경에 태자부루를 천왕격인 진한(眞韓)으로 봉함으로써 천왕(天王)의 상제(上帝)인 천제(天帝)로 받들어진 것이 된다.

 

진한관경(眞韓管境)은 제후국이 아니며 천왕이 직접 다스리는 나라로서, 마한과 번한이나 다른 군후국들의 상국(上國)이 된다.

 

진한관경은 북보(北堡)로서의 역할을 하며, 단군조선 중앙이 되는 태백산의 천부단(天符壇)에 모신 삼신(三神)을 대리하는 천왕(天王), 천제(天帝)가 다스리는 나라이고, 태자부루가 제2대 천왕이 된 후에는 진한(眞韓)을 따로이 봉하지 않고 천왕으로 흡수된 것이 되며, 이후 진한(眞韓) 또는 진조선(眞朝鮮)은 마한(馬韓)과 번한(番韓)을 좌우로 거느린 상국(上國)으로서 천왕국(天王國)이 된다. 천왕의 아래인 마한(馬韓)과 번한(番韓)은 천왕격의 비왕(裨王)이 된다.

 

진한의 관경은 마한관경과 번한관경을 제외한 모든 땅이 되는데, 파미르고원 동쪽으로 보면, 지금의 한반도는 마한관경이며, 발해만유역과 산동지역은 번한관경이 되고, 그 외의 지역이 모두 진한관경에 속하는 것이 된다.

 

즉, 진한관경에는 구려(句麗), 진번(眞番), 부여(夫餘), 숙신(肅愼:方夷), 예국(濊國:于夷), 개마(蓋馬:陽夷), 흉노(匈奴), 몽고리(蒙古里), 남선비(南鮮卑), 여국(黎國), 기후국(箕侯國), 현이(玄夷), 견이(畎夷=犬戎), 백이(白夷=西夷=西戎), 적이(赤夷=南蠻) 등이 모두 포함되는 것이 된다.

 

한편, 고대중국의 당요(唐堯), 우순(虞舜)은 단군조선 중앙조정의 관할하에 있었던 것이 되며, 하은주(夏殷周)는 원칙적으로 번한(번조선)의 관할하에 있었던 것이 된다.

 

서기전2324년경에 단군조선이 당요를 굴복시켜 부여(夫餘) 땅인 장당경(藏唐京)에 안치하였던 것이 되며, 서기전2267년 도산회의 때 번한관경인 산동지역의 가한성(可汗城:낭야성)에 감우(監虞)라는 관청을 설치하여 5년마다 진한 태자부루의 순행시에 우순으로 하여금 단군조선에 조공을 하는 우공(虞貢)을 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하은주(夏殷周)는 번한(番韓)이나 마한(馬韓)이 지내는 천제(天祭)를 돕거나 조공을 올리거나 새해인사를 올리는 등 번한과 마한을 상국(上國)으로 모신 것이 된다.

 

지금의 일본 땅인 본주(本州, 혼슈)의 북동지역과 북해도(北海島, 홋가이도)는 단군조선 시대에 진한(眞韓)관경에 속하는 것이 되는데, 단군조선의 4보(堡) 중에서 동보(東堡)의 역할을 하던 예국(濊國)이 관할하던 땅이 되고, 단군조선의 유배지(流配地)로 사용되었던 곳이 된다. 한편, 구주(큐슈), 본주(혼슈)의 남서지역은 마한(馬韓)관경에 속하였던 것이 된다.

 

진한(眞韓)의 수도는 송화강 유역에 있는 아사달(阿斯達)로서 지금의 하얼빈(哈爾濱)이며, 숙신(肅愼)의 땅에 있어 숙신이 조선(朝鮮)의 대칭(代稱)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서기전1285년 이후에는 수도가 북부여 땅인 상춘의 백악산아사달에 있었으므로 부여(夫餘)가 조선의 대칭이 되기도 한 것이 된다. 하얼빈은 어원상 하늘물가(하ㅇ얼 물가, 天河)라는 말을 이두식 표기로 쓴 것으로 보인다. 하얼빈이 만주어로 영광의 땅이라는 말이라고 하는 설이 있는데, 먼 옛날에 단군조선의 수도로서 그 의미가 후대에 전해져 생긴 뜻이라 할 수 있다.

 

진한(眞韓), 진조선(眞朝鮮)의 역사는 제후국의 역사가 아니라 단군조선의 중앙조정(中央朝廷)의 역사로서, 서기전2333년 10월 3일부터 서기전232년 북부여 시조 해모수(解慕漱)가 오가공화정(五加共和政)을 철폐하여 접수한 때까지 47대 2,102년의 역사를 가진다.

 

서기전2333년부터 서기전1286년까지 1,048년은 전기(前期) 단군조선이 되고, 서기전1285년부터 서기전426년까지 860년은 후기(後期) 단군조선이 되며, 서기전425년부터 서기전232년까지 194년은 말기(末期) 단군조선이 된다.

 

전기와 후기를 합하면 1,908년으로 삼국유사에서 적고 있는 단군의 나이가 된다. 서기전238년부터 서기전232년까지 오가공화정(五加共和政)은 정치형태상으로 서기전60년 로마제국에서 나타나는 삼두정치(三頭政治)와 유사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2) 번한(番韓, 번조선)

 

단군조선 번한(番韓)의 시조는 치두남(蚩頭男)이다. 서기전2333년경에 단군왕검 천왕이 치우천왕(蚩尤天王)의 후손인 치두남(蚩頭男)을 남작(男爵)에서 승격시켜 비왕인 번한(番韓)으로 봉한 것이 된다. 즉 치두남을 천자(天子)의 바로 아래 작위가 되는 천남(天男)에서 천왕(天王)의 비왕(裨王)인 천왕격(天王格)으로 승진시켜 한(韓)이라 한 것이 된다.

단군왕검 천왕은 조선을 개국한 후 요(堯)의 반란을 염두에 두어 서쪽을 지키는 서보(西堡)로서 번한(番韓)을 두어 요(堯)를 견제한 것이다.

 

번한(番韓)이라는 말은 번(番) 즉 차례를 서서 경계를 하는 왕이라는 뜻이 된다. 단군조선의 서쪽에는 전란을 일으킨 당요(唐堯)가 있었고 실제 단군조선은 당요의 반역 때문에 피하여 세워진 나라인 바, 단군왕검이 번한을 둔 것은 서쪽을 잘 경계하여 지키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이 된다. 번한에는 특히 오덕지(五德地)라 불리는 5경(京)을 두었는데, 이는 서쪽의 정세에 따라 수도를 옮기면서 균형을 유지시키고 조절하도록 전략전술적으로 마련한 것이 된다. 

 

번한관경은 발해만 유역에 걸치는 지역과 산동지역을 포함하는 것이 된다. 번한(番韓) 땅은 번한의 직할영역이며, 고죽(孤竹), 청구(靑邱), 남국(藍國:藍夷), 엄국(淹國:淹夷), 서국(徐國:徐夷), 회국(淮國:淮夷) 등 회대(淮岱)지역이 번한관경에 포함된다. 서기전1766년에 은나라가 건국되자 제15대 번한(番韓) 사전(沙佺)이 고죽국의 왕인 묵태씨(墨胎氏)를 보내어 은탕의 즉위를 축하하도록 하였다.

 

번한의 수도는 처음 험독(險瀆)에 두었고, 동서남북중에 모두 5곳을 두었는데 오덕지(五德地)라고 불리며 5경(京)에 해당한다.

 

험독은 5경 중에서 동경(東京)에 해당하며 지금의 산해관(山海關) 자리가 되고, 낭야성(琅耶城)인 가한성(可汗城)은 남경(南京)에 해당하며 지금의 산동반도 남쪽에 위치한 청도(靑島) 자리가 되고, 탕지(湯池)는 북경(北京)에 해당하며 구안덕향(舊安德鄕)이라 불리고 지금의 천안(遷安) 지역으로서 난하(灤河) 서편에 위치하였던 것으로 고구려의 안시성(安市城)이 되고, 개평(蓋平)은 중경(中京)에 해당하며 안덕향(安德鄕)으로 불리고 지금의 당산(唐山) 위 개평(開平)이 되며, 한성(汗城)은 서경(西京)에 해당하며 번한성(番汗城)으로서 지금의 고하(沽河) 하류의 동쪽에 위치하고 고구려의 한성(韓城)이 된다. 번한의 수도는 모두 왕검성(王儉城) 즉 임검성으로 불리기도 한다.

 

위 5경 중에서 험독(險瀆), 탕지(湯池), 한성(汗城), 개평(蓋平)은 서기전2301년 경자년에 축조완성된 번한(番汗) 요중(遼中) 12성(城)에 속하기도 하며, 탕지와 한성은 고구려(高句麗) 요서(遼西) 10성에 속하기도 한다. 험독은 패수가 되는 지금의 난하 동쪽에 두었고, 그 외 탕지, 한성, 개평은 난하의 서쪽으로 원래의 대요수인 영정하(永定河) 또는 고하(沽河)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 된다.

 

번한(番韓), 번조선(番朝鮮)의 역사는 서기전2333년경부터 서기전194년 위만에게 망한 때까지 74대 2,140년의 역사를 가진다.

 

서기전2333년부터 서기전1334년까지는 치두남(蚩頭男)과 그 후손인 치씨(蚩氏)가 번한(番韓)이 되었고, 서기전1333년부터 서기전1291년 사이에 단군조선 중앙조정의 우사(雨師)를 지낸 소정(小丁)이 번한이 되었으며, 서기전1285년부터 서기전324년까지는 전기 단군조선 천왕의 종실인 서우여(徐于餘)와 그 후손인 한씨(桓氏)가 번한(番韓)이 되었고, 서기전323년부터 서기전194년까지는 기씨(箕氏)가 번조선왕(番朝鮮王)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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